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학력 알아서 뭣에 쓰려고?
딸 취학 앞둔 ‘초보 학부형’의 일리있는 항변

70년대 후반,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입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교에서는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을 했습니다. 반, 번호, 이름을 적고 생년월일 따위를 적고 나면 가족사항을 적게 됩니다. 이럴 때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이름을 몰라서 쓰지 못하겠다는 친구들이 몇 명 있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의 이름 옆에는 나이와 최종학력을 적는 난이 있었는데, 이걸 적을 때는 친구들이 볼까봐 한쪽 팔로 종이를 가리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학이던 할아버지와 고등학교를 다닌 적 없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일이 지금도 가슴 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가족사항을 채우고 나면 재산을 동산과 부동산으로 나눠 적어야 하는데, 동산과 부동산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마저도 가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 외에도 자동차나 텔레비전 따위의 유무를 적으며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음 달이면 제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됩니다. 학부모가 된다는 사실은 가슴 벅찬 설렘과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함께 선사합니다.
요즘도 부모의 학력이나 동산이나 부동산의 소유 여부를 따지고, 자가용의 배기량을 조사해서 교육하는 데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설마 지금도 그러려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들은 이야기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입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홈페이지에서는 NEIS를 “전국 1만여 개의 초·중등학교, 16개 시·도교육청 및 산하기관, 교육인적자원부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교육관련 정보를 공동으로 이용할 전산환경을 구축하는 전국 단위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라 설명했습니다.
관련 사이트를 뒤져 좀더 자세히 알아본 바로는 학생, 학부모, 교사의 신상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중앙서버에 일괄 저장하고, 이 개인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정부기관이 공유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NIES에는 학생들의 기초적인 자료 외에도 병력과 상담기록 등 개인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할 자료에서부터 학부모의 종교와 이 메일 주소까지 각종 정보들이 기록된다고 합니다.
NEIS를 도입하는 이유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국민과 학부모를 위한 서비스 질이 향상됩니다”
“자녀의 학교생활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잡무는 줄고 교육의 질은 높아집니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져 업무가 효율적으로 처리됩니다”
학부모가 되는 입장에서 앞의 두 가지 설명에 대해 전혀 수긍하지 못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로 내세운 ‘서비스 질’이 발품을 팔아야 했던 민원서류들을 인터넷으로 발급 받을 수 있고, 유관기관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줄어드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발품을 팔 용의가 있습니다. 그 정도의 편의를 누리자고 내 아이와 내 가족의 보호받아야 마땅한 사적인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싶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더 말이 안됩니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정한 양식에 일괄적으로 맞춰 교사가 입력한 자료만으로 내 아이의 학교생활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학부모로서 교육에 대한 알권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놓고 그 중에 내 아이의 위치를 판단하게 하는 자료, 데이터베이스를 위해 작성된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자료라면 굳이 알고 싶지 않습니다.
자녀의 학교생활과 교육수준은 학부모와 교사간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가는 일에서 ‘촌지’나 ‘치맛바람’ 따위의 불쾌한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되기는 하지만, 그런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더 더욱 교사와 학부모의 자녀 교육을 위한 만남은 잦아야 합니다. 내 아이의 적성, 친구들과의 어울림,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을 인터넷에 올린 자료 검색을 통해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설명은 교사가 아닌 입장에서 의견을 내 놓기는 조심스럽지만 교사들의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의견을 보면 오히려 또 다른 잡무의 하나일 뿐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으며, NEIS는 교육을 위한 시스템이 아닌 오로지 행정을 위한 시스템이며, NEIS가 도입되면 교사가 아닌 행정사무원으로 불려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NEIS를 추진하면서 개인정보의 중요함과 전산시스템의 불안정성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인터넷 대란과 은행 보안관련 사고들은 전산시스템이 결코 완벽하지 않음을 증명해 줍니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서버가 더 안전하다고 믿으라고 주장하지는 않겠지요.
자녀의 개인신상, 학교성적, 과외 활동 이력, 행동발달사항, 병력 등이 누군가의 해킹으로 인해 인터넷에 아무렇게나 떠돈다면 마음 편할 수 있는 부모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그 자료들이 범죄에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서버에 있는 모든 자료들이 (백업된 자료를 포함해서) 일순간에 사라진다면 그에 따른 혼란은 짐작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NEIS를 반대하게 만드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개인정보의 유출보다는 교육에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는 그 의도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고위 공직자든, 평범한 노동자든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부동산 재벌의 자식과 월세 사는 이의 딸이 다른 교육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학생들 교육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아니 오히려 알게 됨으로써 교육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한 조사가 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 줄 수도 있는 것은 굳이 조사하지 않는 게 옳다고 봅니다.
내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아빠 직업란에 노동자라고 적고, 부동산 난에 아무 것도 기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아닙니다. (노동자인 것이 자랑스럽고,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 세상사는 데는 나의 열심보다 나를 둘러싼 여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 것입니다.
정보화도 좋지만 교육은 그 보다 더 중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NEIS가 행정을 위한 훌륭한 도구일 수는 있어도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비교육적인 시스템이라는 게 학부모의 입장에 선 저의 판단입니다.
교육행정의 편의성과 서비스 질의 향상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참된 교육보다 우선 할 수는 없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NEIS 시행을 재고 바랍니다.

