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건복지재단 설립으로 지역 기부문화 확산 기대 커져
도 공동모금회 3년 연속 전국 최우수 선정… 지역환원 외면 인사엔 ‘눈총’

지난달 23일 청주시 흥덕구 사직1동 중부빌딩에서 사회복지법인 한건복지재단(이사장 이상록) 현판식이 열렸다. 한국종합건설 김경배대표(47)의 출연금 20억원(개인 10억, 회사 10억)으로 설립된 한건복지재단은 불우노인·장애인·불우청소년 지원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지난해말 복지재단 설립계획을 밝혀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김대표가 새해 첫달에 곧바로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이른바 ‘갑부’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40대 사업가가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것이다. 내 앞가림에 급급한 현대인들의 의표를 찌르듯 그의 미담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충청리뷰는 김대표의 복지재단 설립을 계기로 그동안 소리없이 ‘나눔의 미덕’을 실천해온 지역 독지가들을 찾아봤다. 한평생 ‘몸뚱아리’ 하나를 밑천으로 모은 재산을 지역 대학에 쾌척한 할머님들을 4명이나 만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독립의 재목을 키우기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 60여년간 운영해온 주인공이 바로 청주인이었다. 향토기업을 운영하면서 10억원대 이상의 재산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든 이도 10여명에 이르렀다. IMF이후 더욱 심화된 빈부의 차는 한국사회의 미래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나눔의 미덕, 기부문화를 솔선해 가는 이웃들이 있는한 희망은 건재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기부문화의 현주소를 지역 울타리안에서 짚어본다. / 편집자

지난해 12월 신문·방송들은 청주에 사는 한 대학생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했다. 연말 불우이웃들에게 전해 달라며 2년 연속 상당구청에 쌀 100포(20kg)를 맡긴 익명의 대학생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익명의 대학생은 쌀가게 주인을 통해 성금품을 접수시켜 정작 상당구청 직원들도 기탁자의 얼굴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400만원 상당의 쌀 100포를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2년 연속 기증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충청리뷰 취재진은 구청직원을 통해 쌀을 대리 기증한 쌀가게를 확인한뒤 직접 찾아나섰다. “아유, 저 지난해두 서울 방송국에서 내려와서 누구냐구 캐묻는 통에 애를 먹었어유. 우리 가게하구 오래 거래하던 분의 아들인데, 올해 대학 졸업반이예유. 본인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에 부모네가 얼마간 보태줘서 쌀 100포를 기증했대유. 더 이상 얘기하기 곤란하구, 그 부모네도 여기저기 불우한 시설에 많이 베풀구 사는 분들이예유” 청주 서문시장 S상회 50대 부부는 ‘절대, 아무 것도 밝히지말라고 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또한 이들 부부도 ‘좋은 일 하느라고 사는 쌀인데, 이문 남길 수도 없어서 그저 심부름만 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주변에 감춰진 ‘아름다운 손’은 크고 작음을 떠나 무수히 많다. 지난해말 충청리뷰 편집부에 문의전화 한 통이 날아들었다. ‘불우시설에 작지만 성금과 물품을 전하고 싶은데 추천 좀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40대 남자의 전화를 받은 기자는 국가예산 지원을 받는 인가시설보다는 형편이 열악한 비인가시설이 적합할 것 같아 해당 시설 명단을 팩시밀리로 보내줬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캐물은 결과, 문의한 남자의 친형 일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숨졌고 그에따른 일부 보상금이 나오자 어머니가 선뜻 불우시설을 도와주자고 제안했다는 것. 그들 모자는 청주권 불우시설에 1500만원이라는 적지않은 성금을 희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청도의 후한 인심은 각종 성금모금 실적에 그대로 드러난다. 충북공동모금회(회장 김준석)는 2002년도에 총 25억여원을 모금해 3년 연속 최우수도로 선정됐다. 절대모금액으로는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6위 수준이지만 본부에서 재정자립도, 인구수, 운영평가 등을 종합한 결과 충북공동모금회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게 된 것이다. 공식적인 모금 참여건수는 1만2000건이지만 기업체의 직원일동, 학교의 학생일동 등 단체참여 건을 감안하면 전체적인 모금 참여자는 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140만 도민의 40%가 공동모금회 행사에 참여한 셈이다.

개인출연으로 장학복지재단을 설립한 대표적인 지역인사로는 고 민영은옹(은성장학회) 박문복씨(문정장학회) 한장훈씨(서범장학회) 김호수씨(남강장학회) 고 권태성옹(간송문화재단) 김경배씨(한건복지재단)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 지역에서 사업적 입지를 굳히고 서울등 외지로 진출한 인사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역 환원사업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군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L씨가 지난 86년 설립한 충북협회장학회의 경우 1억5700만원의 출연금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부동산업으로 거부가 된 L씨와 호텔업으로 성공한 S씨 등도 지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 63살 은발의 나이가 된‘은성장학회’
일제하 1940년 설립,
1009명 81억원 장학금 지급

1940년 은성장학회를 설립한 민영은선생은 구한말 청주군수를 역임한 이력 때문에 ‘민구관’으로 불렸다. ‘청주 토호로서 만석을 추수하는 거부’〈청주 근세60년 사화〉로 묘사될 만큼 대단한 재력가였다. 당시 청주의 2대 갑부로 청석학원 설립자인 김원근·영근선생과 민영은선생을 꼽았다고 한다. 김원근·영근 형제분은 36년 상업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청석학원의 기초를 쌓았고 민영은선생은 40년 장학재단을 설립해 인재양성의 토양을 마련했다.

특히 민영은선생은 37년 석교초교, 38년 청주 제2고등여학교(현 청주여중) 설립시 땅과 건축비를 쾌척해 향토교육에 큰 공헌을 남겼다. 현 쮸네쓰 자리에 있던 옛 청주경찰서도 민선생이 희사한 토지에 건립된 경우다. 40년 자신의 토지와 사설 저수지 등 재산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들었고 연간 500석의 수익으로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갖추게 됐다. 43년 민영은선생은 74세의 나이로 운명했고 아들 주식씨(98년 작고)가 이사장에 취임, 선대의 뜻을 이었다.

성장학회의 현재 자산은 현금 17억7900만원이며 이 가운데 서울 중구 남창동 4층건물에서 발생하는 임대료 수입이 주 재원이 되고 있다. 현재 이사장은 고 민주식씨의 사위인 문석형씨가 맡고 있으며 재단기록이 보존돼 있는 70년대 이후 수혜자가 1009명에 이르며 지급액도 81억7000만원에 달한다. 재단설립후 63년동안 한국전쟁 당시 3년간을 제외하곤 해마다 고교·대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하지만 98년부터 대학생으로 한정해 서울대, 충북대 등 주요대학에 추천의뢰해 장학생 수혜 대상자를 결정하고 있다.

재단의 총무를 맡고 있는 민진식씨(65)는 “고교까지는 돈이 없어서 진학못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문이사장 취임이후 대학생 지원위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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