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담긴 ‘느림보’ 음식 도토리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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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이 담긴 ‘느림보’ 음식 도토리 묵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6.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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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구황식품이 오늘날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
묵밥, 냉면, 칼국수, 전 등 도토리 음식 다양화


도토리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등의 열매이다. ‘도토리 나무는 들판을 보고 열매 맺는다’는 말이 있다. 그해 벼농사가 흉년이면 토실토실한 열매가 더 많이 열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황식품으로 옛부터 먹어왔던 서민용 음식이었다. 하지만 먹을 것이 풍족한 현대에는 비만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다이어트 음식이 됐으니 아이러니다.

도토리묵은 도토리가루로 직접 풀 쑤듯 쒀 만드는 과정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과거 손으로 하던 일을 요즘은 기계가 주걱을 돌려 2시간 정도 쑨다. 굳히는 데만 12시간 이상 걸린다. 대표적인 ‘느림보 음식’이지만 그만큼 현대인에게 약이 된다. 낮은 칼로리로 다이어트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도토리를 갈아 고운 천에 치대는 이유는 혼합물인 단백질과 지방 등이 섞여 있는 도토리 가루에서 녹말만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녹말을 함유하는 다른 씨앗이나 고구마 같은 식물을 이용해서도 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인 겔화된 묵이 만들어진다.

콜로이드 상태로 만들기 위해 가열하는 동안 주걱을 이용, 계속 저어주는 것은 열의 이동이 원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의 이동 방법은 전도, 대류, 복사 세 가지 형태가 있다. 묵 용액의 점도가 높아지면서 대류현상에 의한 열의 이동이 제한돼 묵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저어주지 않고 너무 데우면 묵이 냄비에 눌어붙을 것이다. 묵은 썰기도 까다롭다. 뭉글뭉글하고 칼에 달라붙어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정한 두께로 썰 수 있는 묵써는 기계가 나오기도 했다.

▲ 사진=육성준기자
중금속 해독 효과, 고지혈증 예방

전문기관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도토리묵 100g 기준으로 열량은 40칼로리, 탄수화물(2%), 단백질(2%), 칼슘(1%) 등이 담겨있다. 지방은 0.1% 정도로 거의 없다. 도토리의 떫은 맛은 타닌이란 성분 때문이다. 가루를 우려낼수록 없어진다. 타닌의 많고 적음에 따라 묵 색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다이어트식으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에서도 묵의 제품화에 앞장서고 있다. 도토리는 야생에서 걷어들여 채취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전남 구례군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을 직접 재배해 우량한 도토리 수확을 연구하고 있다.

▲ 도토리를 소재로한 음식이 개발되고 있지만 기본이 되는 3가지는 묵, 전, 국수다. 사진 위로부터 도토리묵밥, 도토리냉면, 도토리 전부침
도토리에는 아콘산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는데 우리 몸에 쌓인 중금속의 해독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분이 많고 당은 별로 없어서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품이며 피로회복과 숙취해소, 소화기능도 높여준다.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는 고지혈증에도 도토리가 효과를 거둘 수 있고 특유의 타닌 성분은 설사환자에게 효험이 있다. 하지만 도토리는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일 경우 과잉섭취는 금물이다.

충북에는 속리산, 월악산, 소백산 등 3개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산세가 퍼져있어 도토리의 채취가 용이하다. 단양군 영춘면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금강식당은 손꼽히는 도토리 전문식당이다. 80년대초 윤기분 할머니가 ‘도토리냉면’을 개발해 향토음식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지금은 아들·며느리가 직접 나서 2대째 대물림을 하고 있다.

이곳의 도토리냉면은 도토리전분에 감자전분과 밀가루를 알맞게 반죽해 제분소에서 눌러온 것인데, 짙은 갈색이 나면서 매끄럽고 쫄깃한 국수발이 별미고, 육수는 육류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야채만으로 뽑아내는데 칼칼하면서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느껴진다. 아들 이남규씨는 “소비량이 많다보니 도토리 가루는 믿을만한 식품회사에서 지속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국내 채취량이 수요에 못미치기 때문에 중국이나 북한산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 100% 토종 도토리를 구해 직접 가루를 내고 묵을 쑥다면 그 과정과 노고가 만만치않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궁중음식, 도토리묵 간장 별도로 담궈
도토리묵 만들기
1.도토리를 햇볕에 잘 말린 후 방망이 등을 이용해 껍질을 벗긴다.

2.분리된 알맹이만 2~3일 간 물에 담가 수용성이면서 떫은 맛의 원인물질인 탄닌 등의 성분을 우려낸다.

3.적은 양이라면 우려낸 도토리를 믹서 등으로 곱게 갈고 고운 천으로 된 보자기에 넣고 손으로 치대어 전체 질량의 50% 정도 되는 도토리 속 전분만 빼내고 찌꺼기는 버린다.

4.우러난 물을 하루 이상 방치해 밑에 고운 앙금이 침전되도록 하고, 이 앙금을 말렸다 쓰거나 그대로 냄비 등에 넣고 주걱으로 저어가며 30분 정도 가열한다.

5.묵을 만들 때 가루와 물의 부피비율은 1대6 정도로 맞추고 처음에는 센 불에 걸쭉해지면서 기포가 뜨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가열한다.

6.콜로이드 상태가 된 걸쭉해진 묵을 원하는 틀에 붓고 서늘한 곳에서 적당한 상태까지 식힌다.
작년에는 우체국쇼핑을 통해 판매한 도토리묵 가루가 중국산으로 밝혀져 해당 업체대표가 구속되고 우정사업본부가 소비자들에게 전액 환불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또한 동물애호·환경단체가 도토리 채집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은 도토리가 다람쥐, 청설모, 어치, 원앙, 반달가슴곰 등의 주요한 먹이임에도 불구하고 도토리를 채취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에선 먹이경쟁 때문에 청설모가 다람쥐를 죽여 다람쥐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돼 도토리 애호가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도토리묵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간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예부터 장은 묵을수록 좋다고 했다.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 명품 로하스 식품전’에서는 60년 묵은 간장 2㎏의 추정가가 1억원에 달해 화제가 됐다. 1945년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간장은 출품자 윤의분씨의 시어머니가 담근 것으로, 당초 6㎏쯤 됐을 간장 가운데 70%가 세월의 흐름 속에 소금 결정체로 변했고 2㎏ 정도가 간장으로 남아있다.

당시 전시된 간장 중에는 철종 때 궁녀가 만든 도토리묵 간장(100년 추정)이 ℓ당 4백만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제대로된 도토리묵 맛을 보기위해 별도의 간장을 제조한 것이다.


/ 기획특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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