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당선자의 초대국무총리에 내정된 고건 전 서울시장에 대한 하마 평이 분분합니다. 그의 경력이 워낙 다채롭고 화려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가장 관운이 좋은 사람’이라느니, ‘양지만을 좇는다’느니, 평가도 제각각 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고 총리후보자는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대통령 등 무려 여섯 정권을 두루 거치면서 그때마다 빠짐없이 요직에 기용돼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상 벼락 출세한 사람은 많지만 고 후보자처럼 오랜 기간 요직을 골고루 맡았던 사람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흔히 국무총리를 왕조시대의 영의정에 비유합니다. 물론 과거의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위로는 임금 한 사람이 있을 뿐이고 아래에는 만 백성이 있음)의 자리는 아니더라도 대통령 유고 시에 권한을 대행하는 것만으로도 자리의 막중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까닭입니다.
영의정이라면 조선의 명상(名相) 황희(黃喜·1363∼1452)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는 태조로부터 정종, 태종, 세종 등 네 임금아래서 요직을 두루 섭렵했음은 물론 세종 때는 장장 18년이나 영의정자리에 있으면서 농사의 개량, 예법의 개정, 천첩(賤妾)소생의 천역(賤役)면제 등 많은 업적을 남겼고 재임 중에도 비가 새는 초옥(草屋)에서 살만큼 청빈한 생활로 일관했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젊은 날 암행어사가 되어 시골길을 가고있는데 한 노인이 검은 소와 누런 소를 앞세워 밭을 갈고있었습니다. 황희는 “여보시오, 그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하오?”하고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일을 멈추고 황희 옆으로 다가와 “젊은이, 귀 좀 빌려주시오”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일은 검은 소가 잘 합니다. 누런 놈은 게으르지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황희는 그런 말이라면 일부러 와서까지 귀엣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그때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무리 말을 못 알아듣는 짐승이라 할지라도 잘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황희는 순간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농부만도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황희는 그 일을 교훈 삼아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겸손과 원만한 인품으로 백성의 존경을 온 몸에 받았습니다.
고건 총리후보자는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있는 듯 합니다. 다채로운 경력이 그러려니와 40년이 넘게 공직생활을 해오면서도 별 다른 흠을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무리 없는 공직생활을 해 온 것이 그의 이력에 나타나있기 때문입니다. 노 당선자가 그를 낙점 한 것도 그의 경륜과 온건하고 안정적인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사실 인물이란 그리 흔한 것은 아닙니다. 높은 자리이건, 낮은 자리이건 자리에 맞는 사람을 찾다보면 적임자가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도 하고 ‘문제는 사람’이라는 말도 하곤 합니다. 다만 고 총리후보자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그의 개혁 성이라고 하겠습니다. 국민이 노무현 당선자를 선택한 것이 국정개혁에 대한 열망 때문이라면 고 총리후보자가 얼마만큼 그 개혁을 뒷밭임 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 때문인 것입니다. 고 후보자가 성공한 총리로 역사에 남고자 한다면 살신성인의 자세로 자신을 불살라 개혁에 앞장서는 결연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어쨌건 이 달 25일에는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부디 이번 노무현정부만은 전임자들처럼 국민을 절망에 빠뜨리지 말고 좋은 정치를 펴 주기를 간곡히 바랄 뿐입니다.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힘없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 그것만이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들, 또 불안을 느끼는 다른 국민들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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