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시장조사기관 한국인 간부 글 화제
"이런 식으로 꼭 팔아야만 하는 것인가?"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이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하이닉스 반도체 처리문제를 놓고 매각 불가론과 불가피론이 팽팽히 맞서는 등 여론분열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얼마전 신국환 산업자원부장관이 "가능하다면 (하이닉스의) 독자회생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소신을 밝히고 나선 데 대해 진념 재정경제부장관겸 부총리가 최근 "하이닉스는 원칙적으로 매각처리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고 나서면서 여론분열 현상은 정점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정부 부처간에도 동일한 사안을 보는 시각이 통일되지 않는 마당에 하이닉스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혼선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매각놓고 여론분열

하이닉스 반도체 청주사업장 관계자는 "신국환 장관의 발언은 국가산업정책의 차원에서 나름대로 깊은 고려 끝에 나온 것으로 이해되며, 진념 부총리의 발언은 재정경제부의 책임자로서 은행부실과 공적자금회수 등의 문제를 먼저 생각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처럼 하이닉스에 대한 정반대의 ‘처방전’이 서로 팽팽히 대립하는 가운데, 미국의 국제적 시장조사기관에 근무하는 반도체 담당 간부로서 한국인이라고 밝힌 익명의 인물이 국내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들에게 보낸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머니투데이에 의해 국회 자유게시판에도 오른 ‘하이닉스의 시일야방성대곡’이란 글은 하이닉스의 매각 불가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등 특정 견해에 치중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축약 소개한다.

‘본인은 현재 I사 소속 한국인으로 현재 한국정부가 은행을 통한 공적자금의 회수 사례를 만들기 위해 하이닉스를 희생양으로 삼는데 대해 더 이상 입을 다물 수 없다. 현 정부는 구조조정의 명분하에 LG와의 말도 안되는 반도체 강제합병을 통해 세계 톱 10에 들었던 LG반도체와 현대전자 두 회사를 몽땅 망하게 하고 결국 세계에서 가장 국수주의 색채가 짙은 미국의 마이크론에게 거의 공짜에 팔려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속성을 모르는 현 정부에 의해 주도된 합병 결과 기술 우위에 있는 LG보다 로비가 뛰어난 현대에게 공이 넘어갔고, 합병후 하이닉스는 시너지 효과는 커녕 합병부채에 허덕였다. 그 결과 지금은 국제 통상문제에 있어서 부담만 안겨주고 이제 채권단(사실은 정부)의 손에 목숨을 맡기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무지한 정부

그런 상황에서 미국 기업중 가장 국수주의적인 마이크론에 하이닉스를 매각하려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팔고 미국에 항복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마이크론은 공장 소재지 출신 하원의원 등을 통해 한국에 덤핑운운하고 하이닉스에 대한 지원을 막는 등 횡포를 부린, 미국 국수주의의 상징이다.
자동차가 잘 나간다고 해도 한국차의 미국내 시장 점유율은 1-2%가 고작인데 DRAM은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데 이런 회사를 죽여서 마이크론에게 퍼주려 하다니...
더구나 DRAM부문은 팔고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만 하이닉스가 승계한다는 것도 반도체 시장을 몰라서 하는 순진한 소리다. 이 분야의 기술은 경쟁사에 비해 적어도 한두세대 뒤져있다. 더구나 시장이 한정돼 있다. 전세계 파운드리 업체의 가동률은 잘해봐야 20-30%에 불과하다. 비메모리 법인으로 그것도 부채까지 떠 안은 상태에서 하이닉스가 생존할 확률은 거의 0%이다.

희생양 삼으면 안돼

결론적으로 기술수준이 우리보다 못한 마이크론측에 메모리반도체 부문을 매각하면 결과적으로 기술의 유출은 불가피하며 합병이후 세계 시장의 40%를 차지하게 될 마이크론에 의해 가격결정권이 넘어감으로써 삼성전자 역시 위험에 노출될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삼성측은 최근 하이닉스가 희생양이 돼서 발생하는 DRAM 가격의 상승 현상 속에서 줄기찬 자사 선전에만 나서고 있다. 정부와 은행역시 선거를 앞두고 공적자금 회수에 집착하느라 하이닉스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지난 20년간 쌓아온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하이닉스 매각으로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분명히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하이닉스가 죽으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적어도 십수년을 후퇴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청문회는 계속 치러져야 할 것 같다. 하이닉스는 살려야 한다.


빅딜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구조조정 사례만들기 무리수
'만약 LG가 주체만 됐어도...' 하이닉스 반도체의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빅딜 당시 불거졌다가 그동안 수면아래로 잠복했던 빅딜주체 선정의 과오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 지난해 마무리 했으면서도 시일을 늦추고 늦춰 지난 6일 개최하는 바람에 스스로 김을 빼버린 오창산업단지 준공식이 또 다른 이유에서 빛바랜 행사로 치러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논란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면 그 이유가 금방 이해된다. LG반도체 시절 분양받은 오창산단내 20만평에 달하는 공장용지가 텅 빈 채 준공식이 치러질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반도체 빅딜의 실패 때문이란 해석이 자연스레 나올 법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딜주체 선정상의 문제보다는 무리하게 빅딜을 추진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보다 설득력 있게 제기돼 관심을 끈다. 빅딜 전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부채는 각 6조와 4조원. 당시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합병부채 10조에다가 인수가격 2조5000억원을 합해 12조5000억원을 떠안고 시작했다. 그러다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합병부채에 짓눌려 지금의 상황으로 떠밀려 온 건 주지의 사실. 따라서 당시 LG반도체가 주체가 됐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지만 상황은 지금과 비슷했을 것이란 추정이 세를 얻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업계에서는 "서로의 기술과 주력분야가 다른 등 시너지효과를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인데도 반도체 빅딜을 강행한 것 자체가 억지였다"고 지적한다. 구조조정의 모델케이스로 삼으려고 잘 나가던 회사들만 망쳤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모 기업 CEO(대표)는 "지금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1000억 달러를 넘는다. 이런 마당에 채무재조정과 상환유예, 심지어 탕감 등으로 사실상 수조원을 쏟아 부어 살려놓은 하이닉스를 불과 5조원(40억달러 안팎)의 헐값에 팔지못해 안달인 채권단과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정부가 한편에선 국정홍보처에서 제작한 '세계 1위 반도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국가홍보 광고를 텔레비전 전파를 통해 버젓이 내보내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할 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임철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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