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또 한해가 저무는구나!'

해마다 이맘때면 내 심연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자꾸만 생겨난다. 그곳에서 바람소리 들려오면 그리운 이, 보고픈 이, 하나, 둘 불러 모아 삼삼오오 꺼리 만들어 술잔이라도 기울이고 싶어진다.

일 년 중 마지막 달, 12월은 그래서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시월은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느라 호들갑스럽고, 11월은 이별 준비에 조용하고 엄숙하다. 12월은 이별과 만남의 관문이다. 그러하기에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는 달이요,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 또한 분주한 달이다.

성당에서는 세속에서 내가 묶어놓은 매듭, 고해성사로 풀어내 티끌 없는 순백의 영혼으로 거듭나게 하고, 개신교 마당으로 하늘의 별 총총 꿰어 휘장처럼 장식을 드리우고 이 땅에서 가난한자, 그 마음에 사랑과 평화 넘치기를 원하는 간절한 기도소리 들려오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문득 대상없는 그리움이 파문처럼 일렁였다.

가는, 이 해가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들, 견디기 힘든 고통을 버리지 못하고 또 짊어지고 새로운 날들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 얼마 전 병원 물리 치료실에서 보았던 신생아의 모습, 태어 난지 2주 된 아기의 목을 돌리느라 진땀을 흘리던 의사... 그렇게 하루하루의 삶을 영위 하느라, 이름 하여 다시 올 수 없는 날들을 보내며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높은 하늘 향해 치솟은 빨간 십자가를 바라보며 12월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누구나의 수호천사들이 하늘 길 밟고 달려와 각자에게 수반된 고통들을 대신 짊어지고, 가는 해 따라 영원히 사라지길 기도 해본다.

12월은 이별 속에서 슬픔을 알아가고 슬픔 속에서 정의 깊이를 느껴간다.

내가 이 세상에 홀로 떠 오던 날! 내 어미 고통 주며 왔거늘, 울기는 내가 울었소!

세상과의 이별 하는 날, 저승길 나설 때는 남아있는 이들이 울잖소!

지지고 볶으며 만들어 놓은 정 때문에...

그 정 때문에 세월 간다, 허무하다, 그래서 휑한 가슴 보듬으려 술잔 기울이자고 12월은 요란하다. 그러면서 정의 깊이 알아가다 보면 人자 알게 되고, 人자 알게 되면, 間자 알게 되는 것이 人之常情 이라오.

바람 불면 잠시 엎드리고, 비 내려 맞게 되면 맞아야지. 내 것이 두 개면 돌아보아 없는 이 하나주고, 물이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치를 아는 순간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불법정토요, 용화낙원인 것을....

그게 뭣이 그리 어렵다고!

겨운 삶 속에서 내가 묶은 매듭 내 스스로 풀어 내지 못하고, 비. 바람 흙탕물에 찢겨지고 망가지며 애를 쓰는지.

흠집 많은 삶! 털고 닦아 잘 간추려서 단아하게 묶어두고 싶은데, 그도 저도 쉽지 않아 비틀거리며 세월 속에서 신기루만 찾아 헤매다보니 어느새 지천명의 고갯마루다.

올 해는 가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유난히 더 시리다. 시린 가슴 녹여 볼까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라도 끄적이다가

화려한 12월의 밤 풍경이나 볼세라,
창문을 열었더니,
밤바람만 까슬까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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