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의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21세기를 맞은 현재까지도 최대의 난치병으로 남아있는 암, 그 중에서도 위암의 발생기제랄까 발병원인을 밝혀 줄 '비밀의 문'이 반 이상 활짝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같은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배석철교수(44)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뤄짐으로써 지역사회와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충북대 의대 생화학교실의 배석철교수와 일본 교토대 바이이러스 연구실의 요시아키 이토 소장은 공동으로 위암 발생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세계최초로 발견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배 교수팀은 'RUNX(러넥스) 3' 유전자는 정상인의 경우 활성화해 있어 위암 발생을 억제하지만 위암환자 중 60% 정도는 불활성화 상태를 보여 RUNX 3의 부전이 위암 발생으로 이어짐을 규명했다. 배 교수팀은 이 기술을 1년 전에 특허제도를 두고 있는 모든 나라에 특허출원했으며, 논문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과학잡지 셀(Cell) 4월 5일자에 게재될 예정이다.

위암치료의 신기원 마련
지난 25일 찾아간 충북대 의과대학 건물 404호 배석철교수실은 다른 교수들의 연구실처럼 2평 남짓 할까 할 정도로 작았다. 거기에다가 서가를 빼곡이 채우고도 모자라 연구실의 빈공간마다 켜켜이 쌓여 있는 각종 서적과 연구논문, 서류들은 기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던져주었다.
'이렇게 비좁은 곳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구논문이 나왔다니!' 더구나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뤄낸 과학자답지 않게 배교수는 첫 상면한 기자를 시종 정중하게 예우하는 인간적 겸손함도 잃지 않았다.

-이번의 연구결과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위암치료의 중요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겁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암, 특히 위암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동물실험 결과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경우 생명체 자체의 유전자적 변이가 위암발생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규명됐다는 것이 큰 뜻을 갖습니다."

-이번 연구는 언제, 어떠한 동기로 추진하게 됐습니까.
"6년 전이니까 지난 96년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 저는 다른 연구실 소속원으로 있다가 96년부터 비로소 독립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연구과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중 그때까지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RUNX 3'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사람은 유전자 변이로 암 발생"
-RUNX 3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RUNX 3은 인간유전자 지도인 지놈의 염기서열상 첫 번째에 위치한 유전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유전자의 기능은 이제까지 밝혀진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없이 많고 많은 유전자 중에서 RUNX 3에 제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RUNX 1 유전자 때문입니다. 이 유전자는 93년에 백혈병 원인 유전자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후 저는 '그렇다면 RUNX 3 유전자라고 그 정체를 밝히지 못할 게 없지 않은가'란 질문을 하게 된 것이죠."

-공동연구자로 돼 있는 이토 소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서울대 약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뒤 91년부터 94년까지 3년간 일본 유학을 갔는데 그때 저를 지도해 주신 분이 이토 박사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연구를 같이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연구과정 및 결과에 대해서 일반인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RUNX 3 유전자를 파괴시킨 쥐를 집중연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정상적으로는 죽어야 할 늙고 병든 세포가 죽지 않아 위암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위암환자 4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이중 60% 남짓한 환자의 경우 RUNX 3 유전자가 활성화돼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말해 RUNX 3 유전자가 활성화 돼 있으면 위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입니다."

신약 개발 위해 벤처회사 설립
-46명을 대상으로 연구해 얻어진 위암과 RUNX 3 유전자와의 상관관계율 60%라는 수치가 그렇게 유의미한 수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높은 인과적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기적의 신약인 것처럼 알려진 글리벡의 유효 치료율은 모든 종류의 백혈병중 10%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제 말씀이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배교수께서 위암치료 신약 개발의 새 지평을 연 셈 아닙니까.
"예. 그러나 신약 개발은 엄청난 투자비가 소요되는 사업입니다. 몇 천억원이 필요할 지 누구도 모릅니다. 교수로서 기초 이론적 연구를 매듭지은 것과 신약을 개발하는 문제는 전혀 별개의 영역입니다."

"원인만 알면 암 완치 가능"
그러나 배 교수는 지난해 11월 벤처기업인 (주) 바이오 러넥스를 설립, 신약개발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신약개발 사업은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소요되는 데다가 개발이후 안전성 등을 확보하기 까지 최소한 5년 정도 걸린다는 게 의학계의 대체적 전망이다. 그러나 획기적인 신약 개발이 성공만 한다면 부가가치는 수십조원 이상, 아니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지막까지 남겨놓았던 가장 절실한 질문을 던졌다. "암은 정복될 수 있습니까."
"암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발병원인만 규명된다면 완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게ㅣ 저의 이론적 소신입니다."
95년 10월 충북대에 부임한 이후 암유전자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배교수는 벼락치듯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논문 정리할 것도 있고 KBS 일요스페셜팀이 특별 프로그램-4월14일 방영예정-을 제작하기 위해 와 있는 등 정신이 없다"면서도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배교수는 인터뷰 다음날인 26일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임철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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