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끝났다.” 이 말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와의 전쟁이 불가피함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여기에 대해 프랑스의 장 피에르 라파랭 수상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은 게임이 아니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이 말들은 이라크와의 전쟁에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미국과 그 전쟁을 막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프랑스의 견해차를 상징하고 있다.
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미국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확대되어가고 있다. 나토를 통해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확고하게 전쟁반대의 입장에 서 있으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계적으로 반전 여론이 거세지고 있고, 베트남전 이래로 가장 큰 규모로 세계적인 반전시위가 조직되고 있는 점이 부시와 미국의 주전파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반전시위가 조직되는 속도는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로,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서 수십만의 활동가, 일반시민, NGO가 참여하고 있다. 이런 반전 분위기는 미국과 세계의 여론에도 큰 영향을 끼쳐, 부시에 동조하고 있는 영국에도 국민 대다수가 이라크 전을 반대하고 있는 정도이다.
우리는 지난 해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를 경험한바 있다. 촛불을 들고 한 평화적인 시위였지만, 시위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히 소파개정 만은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부추기는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의 기류가 시위의 저류에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칭한 이래, 클린턴과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추진되던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북-미 관계의 정상화 프로세스는 중단됐다. 북한에 주던 50만톤의 중유공급을 중단하자 이에 대해 북한이 원자로 가동 재개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위기가 고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 포기와 국제적인 생존권 보장을 일괄 타결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미국은 핵과 대량살상무기의 포기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며, 북한이 핵개발을 공개하고 국제기구의 완전한 사찰을 받으면, 식량을 포함한 경제원조를 고려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 타격까지 운위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사태는 남한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과 미국과의 전쟁은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북한과 남한, 미국, 일본 삼자동맹과의 전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고, 수백만의 사망자는 물론 천문학적인 경제피해로 다시는 한민족이 세계무대에 설 수 없는 가공할 결과가 예상되는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미국은 남한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문제를 처리해왔다. 제네바 협정과 연이은 페리 프로세스의 진행은 철저히 한국을 배제한 채 진행되었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다.” 이 말은 미국의 매파 엘리트들에게서 종종 듣는 이야기다. 멀리 떨어진 이라크라는 나라는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세계의 평화애호 민중들이 이라크의 무고한 생명들을 생각하면서 반전을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사회운동에서 세계적인 연대 운동은 큰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였던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인간방패가 되기 위해 이라크로 떠난 평화운동가들처럼 세계적인 반전 운동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다. 2월 15일, 세계적인 반전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다.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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