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이 몰아칩니다. 일진광풍(一陣狂風). 지금 이 나라는 ‘미친 바람’이 휘 몰아 치고 있습니다. 그 회오리바람 속에 너도나도 허공을 향해 모두들 두 팔을 내저으며 애원합니다. “제발! 제발!”.
봄이 머지 않은 2003년, 대한민국의 풍경은 그러합니다. 8백 몇 십억이 걸렸다던 지난주 로또복권은 1등 당첨자가 13명이나 나와 한사람에 64억3천만 원씩 돌아갔다고 합니다. 당첨된 사람들은 좋겠습니다. 하지만 1200여만 명이나 된다는 낙첨자들은 허황한 꿈 뒤에 오는 허탈감에 빠져있을 것입니다. 대박의 꿈이 컸던 만큼 낙첨의 실망 또한 컸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로또(LOTTO)란 말은 이탈리아어로 ‘제비뽑기’란 뜻입니다. 무엇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제비를 뽑는 관행은 오랜 역사를 갖고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이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제비를 뽑아 나누어 주라’고 일렀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 잠언에도 ‘주사위만이 송사(訟事)를 끝내고 세도가들의 시비를 판가름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로마시대 황제들은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참가비를 받고 영수증을 추첨해 경품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복권의 효시(嚆矢)입니다. 중세 유럽의 나라와 도시들은 복권을 발행해 공공사업을 추진했는데 유명한 대영박물관도 복권에서 나온 돈으로 건립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복권은 통계로 보아 당첨 확률이 극히 희박하지만 엄청난 행운이 걸려 있는 만큼 나라마다 끊임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사람들은 그저 재미나 심심풀이로 복권을 살뿐이지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과열현상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2000년에 로또복권이 도입된 일본만 하더라도 국민성 때문인지 별로 인기가 없는 모양입니다.
국내에서 로또 복권의 당첨확률은 정확하게 814만5060분의1 이라고 합니다. 이 수치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만큼 거의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그러나 행운의 당첨자는 나오게 마련이고 그 실낱같은 기대 때문에 너나없이 복권방으로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룹니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복권열풍은 우리사회에 만연된 배금주의(拜金主義)의 일그러진 모습임이 분명합니다. 땀 흘려 일하고 자족하며 분수 것 살기보다는 대박을 터뜨려 인생을 역전시켜 보려는 한탕주의의 소산이기에 말입니다. 혹자는 “몇천 원으로 1주일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서민게임” 이라고도 말하지만 결국은 정부가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데 앞장선다는 극단적인 비판의 소리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평가가 어떠하든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한 독점사업으로 손쉽게 돈을 벌어들이는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비판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판매액 가운데 30%를 발행주체인 건교부, 행자부 등 7개 부처가 공공기금 조성명목으로 가져가는데서 잘 나타나듯 재주는 국민이 부리고 돈은 정부가 앉아서 먹는다는 비난에 변명의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잖아도 온 사회에 만연돼있는 한탕주의, 배금주의에 기름을 부운 꼴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결과 20∼30대의 70%가 로또복권을 구입하여 대박을 꿈 꾼다하니 이런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해야 할 젊은이들이 한탕 대박을 노리고 복권방에 몰려가 북새통을 이루고 줄 지어서있는 모습이라니, 이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아무리 공공목적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로또사업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그것도 서민들의 호주머니 돈을 긁어 공공사업을 도모한다는 발상자체가 문제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온 나라가 투기장이 된 것은 아닌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나라가 온통 투기장이 되고 국민이 모두 한탕주의자가 돼 잠을 못 이룬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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