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운동권 틀로 21세기를~ 진보는 실패?”

드디어 ‘진보’가 죽일 놈이 됐다. 참여정부를 구렁텅이로 몰고 갔고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망가뜨렸다. 진보가 밉다 보니 덩달아 많은 국민들에게 초록은 동색으로 여겨지던 3·86과 시민단체까지 완전히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논리는 이렇다.

   
▲ 연초부터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의 진보 때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연말 대통령 선거까지 치열한 보혁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당초 보수측은 올 대선과 관련, 이념의 틀이 아닌 인물위주의 경쟁구도가 될 것으로 예단했지만 진보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으로 되레 이념논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 세력인 노사모가 환호하는 모습.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던 노무현정권이 실패했고, 이를 주도하던 3·86과 그 홍위병인 시민단체도 당연히 실패했다. 이는 결국 진보의 실패라는 대명제로 귀결된다. 이것이 지금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이 합작으로 만들어 내는 이념의 방정식이다. 여기에 열린우리당의 3·86을 대표하며 노무현을 대변하던 소장파 국회의원들까지 언론을 통해 그동안의 진보 맹신(?)에 대해 석고대죄를 자처하는 바람에 더욱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보수들의 공동전선은 올 연말 대선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단정하는 것 자체가 자칫 무조건 진보를 싸잡아 돌리는 보수쪽의 소아병적 역사인식과 오십보 백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보수가 진보에 가하는 반목은 거의 테러 수준이다. 비판과 견제의 차원이 아닌 진보를 아예 이념의 카테고리에서조차 없애버리려는 마녀사냥의 광풍으로 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진보쪽의 반응은 냉정하다. 이미 예견된 흐름이기도 하거니와 그 보다는 이데올로기의 혼돈 현상을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과연 우리 사회에 지금처럼 매도당할 진보가 있었는지부터 궁금해 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노희찬의원은 한 대담에서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개혁이란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과연 존재했는지 의문스럽다”고 자문하며 지금의 잘못된 보혁 갈등을 꼬집었다. 실제로 진보의 입장에서 보면 노무현정권과 진보를 매치시키는 것조차 거부감을 느낀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는 결코 진보이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정치는 실용주의 덫에 걸려 개혁의 변죽만 울리다가 그나마 좌초했고 경제정책은 보수와의 신자유주의 대연정, 외교는 이라크 파병에서 보듯 친미연정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진보쪽의 주장이다.

이러한 원초적인 문제에서부터 헷갈리는 마당에 국민의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는 참여정부를 빌미로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단정하며 진보 죽이기에 나선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의 반 역사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때문에 진보와 보수, 진보와 개혁, 보수와 극우의 개념부터 혼돈스런 상황에서 여기에 3·86이나 시민운동까지 뭉뚱그려 매도하는 보수쪽의 보혁논쟁은 이념적 담론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착종(錯綜)만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가 지금 많은 국민들에게 패배감과 자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수의 진보죽이기는 9일 노무현대통령의 ‘대통령 4년 연임’ 기습 제의로 또 한번 반전을 맞을 조짐이다. 선수를 빼앗긴 헌법개정에 어깃장을 놓고 싶어도 이를 진보 죽이기에 덧씌우기를 하기란 결코 녹록치가 않기 때문이다. 보수 연대세력의 전리품이던 식물대통령이 오히려 국가적 의제를 선점한데다 정국 주도권마저 다시 틀어쥐게 됨에 따라 향후 반응이 주목된다.

일단 한나라당과 보수측은 노대통령 제의에 대해 무시 내지 기피전략으로 나설 공산이 크다. 현재 보수들의 결론은 ‘참여정부에서 우리나라 진보가 80년대의 운동권 틀로 21세기에 대처함으로써 결국 실패했다’는 냉혹한 심판론이다. 여기엔 3·86 몇 명이 청와대와 국회에 들어 간 것이 원죄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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