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대통령선거는 새로운 정치를 내건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선거결과의 역사적 의미를 크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제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형식만이 아니라 분단 상황에서 고착된 파시즘의 잔재를 떨쳐버리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로 진화하리라는 전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현재 남북한을 옥죄고 있는 북핵 문제를 좀더 주체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세력의 승리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해석과 더불어 필자는 지방분권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지향하는 운동이 이번 대선결과로 좀더 힘을 얻게 되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방분권운동 세력이 제시한 과제 중에서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공약을 선거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공약중 하나로 내걸었고, 지방분권을 위한 정책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서약까지했다.
정치, 경제적 권력과 모든 종류의 사회적 기회와 재화가 서울로 집중하고 있는 동안 다른 지역은 노 당선자의 말대로 쓸쓸한 지역으로 바뀌어갔다. 서울 집중의 심화는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는 당장 경제적 기회만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기도 하였다.
그 반면에 수도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인구과밀로 인한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국제도시인 서울은 인구과밀과 교통혼잡, 환경오염으로 인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살릴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해 가장 큰 이해를 보여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지방분권 운동에 새로운 힘을 실어준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등 지방의회가 만들어져 지방의원에 대한 선거가 실시되고 몇 년 후에는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선거가 이루어지는 등, 지방자치제도의 외형은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서울집중과 지역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어 갔다.
이런 추세를 되돌리고, 국토의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려면, 현존 지방자치제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면밀한 계획과 의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분권론자들은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유명무실하고 행정적 의사결정의 중앙집중이 별로 개선되지 않은 점을 지역균형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보고 있다. 한 예를 들면 지방정부의 가장 큰 재원인 중앙정부의 교부금의 경우,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지정한 용도나 사업에만 쓰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지방 정부는 독자적인 지역발전의 장기 비전을 추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지방정부가 보다 큰 자율성과 권한을 가진다고 지역균형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분권은 그야말로 커다란 원칙에 불과할 뿐, 중앙정부가 적극적인 지역균형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노 당선자는 서울을 동북아 비즈니즈 중심지로 충청권을 신행정 수도와 과학기술 중심으로 부산을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구체적 비전을 내놓았다. 이 청사진은 동북아의 정치, 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상당한 구체성을 가진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환황해(環黃海) 경제권, 남북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 등이 이러한 비전의 실행가능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이러한 큰 틀의 비전 속에서 지방 정부의 정책 자율성의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법적, 제도적 조건과 중앙정부의 의지가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지방정부와 지역 주민의 능동적인 자세가 없다면, 균형발전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부산에 위치한 우수한 한 벤처 정보 사업체가 부산시 당국의 소극적 자세와 각종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서울로 본사를 옮기기로 한 소식은 우리에게 지역 행정당국과 주민의 주도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지방분권을 위한 법적, 제도적 개혁, 동아시아 경제권의 전망 속에서 지역기능의 배분, 지방정부 당국과 지역민의 주도권과 열의, 이 세가지가 동시에 추구될 때, 서울만이 아니라 서울 아닌 곳도 활기차고 살맛나는 곳으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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