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형에서 동반활동가형까지 다양
제대로 하면 내조, 자칫하면 안방정치

퍼스트레이디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영부인’ 혹은 ‘각계에서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여성’이라는 설명문이 달려있다. 영부인이라는 단어의 뜻도 결국 ‘남의 아내를 높여부르는 말’ 정도지만 한국에서 퍼스트레이디란 단어는 ‘대통령의 부인’이란 의미로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돼 왔다.

이는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유교적 사회관념이 한동안 우리사회를 지배해 온 데서 기인한 것이다. 심지어는 대통령 영부인에 대한 선호도에서 조차도 ‘조용한 내조형’을 좋아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사뭇 다르다. 이는 젊고 나이듦, 자리의 높고 낮음, 돈의 많고 적음에 거의 영향받지 않는다. 사회구조가 ‘일하는 여성’을 당연하게 만들었고 그만큼 여성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민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부인들도 이·취임식은 물론 각종 공식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대통령 영부인들처럼 여성단체의 행사를 챙기고 각종 사회사업을 주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선거과정에서는 대개의 부인들이 1급 참모 구실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선거캠프를 진두 지휘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5월31일 4기 민선 시장을 선출한 청주시의 경우에도 그동안 4명의 ‘청주 퍼스트레이디’가 시민들 앞에 등장했다. 이들은 대통령 영부인들처럼 사회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행동거지 하나하나가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특히 일부 청주 퍼스트레이디들은 공직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그림자 내조를 펼치기도 했다.

청주의 퍼스트레이디들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인 손명순 여사,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같은 ‘탈정치 현모양처형’을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와 같은 ‘조언자 및 사회사업가형’,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와 같은 ‘유별난 활동가형’,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같은 ‘정치적 동반자형’ 등 나름대로 특성을 규정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특색을 보였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 부인의 지나친(?) 활동은 과거 일부 대통령 영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연희동 빨간바지’라는 별명이 화제가 됐던 이순자 여사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결국 막대한 비자금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청주 퍼스트레이디 중에서도 ‘승진하려면 사모님한테 가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다닐 정도로 공무원 인사는 물론 각종 정책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인물이 있다. 물론 퍼스트레이디의 적극성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부부중심’인 서구사회에서는 퍼스트레이디들이 공식 석상에 나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고, 남편 이상으로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다. 1940년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의 부인 에바 페론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빈민, 노동자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사생아로 태어나 나이트클럽 댄서 등의 독특한 이력을 거쳐 영부인이 된 뒤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34살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극적인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반페론의 삶을 다룬 ‘에비타(에바 페론의 애칭)’가 뮤지컬과 영화로 제작됐으며, 뮤지컬에 삽입된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ana)’는 영원한 애창곡이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인인 힐러리처럼 ‘투톱’으로 활동한 경우도 있다. 힐러리는 미국에서 가장 힘있는 변호사로 선정되는가 하면 최근 상원의원 재선에 무난히 성공함으로써 2008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로 떠올랐다. 11월17일~19일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도 33%의 지지를 얻어 2위를 2배 이상 앞질렀다.

이러한 가운데 이제는 지역에서도 단체장 부인들의 역할론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남편이 최선을 다해 공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조형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자치행정의 한축을 담당하는 정치적 동반자가 필요한 것인갗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지 않아 우리는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자 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의 면면까지도 고려해 표를 행사하는 시대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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