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하청노조원들이 14일부터 도청 옥상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장기간 노사분규로 인해 노조원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새충청일보>는 지난 8월 15자 신문에 심층보도했다. 해당 기사의 전문을 옮겨 싣는다.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004년 12월 25일 새벽 4시 회사측의 직장폐쇄 조치로 일순간 거리로 내몰린 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일터로 복귀하려는 싸움이 1년 9개월째을 지속되고 있다.

청주시 흥덕구 향정동 1번지. 하이닉스 매그나칩 청주공장 정문 맞은편 인도에 진을 친 하청노조원들의 천막 농성과 매일 한차례씩 갖는 집회는 광복절을 하루앞둔 14일에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이어졌다.

한국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하이닉스 사태는 첨예한 노·사 간극이 좁혀질 것 같던 시점도 몇차례 있었지만 노조원들은 여전히 회사 정문과 북문을 번갈아 가며 '원직 복직'을 목청껏 외치며 '거대자본'에 맞서고 있다.

조합원들이 2004년 10월 22일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은 근로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것과 물가상승률에 못미치는 턱없이 낮은 급여를 개선해달라는 게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일한 만큼 대우를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2004년 12월 4일 하청 사장단의 폐업 발표로 인한 노·사 교섭 결렬과 파업 10일만에 직장폐쇄, 정리해고(2004년 12월 31일), 출입금지·업무방해금지가처분 결정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제기(2005년 1월 4일) 등 근로자들로서는 '사형선고'격인 일방적 조치들이 이어졌다.

조합원 이모씨(42)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공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조합원들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며 "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후 잔뼈가 굵은 곳인데 가긴 어딜 가란 말이냐"고 말했다.

장기간 싸움이 지속되면서 조합원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다.

당초 200여명에서 120명으로 줄어들긴했지만, 대부분 매일 오전이면 농성장에 나와 집회를 갖고 일정과 대책을 논의한다.

밤에는 가족을 위해 뛰어야 하는 이들은 택배회사 배달일부터 주유원, 대리운전, 경비일, 공사장 잡일 등 닥치는 대로 일감을 찾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됐고, 사정이 더 어려운 조합원들은 사채까지 써야하는 형편이 됐다. 카드빚 때문에 법원의 가압류 딱지가 날아온 조합원도 한 둘이 아니다. 게다가 회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아직 유효해 조합원들을 옥죄고 있다.

집단해고 사태가 있기전까지만해도 살림만했던 조합원들의 아내들은 식당 일이며, 제조업체 생산직 등 닥치는 대로 나서야하는 상황이 된지 오래이다.

경제적 사정이 악화되면 부부사이 역시 꼬이게 마련이어서 결혼한 조합원 상당수는 한 두 차례 위기를 맞지않은 가정이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중2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를 둔 조합원 가족 박모씨(41) 역시 제조업체에 취업해 생활비를 충당하며 남편의 '싸움'을 돕고 있다.

박씨는 "한창 자랄 아이들이 갖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며 "온갖 고생을 한 조합원들이 최소한 수긍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돼 남편이 하루라도 빨리 일터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합원 윤모씨(45)는 지난 5월 고 1인 큰딸이 수학여행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아버지로서 뼈져린 자책과 회한을 겪어야 했다.

윤씨는 "아비 때문에 사정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 딸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수학여행을 포기했다"며 "뒤늦게 합류시켜려했지만 이미 때가 늦어 허사였다"며 가슴 아파 했다.

조합원들은 대부분 전기, 환경, 대기 등 분야별 기술자들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6~7개의 자격증을 보유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싸움'을 했다는 이유 때문에 '과격한 노조원'이라는 굴레가 씌여진게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조합원 최모씨(39)는 "왜 안될 일을 시작했냐는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이 더욱 외롭게 하지만 정당성을 갖고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고 강조하고 "회사측에서는 '금전적 보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하지만 일터로 돌아가는 것 외엔 선택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노·사 직접 대화가 사실상 어려워지자 지난해 11월 10일 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범도민대책위원회에도 기대를 걸었으나 지지부진해진 상태다. 자치단체장들이 사태 해결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어 답답하기만하다.

민선 4기 출범과 함께 정우택 도지사와 정무부지사로 임명된 노화욱 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가 하이닉스 사태를 우선 해결하겠다며 도민들에게 수차례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노조 간부 이모씨(35)는 "정 지사는 취임 직후 천막농성장을 방문하는 등 관심을 보이는 듯 했으나 '방문'자체에 의미를 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고, 노화욱 전무 역시 언론에는 사태해결에 적극나서겠다고 언급했으나 아직 대화 제의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도민에게 약속한 대로 이젠 실행에 옮길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이런 사정과는 달리 하이닉스 반도체와 정규직 사원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올 여름을 보내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청주사업장은 사원 자녀 160여명이 참여하는 '2006 여름방학 사원자녀 꿈나무 교실'을 운영중이다.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22일까지 진행될 예정인 이 프로그램은 수영, 어린이 마술, 종이접기 등 다양한 과정을 4주간 진행하는 것이다. 회사측은 또 지난달 26일~28일까지 치악산 모 콘도에서 사원자녀 여름캠프를 개최해 스노클링 체험, 별자리 관찰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유적지 탐방, 관광지 체험 행사도 마련했다.

회사측은 당시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2006 대한민국 훌륭한 일터'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하이닉스반도체는 앞으로도 이 같은 다양한 행사를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사회 양극화 현상'이라고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 같은 일은 한때 한울타리 안에서 같은 회사일을 했던 구성원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너무 큰 '차별'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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