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남한은 반미주의라는 특별한 담론으로 새해를 열었다.
이 위험하면서도 필연적인 의식과 감정은 2002년 여름부터 2003년 벽두까지 남한 사회를 휩쓸고 급기야는 세계사회사에 충격을 주면서 한국적 파장을 넓혀 나갔다. 놀라운 일이다.
10년 전에 반미주의를 외쳤다면 분명히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반국가 사범으로 가녀린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미주의라는 어휘가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으니 남한 사회의 성숙과 다원성에 깊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애틀랜타발 CNN은 한국의 반미주의가 국가와 민족의 기획이라고 보는 것 같다. 국가나 민족 전체가 반미주의라는 새퉁스러운 것에 집착하고 있으며 또 선전하고 선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CNN의 보도는 무척 시망스럽다. 왜냐하면 세계체제의 중심 국가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홍콩발 CNN은 더하다. 뉴스의 상당 부분을 북한의 핵문제와 남한의 정치사회에 할당하고 있다. 북한도 문제이지만 남한 역시 문제라는 것이 미국식 해석이다.
이처럼 대다수의 외국 언론들은 촛불시위를 죽음에 대한 애도라기보다는 반미주의를 점화시키는 전략적 기회라고 해석하며 이렇게 해서 형성된 반미의식은 북한의 반제투쟁과 일맥상통한다고 비아냥거린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런 해석도 가능하므로 깊이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회사적 맥락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그 반작용의 결과가 친미시위로 역사적 상처를 드러내고야 말았다는 점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반미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친미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남한에서 반미주의가 들불처럼 번졌고 그 반작용으로서의 친미주의가 성행하는가?
반미주의는 탈식민의 고통스런 인식이다. 반미주의는 식민지 반식민지를 겪으면서 내면화되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식민적 상처를 한국인 스스로 치유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반미주의는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다. 그러므로 미국인이나 미국의 모든 것을 반대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정확히 말해서 반미주의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대이다. 패권의 정책과 패권의 폐해와 패권의 지배력을 반대하는 의식이며 감정이다. 따라서 반미주의는 한국인 스스로 역사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 보자는 것이었다.
40여 년 간의 식민지와 그 이후의 반식민지 상태를 겪으면서 남한인들은 식민성(coloniality)을 마음속 깊이 각인했다.
분열과 갈등과 열등의식과 패배주의 그리고 지배자에 대한 복종과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교육받은 결과 마침내 내면의 고통으로 간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미주의는 바로 이런 것들에 대한 초극(超克)의 형식인 것이며 역사에 대한 사죄의 예식이다. 민족적 자기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던 지난 시절을 부끄러워하고 자기를 인정하면서 자기를 찾으려는 아름찬 길이 바로 반미주의다. 그러므로 반미주의는 모든 것을 중국화시키겠다는 중화중심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같으며 진지한 반성을 회피하고 있는 일본의 극우의식을 반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패권과 수탈일 뿐이다.
하지만 각다분한 세계체제(world system)를 반대는 할 수 있지만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매 그 대안인 탈식민주의로써 세계사의 새로운 횃불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탈중심의 유목민적 사고가 그리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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