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년 전인 1998년 2월28일자 본지 ‘오늘을 생각한다’에서 ‘김대중대통령이 국민의 사랑 속에 좋은 정치를 베풀고 5년 뒤 박수를 받으며 자리를 물러나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는 글을 실었습니다.
고난의 민주화투쟁, 탄압, 망명, 투옥, 사형선고 등 수 없는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며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자리에 오른 ‘인간승리’도 그러려니와 건국이후 일곱 명의 대통령이 모두 불행하게 물러난 것이 전례라서 김대통령만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온 몸에 받고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기를 한 사람 국민의 입장에서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아니, 그러한 생각은 필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이틀 뒤면 김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 사저로 돌아갑니다. 그가 사저로 돌아간다 함은 최고통치권자의 자리에서 일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감을 뜻합니다. 그러면 지금 국민들은 떠나가는 김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고있습니까.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민심은 냉혹합니다. 잘해도 잘했다고 손뼉치지 않는 것이 세상인심이라면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더 많은 경우에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물론 할 말은 있을 것입니다. 파탄 직전의 IMF위기를 극복하지 않았느냐, 남북의 적대관계를 풀고 통일의 물꼬를 트지 않았느냐, 누구나 대통령을 흉보고 욕해도 탈이 없을 만큼 민주화되지 않았느냐, 미흡하나마 재벌개혁을 하지 않았느냐 등등의 업적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딱하게도 지금 국민들은 그것을 얘기하려 하기보다 재임중의 실정(失政)에 더 열을 올리고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태생적 정치구도가 그것을 예고했고 벌집을 건드리듯 잘못 건드린 거대 보수언론들의 파상적 공격을 방어하기엔 대통령이라도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김대중’이라는 이름석자에도 알레르기를 보이는 국민들이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인데 아들들의 수뢰라는 ‘월척’에 호남편중인사라는 ‘호재’를 갖다 바쳤으니 역발산(力拔山)의 항우(項羽)인들 배겨 낼 재간이 있을 리 만무했을 것입니다. 임기를 몇 일 남겨놓고 김대통령에게 가해지는 무차별 공격을 보노라면 마치 하이에나들에게 마구 물어뜯기는 늙고 병든 짐승을 연상하게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설령 그에게 적지 않은 실책이 있었다해도 그가 이룩한 IMF극복과 남북화해는 결코 가볍게 평가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 되돌아봅시다. IMF, 그 때 어떻게 했습니까. 장롱 속의 결혼반지, 어린아이 돌 반지까지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나라가 파산 일보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겨냈습니다. 남북관계는 어땠습니까. 밤낮없는 긴장 속에 총칼을 맞대고 있었지 않습니까. 지금 어떻습니까. 하늘로, 바다로, 육로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 않습니까. 그래도 김대중이 있었기에 이 정도라도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이 통일을 향해 진일보한 것은 아닐까요.
건국이후 우리는 한 사람의 대통령도 웃으며 보낸 일이 없습니다. 이승만이 그랬고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한사람, 김대중을 그렇게 보내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불행합니다. 대통령도 불행하고 국민도 불행합니다.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쫓겨나고, 총 맞아 죽고, 감옥 가고, 손가락질 받는 나라, 그게 대한민국입니다.
퇴임을 며칠 앞두고 대북 송금문제로 “국민여러분에게 죄송하다”며 머리 숙인 그의 사과는 자신이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 실패한 대통령임을 스스로 고백한 귀거래사에 다름 아닙니다. 참으로 민망스럽습니다. 물론 그의 공과에 대해서는 후일 역사가 엄정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대로 사가들이 바르게 기록 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떠나는 김대통령은 만감이 교차 할 것입니다. 5년 전 귀에 쟁쟁하던 함성은 간 곳이 없고 싸늘한 메아리만이 사면초가처럼 들려 올뿐이기에 말입니다. 부디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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