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에 건물과 현금 등 67억원 상당 내놓아
학교측에서는 경조사 챙기기, 위로여행 및 문화행사 초대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에서 그나마 독지가들의 장학금 출연이 가장 활발한 곳은 대학, 그 중에서도 국립대학이다. 독지가들이 대부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해 못배운 한을 품고 있는데다, 대학의 1차적인 목표가 인재양성이기 때문에 대학쪽에 장학금을 내놓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 됐다. 다만 사립대학은 개인이 운영한다는 점이 선뜻 장학금 내놓기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충북지역 대학 중 장학금 출연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충북대학교이다.

독지가 공통점은 모두 할머니
충북대는 지난 79년 故 김유례 여사가 상당구 남문로2가 지상 2층짜리 건물과 현금 5000만원 등 15억원 상당을 기탁한 것이 장학법인 설립의 디딤돌이 되었다. 그 뒤로 몇십억원대의 장학금 출연자가 줄을 이었다. 93년 신언임 여사(72)의 30억 상당 재산 기탁, 97년 전정숙 여사(79)의 10억 상당 건물 기탁, 99년 임순득 여사(85)의 12억 상당 건물 쾌척 등 4명의 할머니들이 내놓은 장학금은 모두 67억원 이었다.
참고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라는 것과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70대 이상인 이 할머니들은 가정형편이 어렵기도 했지만, 당시 견고한 가부장제의 틀속에서 여성은 배울 필요 없다며 공부를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 남편과 자식도 없다. 임순득 여사만이 딸과 사위를 두고 있을 뿐이다. 독지가들은 큰 사업을 벌여 재산을 축적한 것이 아니고 콩나물, 두부, 떡, 화장품 장수 등 밑바닥 장사부터 시작해 그야말로 근검성실로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장학금 기탁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故 김유례 여사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16세에 결혼했으나 청춘의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슬하의 3남매마저 모두 잃는 등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이후 그는 떡장수, 콩나물장수, 국밥집, 여관 운영 등을 억척스럽게 하면서 돈을 모아 전재산을 충북대에 쾌척한다. ‘욕쟁이 할머니’로 통했던 그는 평생 자신을 위해서는 먹고 입을 줄도 몰랐고 인재양성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88세에 세상을 떠난 후 학교측에서는 김 여사의 묘를 학교안에 마련하고 틈틈이 묘지관리와 제사를 도맡아 하고 있다.
콩나물·두부장수로 번 돈
그리고 신언임 여사는 청원군 오창면의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했다. 결혼 후에도 자녀를 두지 못했던 그는 ‘청주의 구두쇠 할머니’로 소문날 만큼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은 전재산을 충북대에 기탁했다. 충북대 관계자는 “신언임 여사에게 매달 생활비 150만원씩을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정숙 여사는 IMF 한파로 전국민이 추위에 떨 때인 97년 12월 10억원 상당의 지상2층짜리 건물을 충북대에 내놓는다고 발표했다.
전여사는 남편인 故 최공섭씨가 20대에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되는 바람에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선수이자 광업에 종사했던 최씨는 전씨와 결혼한지 열달만에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는 것. 그는 미장원, 영화관, 화장품 대리점 등 안해본 것이 없다. 당시 장학금 전달식에서 시누이 최영옥씨는 “그동안 먹을 것 못먹고, 입을 것 못 입으며 아껴 모은 재산이다. 오빠가 일을 못해 언니는 나와 함께 여러 가지 장사를 하며 열심히 살았다”며 전씨를 가리켜 “불쌍한 사람”이라고 눈시울을 붉혀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전씨는 사회봉사활동에도 발벗고 나서 증평적십자 활동을 주도하고 라이온스클럽 회장, 청소년선도위원을 역임했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충북대에 거금을 쾌척하게 된 동기도 적십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충북대에 가난하지만 유능한 학생들이 많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라가 어려우면 젊은이들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므로 장학금으로 인재를 양성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버스비도 아껴
그리고 콩나물과 두부, 묵 등을 팔면서 홀로 가정을 이끌어온 임순득 여사는 17세의 나이로 결혼했으나 남편과 11년만에 사별, 그 때부터 시어머니와 외동딸의 생계를 위해 억척같이 살았다. 지난 99년 1월 열린 장학금 전달식에서 임 여사는 외손자인 이경국(당시 충북대 경제학과 4)군이 다니는 충북대에 흥덕구 운천동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해동화재 건물을 선뜻 내놓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임여사 역시 자신을 위해서는 버스비도 아낄 만큼 매사에 근검 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지난해 11월 신방웅 총장 취임 뒤 있었던 충북대발전후원회 창립에 맞춰 자신의 팔순잔치비용 200만원도 기탁했다.
충북대측은 전정숙 여사에게 매달 생활비 70만원을 주고 있으나 임순득 여사는 생활비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4명의 장학금 기탁 할머니들에게 공통적으로 해오고 있는 일은 수시 방문해 건강관리를 해주고 의료비 부담 및 대학병원 이용에 특례를 주는 한편 경조사 챙기기, 1년에 1번 위로여행 및 문화행사 초대, 학교행사 초청, 사망시 학교장으로 장례 거행 등이다. 다만 돌아가신 분에게는 묘지관리와 제사 등 학교측이 ‘자식 노릇’을 해오고 있다.
충북대 관계자는 “할머니 장학금 혜택을 받는 학생들은 등록금 전액과 수학보조금 10만원을 지급한다. 김유례 장학금을 받는 2003년도 1학기 장학생은 7명, 신언임 장학금 9명, 전정숙 장학금 4명, 임순득 장학금 5명 등 모두 25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충북대에는 이외에도 양미숙 장학금이 있다. 이것은 충북대 국민윤리교육과 출신인 양씨가 교사로 재직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남편인 신영섭씨가 부인의 뜻을 기려 장학금 5000만원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학교측은 매학기 국민윤리교육과 학생 1명을 선발해 등록금 전액을 지급하고 있다.
충북대 장학금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할머니 장학금은 어려운 형편에 놓인 학생들에게 ‘빛’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장학금을 쾌척하며 어떠한 단서조항도 붙이지 않은 이들이 학교측에 이야기 것도 가난한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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