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표 정치부 차장

   
충청리뷰에 대한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결정에 따라 지난해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수동’을 출판한데 이어 올해도 지역탐구 시리즈의 일환으로 ‘육거리시장’을 주제로한 책을 쓰고 있다.

새벽시장을 취재하기 위해 육거리시장을 찾은 9월12일 새벽, 그 곳은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비록 노점이지만 전국의 농산물이 모이는 도매시장이 형성돼, 조금이라도 더 싼 값에 물건을 구입하려는 소매상인들과 벌이는 흥정이 소란스러웠다.

“그동안 이문도 없이 넘겨온 속내도 모르고…”라며 도매상인이 역정을 내자 “밑지는 장사가 어딨냐”고 소매상인이 맞받아친다. 가만히 지켜보니 흥정이라기 보다 물건을 주고받으며 서로 공치사를 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새벽시장이 활기찬 것은 도매시장도 도매시장이지만 보따리를 들고나와 난장을 벌이는 시골 아낙들 때문이다. 시장은 이들로 인해 비로소 구색이 갖춰지는데, 온갖 자연산 버섯에 산삼까지 좌판에 진열되고 대접 안에서 꼬물거리는 규격미달의 민물고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오전 8시가 지나면 새벽시장은 사실상 파장이다. 소매상인이나 식당주인 등 큰손들은 이 시간이 되기 전에 서둘러 장을 봐 자리를 뜬다. 도매시장은 오전 9시에 완전히 걷히지만 보따리를 들고나온 아낙들은 떨이를 할 때까지 남아 자리를 지킨다. 노점 단속반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도 이때부터다. 노점 때문에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고 일부 점포들도 불만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거리시장을 제대로 살리자면 작은 노점들까지 온전히 살려야 한다. 아케이드 설치공사도 좋고, 주차장 확보, 재래시장 상품권까지 청주시의 육거리시장 정책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일단 시장 안에 있는 노점들을 일렬로 정비한 것도 성공적이다.

청주시가 4차 아케이드 공사를 하면서 새벽시장에도 지붕을 씌우고 바닥도 타일이나 대리석으로 깐다고 하니 이 참에 이 곳의 보따리 상인들을 위해 제대로 난장을 벌일 장소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들쭉날쭉 벌인 좌판만 일렬로 잡아도 보행에 주는 불편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소 불편하더라도 갖가지 품목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새벽시장길이 육거리시장을 대표하는 풍미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육거리의 새벽시장이 활기차다고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굽은 허리, 바삐는 걷지만 불편한 종종걸음이 대부분이다.

보따리를 풀어놓은 좌판 위에도 간혹 모자라고 덜 여문 것들이 생긴대로 매겨진 값에 팔려 나간다. 유통과정에서 멍이 든 과일들도 이 곳에서 헐값에 팔린다. 이렇게 보면 새벽시장은 청주 최고의 도매시장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B품들도 나름대로 상품대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육거리 새벽시장이 더욱 번성해야만 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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