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하이닉스 직접대화로 모든 현안 논의하자’
충북도·시민단체, 회사측 ‘버티기’에 중재능력 한계

19일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조원들의 도청 옥상점거 농성은 6일만에 중단됐다. 하이닉스 하청노조가 기습적으로 도청 서관 옥상을 점거한 때는 지난 14일. 하루전날 정우택 지사는 취임후 첫 경제브리핑에서 하이닉스 낸드플러시 제2공장 유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취임초 정 지사는 '노사평화지대 구축'을 선언하고 하이닉스 하청노조 농성장을 첫 방문 현장으로 잡았다. 하지만 2개월만에 ‘경제특별도’를 위해 노사문제를 접고 공장유치에 팔을 걷는 모습으로 비쳐지기 십상이었다. 결국 하청노조는 도청 옥상 점거농성을 선택했고 거리투쟁 1년 9개월만에 가장 혹독한 시련을 맞고 있다.

결자해지의 ‘해결사’로 부각됐던 노화욱 부지사(전 하이닉스 전무)도 하청노조원들의 고용문제는 한치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범도민 중재위도 회사측의 완강한 벽에 부딪쳐 진퇴양난에 빠졌고 내부에서 해산론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하청노조는 기댈 곳도, 기대할 것도 없는 무중력 상태에서 도청 옥상 점거농성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 하청노조가 협상테이블에 내놓은 것은 원직복직(하청회사)과 고용보장이다. 지난해 7월 대전지방노동청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직후 하청노조와 중재위가 하이닉스측의 직접고용(정규직)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한발 물러선 상태다. 고용보장은 1년마다 체결하는 하청회사 고용계약이 해지되지 않도록 안전판을 확보해 달라는 요구다. 노동법상 동일업체에서 동일노동으로 2년이상 비정규직 근로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규정했기 때문에 원청회사에서는 수시로 도급업체를 변경하는 편법을 통해 법망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중재위가 제시한 타협안은 간접고용(하청 협력회사)과 생계비 지원이다. 하청노조원들에 대해 단계적인 원직복직 일정을 제시하고 1년 9개월 실직기간에 대한 생계비를 지원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닉스측은 1인당 1500만원 수준의 위로금 지급안을 유일한 협상안으로 고집하고 있다. 또한 노조원들을 상대로 32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아파트를 소유한 5명의 조합원들이 법원 압류통보를 받기도 했다.

하이닉스 하청노조원들의 원직복직이 절박한 이유는 사실상 일반 회사 취업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이닉스 하청회사 근무이력 때문에 취업에 실패하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하이닉스 청주공장은 15개 협력업체에 800~1000명의 비정규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또한 연말까지 700명의 본사 생산직 사원을 모집한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결코 100여명의 하청노조원들에 대한 ‘자리보전’이 어려운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 지역 노동계의 분석이다.

대전지방노동청이 고발한 하이닉스의 ‘불법파견’ 혐의 사건도 귀추가 주목된다. 청주지검이 1년이 지나도록 사건종결을 하지 않고 있으나 조만간 대검의 ‘불법파견 판정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사법처리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유죄인정을 받더라도 ‘징역 1년이하에 벌금 1000만원의 처벌대상에 불과하다’는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검찰의 기소여부에 따라 양측의 협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이닉스 노사분규,5가지 의문에 답한다.

경찰의 도청농성장 강제진압이 있던 19일 밤, 철야농성 천막에서 전국 금속노조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오병웅 부지회장을 만났다. 취재진은 하이닉스 노사분규에 대한 시민들의 5가지 궁금증에 대해 일문일답식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 부지회장은 민주노총 소속의 상급단체 전환문제도 하이닉스와 직접대화의 안건이 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노조는 노동자의 갑옷이다. 전투중에는 꼭 필요하지만 평화시에는 벗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실질적 권한을 가진 하이닉스가 직접 나선다면 모든 문제를 놓고 대화할 용의가 있다”

Q. 비정규직의 무조건적인 정규직 전환은 무리한 요구 아닌가?

노조설립 당시 우리가 요구한 것은 노조인정과 처우개선이었다. 처우개선은 실제로 원청회사인 하이닉스의 결정에 달렸기 때문에 직접대화를 요구한 것이었다. 현재 우리 노조가 원하는 것도 원직복직과 고용보장이지 정규직 전환이 아니다. 다만, 대전지방노동청에서 일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공정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정식 요청했던 것이다. 현재 검찰에서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수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Q. 대기업 협력회사의 임금처우 수준이면 양호한 상태 아닌가?

매년 9월이면 정부의 최저 임금 기준이 상향조정되는 만큼 월급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2004년 노조설립 당시 상여금을 포함해 비정규직 10년차 남자 직원이 주야 맞교대(12시간) 근무에 연봉총액이 2020만원이었다. 하지만 정규직 10년차 직원은 3교대(8시간) 근무에 연봉총액은 3800만원에 달해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실제로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현실이다. 특히 IMF이후 공통분담 명목으로 상여금 반납, 기본급 삭감등 정규직과 똑같 고통분담을 했다. 하지만 반도체 경기회복 이후 정규직 임금은 복구되고 있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낮아진 임금수준이 거의 그대로 유지돼 노조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Q. 노사분규의 발단이 하청노조의 불법파업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적법절차에 의한 합법적인 파업이었고 원청의 지시를 받은 하청업체에서 직장폐쇄를 하는 바람에 해직 노동자가 된 것이다. 2004년 10월 노조를 설립하고 하청회사 사장단과 10여차례 교섭을 시도했으나 고의적 지연, 회피로 일관했다. 그래서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내 집중교섭을 하기도 했다. 결국 노사합의에 이르지 못해 노동법에 보장된 합법적인 단체행동으로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Q. 왜, 폭력적인 시위방식에 의존하는가?

자본과 공권력이 폭력적 시위를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노사문제는 당사자간 협의가 대전제임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이 개입해 비무장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하고 위압적인 진압을 시도한다. 그러면 격분한 노조원들이 몸으로 저항하게 되고 폭력시위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평화적 집회시위야말로 우리가 가장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조차 거부하는 사측에서 평화적 시위에 어떻게 화답해 왔는가? 또 조용한 발언에 귀기울지 않는 우리의 사회적 여건 때문에 가두시위라는 선전홍보 방식이 동원된 것이다.

Q. 과연, 충북도가 사기업 노사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

민선 도지사는 행정가라기 보다는 정치가다. 이해충돌 상황에서 분쟁을 조정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정우택 지사는 후보자 시절 ‘순차적 복직’이라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취임 2개월이 지나도록 한치도 진전되지 못했고 오히려 경제특별도를 내세워 하이닉스 제2공장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사태가 수백명의 생존권이 걸린 시급한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 지사와 충북도의 노력은 충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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