이즈음 시민사회단체(NGO)를 점령군으로 간주하는 보수 세력이 많다. 웃음이 나오고 맛문하다.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압력을 거부할 수 없고 세계국가체제의 중간관리자로써 자본의 명령에 충실할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민중·민족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는 효율성을 제일 원칙으로 하는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비판자일지언정 정부의 주체가 되거나 공조직을 접수하는 점령군이 될 수가 없다. 간단히 말해서 점령군이어서도 안 되지만 점령군이 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는 시민운동가들이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에서 노무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가지고 민족의 미래를 기획해야 한다고 튼실히 다짐하는 판에 점령군이라니?
그렇다면 왜 보수 세력은 시민사회단체를 점령군으로 인식하게 되었는가? 그 전말은 대강 이렇다. 지금 남한이라는 미완의 국민국가에는 자신들만이 국가와 체제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많다. 과거에 이 분들은 국가에 기여한 바도 있고 또 여러 가지 이유로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세상은 늘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형식을 요구하고 또 강요한다. 지난 20여 년간 남한은 역사의 명령에 따라서 독선과 권위와 수구이데올로기를 버리고 민주와 평등과 진보이데올로기로 전환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한에는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과거지향적 세계관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 이들은 국가와 체제의 기본 틀은 그대로 두면서 절충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만을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지극히 정상적이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민민주주의적 체제의 출현을 냉전시대의 대립구도에서 바라보면서 시민사회단체를 잠재적인 적으로까지 생각한다.
이 보수주의자들은 노무현과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남한 시민들은 노무현을 국민국가의 대표로 선출해 버렸다. 이들은 박탈감과 허탈감에 크게 낙심했을 것이다. 더욱이 노무현 차기 대통령과 인수위원회는 시민사회단체 출신을 주요 정책의 일선에 배치했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그 동안 축적한 성과를 국가의 정책으로 적극 반영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러자 기득권 유지를 간절히 원하는 너덜못한 수구세력은 자신들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사실을 뼈아프지만 인식해야 했고, 시대가 바꾸었다는 사실을 한숨으로 깨우쳐야 했다. 여기서 난데없이 점령군이라는 식의 인식이 나왔다. 이들의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시민사회단체는 보수주의자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부재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몰아내려는 음모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세력을 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보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건강하게 병존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보수세력들은 노무현 정부의 출현을 진보세력의 진군과 점령으로 잘못 인식한 다음 자신들의 물적 토대가 와해되어 가고 있다고 분노하고 또 염려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를 점령군으로 인식하는 것만큼 착각이다. 이 어찌 한심하지 않을 손가!
그 동안 보수세력은 시민사회단체가 일부 운동가들의 혁명결사체인 것으로 악의적인 선전을 해 왔다.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시민사회단체의 회원이 아니므로 시민사회단체는 민족의 대의기구가 아니라는 식이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는 민족의 대의기구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시대 정신이 올바르고 미래에 대한 비전에서 훌륭한 것뿐이다. 그리고 <역사의 시민>이라는 본질이 시민사회단체의 원리다. 따라서 <역사의 시민>이 부여하는 대의권(代議權)을 위임받은 만큼만 시민사회단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남한 사회가 지금도 시민혁명의 단계에 놓여 있다는 점은 매우 부끄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존재는 역사의 과정을 정확하게 이행하자는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민사회단체가 하는 일이 옳다고 보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가 존재한다.
자신들은 부정하겠지만 보수와 안정감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기득권 계층은 변화와 진보를 실천하는 시민사회단체가 무한정 밉고 무작정 싫다. 망상의 해수욕장에서 떠다니는 것은 자유인데 남한이라는 국민국가를 적이 점령한 것으로 보는 이 가련한 인식으로는 세상을 살아가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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