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일본군에 징집되어 태평양전쟁(만주사변)과 한국전쟁(6.25) 등 격동의 한국사를 살아온 남도희 할아버지(81). 남 할아버지에겐 이번 중국여행이 남다른 감회로 밀려온다. ‘어르신 공경 효 문화 탐방’에 초청된 몇 안 되는 어른으로 일본군에 징집돼 중·일 전쟁의 총알받이로 참전한지 60여년 만에 중국 상해를 다시 밟았다.
남 할아버지는 당시 중대 간 통신연락병을 했다. 일본이 전선에서 밀리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양자강 유역을 따라 상해에 입성한 뒤 평안도 출신 장교들과 광복군에 몸담기까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힘든 시기를 떠올렸다. “일본이 패하고(45년 8월15일) 선상에서 ‘조국에 먼저 돌아가 부르겠다’며 손을 흔들던 김구 선생이 눈에 선하다”고 그 때를 회상하던 남 할아버지. 상해 임시정부와 홍구공원 앞에선 끝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50년 6월25일) 남 할아버지는 “제주 하사관 학교(육군 훈련소)를 거쳐 국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남 할아버지는 “격동의 세월 한국인으로 사는 것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과의 쉼 없는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광복군 별동 소대장을 했었다’는 남 할아버지. 김구 선생에 대해 “눈매에 힘이 넘쳤지만 자상한 분이었다. 그런 분이 우리나라를 다스렸으면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쉽다”고 전했다.
남 할아버지는 40여년 간 전매청(현 한국담배인삼공사)에 몸담고 외길인생을 살아 왔다. 이런 공로가 인정돼 정부로부터 ‘녹조근조훈장’을 받기도 했다. 벌써 20년째 청주체육관 인근에서 ‘커피 봉사’를 하고 있는 남 할아버지. 테니스 동호인과 환경미화원들에겐 따뜻한 ‘커피배달 아저씨’로 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