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낮 12시 5분에 오송을 출발한 KTX(한국 고속철도) 시승용 철도차량은 출발한 지 얼마 안돼 속도가 시속 100km를 넘어서더니 곧 200, 250km를 가뿐히 넘어설 정도로 폭발적 가속성능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람이 원체 둔감한 때문이었을까. 고속철 차량 1등석에 몸을 실은 기자는 차량의 진동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 환상적인 승차감에 빠져들었다. 귓가에 기분 좋게 다가오는 부드러운 기계음과 차창 밖으로 황급히 나타났다가는 이내 모습을 감춰버리는 주변 풍경을 제외하면 과연 이 거대한 고속철 차량이 지금 엄청난 스피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방음 등 모든 면을 세심하게 고려해 제작된 값비싼 차량 덕분도 컸겠지만 부설된 철로에 최첨단 과학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된 것은 안내를 위해 동승한 고속철도 중부사무소 김영선팀장(시운전처 소속)의 도움말을 듣고 난 뒤였다.
그러나 기자는 김팀장의 말이 머리로는 이해되면서도 체감은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비행기처럼 차량 내부에 설치된 비디오 모니터에 주행속도 변화에 따라 실시간으로 빠르게 바뀌는 숫자만이 KTX의 스피드를 순간순간 나타내주고 있을 뿐이었다.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질주한다’는 말은 KTX를 위해 준비된 표현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 그대로 철의 실크로드였다.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 고속철 중부사무소(오송)에서 출발한 KTX는 20km 거리의 현도면 시목교량까지 6분여만에 간단히 주파한 뒤 55km 가량 떨어진 천안역까지 역주행하기 위해 1분간 정차했다. 앞뒤에 동력차량 1량씩 2량을 포함해 1등실 4량, 2등실 14량을 단 KTX는 달려온 철로를 역으로 달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본격적인 가속에 들어갔다.

서울-부산 1시간 58분

알고보니 KTX는 오송-현도 시목간 20km 구간은 가볍게 워밍업을 한 것 뿐이었다. 현도 시목을 떠나 작정한 듯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 KTX는 오송부근을 지날 때 한국고속철이 목표로 하는 300km/h를 돌파해 버렸다. 힐끔 쳐다본 모니터에 305km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김영선팀장은 “KTX의 설계속도는 350km/h이지만 개통이 되면 운영속도를 300km로 정해 운행시킬 계획”이라며 “300km로 달릴 경우 중간역에서의 정차시간을 포함해 서울-부산간 운행시간은 1시간 58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TX는 시속 0km에서 300km까지 다다르는데 6분 5초의 시간, 20km의 도움닫기 거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주일에 1번 외부인을 대상으로 시승행사를 치르고 있다는 김영선팀장은 “완벽한 안전성 확보를 위해 현도 시목터널-천안간 57.2km 구간에 걸친 시험운행을 매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칙으로 말하면 외부인 시승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시험주행을 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안전상의 결함 등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것인 만큼 이론적으로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한국고속철에서 시승행사를 하고 있는 것은 KTX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높이자는 목적도 갖고 있지만 이보다는 KTX의 안전성에 대해 그만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날 기자가 시승한 KTX에는 대만 고속철도 관계자들이 동승했는데, 이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차량 ‘기밀장치’가 비밀

기자는 시승을 하는 내내 한가지 의문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험운행 구간인 현도-천안 구간에는 무려 11개의 길고 짧은 터널이 있다. 그런데 터널들을 지날 때마다 차창밖이 잠깐-11개 터널 중 운주터널이 4.03km로 가장 길었는데 터널 통과 시간은 불과 50초도 안됐다. 어두워졌다가 환해지는 시각적 변화를 빼고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경험하는, 순간적인 기압차로 인한 귀울림이나 멍멍해지는 느낌을 전혀 못 느낀 것이다. 이런 경험은 옆 철로에서 시험운행 중인 KTX 차량과 교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KTX의 상대 속도는 600km나 된다!
김팀장은 “터널을 드나들 때 기압차를 느낄 수 없는 것은 차량 내부의 공기흐름을 순간적으로 밀봉, 차단하는 기밀장치 때문”이라고 했다. 기껏(?) 최고속도가 110km인 기차를 타며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귀가 멍멍해 지던 경험을 떠올리고서야 KTX에 적용된 첨단기술의 진가가 확연히 느껴졌다.

TGV보다 우수한 승차감

KTX의 우수성은 이 뿐이 아니었다. 96년 프랑스 파리 북역-영국 런던 워털루 역을 잇는 TGV 유로스타 노선을 타 볼 기회가 있었던 기자로서는 이날 절호의 비교시승을 하게 된 셈이었는데, 6년전 타 본 TGV 열차는 좌우 흔들림이 완연했던 데 비해 KTX는 주행중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왔다갔다 걷는 동안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별다른 요동을 못 느꼈다. 과장없이 정말 평지를 걷는 듯 했다. 더구나 차량과 차량 연결부분까지 일체형으로 밀봉, 마치 하나의 몸체로 이뤄진 듯한 거대한 애벌레 형상의 KTX는 추락사고를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아이들을 포함한 승객들의 안전을 극대화했다.

서울-부산까지 1개의 레일

더구나 유로스타는 많은 구간에서 제 속도를 내지 못했는 데 KTX는 터널 속이든 교량이든 다양한 주행환경의 전 구간을 풀 스피드로 주행할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일본 프랑스 독일 스페인에 이어 5번째로 고속철을 갖게 된 한국으로선 가장 최근 건설하는 것인 만큼 최첨단일 것이라고 추측은 했지만 KTX는 기자가 추측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 넘었다.
한편 기차하면 떠오르는, 레일과 레일간 이격의 틈 때문에 리드미컬하게 생기는 덜커덩 덜커덩하는 소리가 전혀 없는 것도 KTX의 가장 큰 특징인 듯 했다.
김팀장은 “서울-부산간 412km의 철로가 거대한 하나의 레일(장대레일이라고 한다)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팀장은 “장대레일이 개발됨으로써 비로소 고속철도의 개발 역사가 시작됐다”며 “이는 제대로 닦인 고속도로가 있어야 차량이 맘껏 달릴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거리-시간 개념을 바꿀 KTX
한국고속철도 공단은 TGV를 개발한 프랑스 알스톰사로부터 고속철 차량과 전동모터를 비롯해 운영 시스템, 장대레일의 제작 및 부설 기술 등 고속철도와 관련된 모든 노하우를 이전받고 있다.
최소 회전반경이 7000m로 TGV의 6000m 보다 길어 그만큼 편안하고 안정된 주행환경을 갖춘 KTX는 차량내에 음료수 자판기, 전화기, 오디오(이어폰 청취), 비디오 모니터 등을 갖추고 있으며, 요금은 비행기 삯의 70%, 새마을호의 130% 수준에서 책정할 계획이라는 것이 한국고속철 측의 설명이다.
천안에 도착한 뒤 2분 가량 정차한 KTX는 오송까지 되돌아오기까지 총 110km에 달하는 거리를 왕복하는데 4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12시 5분에 오송을 출발해 현도 시목→오송→천안을 거쳐 KTX가 다시 오송에 도착했을 때 시각은 12시 45분. 같은 거리를 일직선으로 운행했다면 20여분밖에 소요되지 않았을 것이다.
18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공사비가 투입돼 건설되고 있는 KTX는 거리와 시간의 개념을 바꾸는 대역사였다. 기자는 시승을 마치고 KTX 차량에서 내리며 ‘오송역 분기점 유치로 충북이 고속철도 시대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이 염원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임철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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