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계탐사 2006년 일정이 지난 9일 제 12차 탐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올해 마지막 탐사구간은 충북 경기 강원 3도가 경계를 이루는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삼합저수지~충주시 앙성면 덕은나루 간 12·8㎞로,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도계를 이루는 이곳에선 최초로 선박을 이용한 도계답사가 이뤄져 그 의미를 더했다. 모두 12차에 걸친 탐사의 전체 종주 길이는 약 150㎞에 달한다. 충북도계는 총 970㎞에 걸쳐 형성됐기 때문에 이번 도계탐사의 사업명칭이 ‘삶결따라이천오백리’로 결정됐다.
지난 5월 13일 ‘약속의 땅’ 오송에서 발대식을 갖고 대장정의 첫발을 디딘 탐사단(단장 연방희)은 매월 격주로 2회씩 도계를 밟아 오며 활동을 벌였다. 4년 연차사업으로 기획된 도계 탐사는 일반인이 참가하는데 따른 안전사고를 우려, 8월 혹서기와 1월 혹한기를 피해 실시되고 있다.
도계(道界)는 내륙도인 충북에서 특히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지금까지는 이에 대한 체계적 연구조사가 없어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다른 광역자치단체는 도계의 절반 정도가 해안과 접해 있어 충북만큼 도계의 상징성이 덜하다. 유독 충북만이 전체 도계가 타 시도와 경계를 이룸으로써 역사적으로 독특한 도계문화를 이루어 왔다. 그동안 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도계에 대한 총체적인 탐사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사안의 방대함 때문에 뜻있는 이들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다만 지방자치 실시 이후 각 지자체마다 지역 정체성 확립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도계가 포함되는 시·군경계를 탐사하는 일이 한동한 유행처럼 번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관할 도계를 부분적으로 답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실제로 올해 도계탐사에선 도내 각 시·군 지자체, 혹은 지역 전문 산악인들이 주축이 된 국지적인 종주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물론 충북도계 전체에 대한 포괄적 접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87년, 당시 청주대 남기창교수 지도와 구 충청일보 후원으로 이 학교 산악부 요원들이 63일간 도계를 종주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 때는 말 그대로 소수 정예 산악요원들이 단기간에 일괄 종주하는 개념에 머물러 아쉬움이 컸다.
순수 일반인들이 탐사단을 이뤄 도계 전체에 대한 조사활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계를 따라 걷는 종주 뿐만 아니라 도계에 걸친 환경 상태 문화 식생 등 각 분야에 대한 탐사활동을 병행하는 최초의 시도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탐사단도 이 분야 전문가 혹은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연구활동을 벌이는 일반인들로 구성됐다.
이번 사업을 가능케 했던 것은 후원자로 나선 충북도의 결단이다. 충북도는 올해 마지막 탐사활동이 진행된 지난 9일에도 노화욱정무부지사로 하여금 현지를 방문, 격려케 하는 등 이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도계 탐사단의 모든 활동은 향후 백서로 발간돼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게 된다.
진작 했어야.... 발걸음 하나하나에 충북 혼 심어 충북도계 탐사단 박연수 대장
충북도계탐사를 이끄는 박연수대장(43)은 원래 전문 산악인이다. 틈만 나면 산을 타고 길을 걷고 하는 일이 생업의 일환이지만 그 역시 도계탐사에 대한 감회는 남다르다. 올해 1차 활동부터 12차 활동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 탐사대의 길라잡이를 한 그에게 이 사업과 관련된 지난 1년의 소회를 물었다. “굳이 뭐라고 표현하기보다는 그저 뿌듯하다는 느낌이다. 항상 산을 가까이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도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나로서는 도계를 따라 걷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듯 도계가 있기에 거기를 걷고 싶었다. 나 스스로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이번처럼 충북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막상 도계를 탐사하다보니 행정구역상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합리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 그가 특히 시선을 많이 줬던 곳은 도계 지역의 원초적인 삶이다. “한 집이 행정구역상 두개로 나뉜 곳이 있다. 집은 충남이고 마당은 충북에 속하는 경우다. 이런 인위적인 경계 때문에 애매하게 주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산간 오지에까지 찻길이 뚫리면서 농촌엔 큰 고민이 생겼다. 과거엔 가끔씩 지게로 도난당하던 농작물이 지금은 한밤중에 차떼기로 털리고 있다. 1년 농사를 고스란히 도둑맞은 한 농민의 힘없는 눈망울을 결코 잊지 못하겠다. 진천에선 무분별한 임도가 어떻게 산사태로 이어지는가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뿐만 아니라 여러 곳이 문제의 임도 때문에 인근 마을까지 아슬아슬해 보였다.” 모두 12차까지 진행된 탐사과정에서 수시로 박대장을 괴롭혔던 것은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잡목이 우거진 산불지역에서의 산행과, 대원들이 각종 피부병에 시달린 것은 잊지 못할 기억이자 추억이다. “한번 산불이 났던 지역엔 큰 나무가 죽기 때문에 잡목이 엄청나다. 이 곳에 길을 내고 걷기란 마치 군대의 유격훈련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한명의 낙오자가 없었다는 게 신통할 뿐이다. 참가자 대부분이 순수 일반인들인데도 말이다. 산림이 우거진 곳에서 방향을 잃고 헤맨 일이나, 많은 대원들이 해충과 벌레 가루 때문에 피부병에 고생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여성 대원 일부가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말엔 마치 죄인같은 기분이었다.” 혹한기를 피해 앞으로 약 한달 반 동안 박대장은 육체적 부담을 덜게 됐지만 심적 부담은 오히려 더 늘게 됐다. 1차년도에 미흡했던 조사연구 활동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골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도계탐사에 나설 때마다 마치 신천지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는 말로 또 내년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