1) 입력되는 학생과 부모의 정보
부모 : 성명,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이 메일, 직업, 학력, 종교, 자택·전세·월세 여부, 편모·편부 등
학생 : 성명, 주민등록번호, 취미, 특기, 매 시험별 과목별 성적과 석차, 학습부진아, 심리검사, 부적응아, 요선도학생, 연간상담기록, 진로 희망, 행동특성, 출결기록, 몸무게, 키, 시력, 충치, 색맹, 처벌기록, 투약일지, 출신학교, 교우관계 등
2) ‘NEIS’를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나이스’라고 읽어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교사들은 네트워크와 에이즈를 합성한 ‘네이즈’라고 읽습니다.

●전교조,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교육부 장관 고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 원영만)은 14일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IES)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일부지역 교사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이상주 교육부장관과 NEIS 실무담당자 2명을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전교조는 고발장에서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3일부터 올해 1월12일에 걸려 교육부 홈페이지의 NEIS공개자료실에 제주도지역 교원 641명의 이름과 소속학교, 사용자ID와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등을 올려 개인정보를 유출시켰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이어 “NEIS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도 전에 유출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NEIS의 보안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고가 예상되는 만큼 개인의 방대한 신상정보를 국가가 통합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또 시민단체와 연대해 NEIS로의 정보이관 거부, 신상정보 입력거부 등 NEIS불복종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황방열 기자

○오피니언-캐나다에서는…

캐나다 학교에서 알아야 할 것은 단 세 가지면 됩니다.
- 학생의 이름
- 보호자(부모가 아니어도 됨, 그것도 부부가 아니고 그저 한사람) 이름과 긴급 시 연락할 전화번호
- 건강기록(병이 있는지, 알러지가 있는지 등)
그 이상 알게 되는 어떤 것도 아이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고 대하게 되고 그것이 차별의 시발점입니다. 이러한 개념이 인권이 발달된 선진국 학교의 원칙입니다. 처음 아이를 입학시킬 때 다른 것 물어보는 것이 없어서 좀 황당하고 뭐 잘 못된 것 아닌가 하고 허전했습니다만 그것이 정상적인 교육의 밑거름이란 것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온 많은 이민 가정의 부모들이 보잘것없는(한국적 시각에서)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아이들은 기죽지 않고 학교 생활을 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차별 속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을 했습니다. 자신이 잘나서 차별 받지 않았더라도 다른 아이가 차별 받는 것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우리 사회가 엄청나게 차별을 하는 사회고 그 차별에서 벗어나려고 교육열과 부자열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학생과 그 가정의 신상 정보를 캐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참교육의 시발점입니다.
학생의 이름 이외에 어떤 것도 알려하지 말라!!!
처음으로 여기에 글을 써보는
캐나다 해외동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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