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 장학금 30억원 기탁, 도내 최고 개인 기부액
30년 환경기업인 외길, (주)지엔텍 코스닥 우량기업


▲ 정봉규 대성고 총동문회장. / 사진=육성준기자 한때 충무로 ‘스타’를 꿈꿨던 10대 소년이 이순(耳順)의 나이에 충북 ‘스타’가 됐다. ‘모교 장학금 30억원 기탁자’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대성고 정봉규 총동문회장(60·25회·지엔텍 대표). 그가 서라벌예대 출신의 영화배우 지망생이었던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인생은 한편의 극영화처럼 반전의 연속이었고, 정 회장은 ‘카리스마’ 넘치는 주연배우였다. 9월 5일 초가을 매미울음이 정겨운 대성고 교정에서 성공신화의 주인공을 만났다. “고교시절엔 책상물림의 ‘범생이’(모범생)는 아니었다. 학교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공부는 ‘적당히’ 놀기는 ‘열심히’ 한 편이었다. 60년대 한국영화 부흥기에 10대 시절을 보내면서 영화배우를 동경하게 됐다. 그래서 서울 서라벌예대에 입학했고 충무로 영화판을 돌아다녔다” 그가 2년만에 짝사랑하던 ‘영화판’을 떠나게 된 것은 국민배우 ‘안성기’ 때문이었다. 당시 히트작 ‘얄개전’의 주인공으로 동안(童顔)의 대학생인 정 회장이 ‘발탁’됐으나 막판에 중학생 ‘안성기’에게 배역이 돌아갔던 것. 인생 첫 도전에서 고배를 마신 정 회장은 고향으로 내려와 청주대 경영학과에 편입학한다. “그동안 꿈꿨던 영화세계와 실제 영화판은 엄청난 차이가 났다. 깨끗이 접고 대학에서 다시 공부를 하고 군대제대하고 나니 가족들이 공무원 취업을 권했다. 고위직에 근무하는 집안 어른이 특채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월급쟁이 생활은 도저히 내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사양을 하고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월급쟁이, 난 못할 것 같았다’ 국내 미개척 분야인 환경사업으로 방향을 잡은 정 회장은 76년 공영정화(주)를 설립했다.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설비하는 소규모 공장으로 출발했지만 시장 진입은 여의치않았다. 결국 짬짬이 빌려쓴 사채가 빚더미가 돼 사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에겐 지금도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 ‘함께 죽자’는 나약한 소리까지 했다. 이튿날 아내와 함께 자금조달 후견인 역할을 해주셨던 스님을 찾아가 솔직하게 고백했다. 부채가 7억 정도였는데 이자를 낮추고 5년간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통사정했다. 다행히 스님께서 채권자들을 잘 설득해 주시는 바람에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독실한 불교가정이었던 처가 덕분에(?) 불신자가 된 정 회장의 ‘방생’ 일화는 ‘세상의 이런 일이’ 한토막이었다. “80년대들어 부채는 모두 분할상환했지만 사업규모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전기가 필요했다. 그때 천신만고 끝에 포스코(포항제철)의 협력회사가 되면서 제2의 도약을 하게 됐다. 포항제철을 공략하기 직전에 인근 바닷가에서 횟감용 고기 10만원 어치를 사서 아내와 함께 부근에서 방생했다. 다른 고기들은 곧장 먼바다로 사라졌는데, 쥐치 한 마리가 기력이 다해서 30분간을 뒤척이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그런데 바다속으로 사라지기전에 주변을 한바퀴 돌더니 우리 부부쪽을 보면서 입을 뻐끔거리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 보였다” 기술력으로 포철과 손잡아 흥부네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주듯, 정 회장은 그날 포항 앞바다의 쥐치가 ‘포스코’를 연결시켜 준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 철강회사인 포스코가 손을 잡은 이유는 정 회장 회사의 기술력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회사가 보유한 첨단 집진기 장비(마이크로 펄스 에어콜렉터)를 공영엔지니어링이 국산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먼지를 제거하는 집진효율이 99.99%에 달하는 놀라운 기술력으로 대성목재, 한일시멘트 등 중견기업을 공략하다 90년 포스코와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때 박태준 회장이 외국 귀빈을 헬기로 모시고 포철을 방문했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꾸역꾸역 올라와 망신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사 시설관리팀을 제외시키고, 현지 공장 실무팀에게 대기오염 방지시설 전면교체 지시를 내렸는데, 우리 회사의 기술력을 소개한 신문기사를 보고 담당자가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공장규모가 200평에 불과하다보니 수용능력이 안된다고 도리질을 했는데, 그때 마침 안산 반월공단의 부도난 공장 1300평짜리가 나타나 임대계약서를 보여주고 마음을 돌리게 했다. 지금은 포항, 광양제철소의 신규 설비는 물론 유지관리 보수까지 맡고 있다” 2001년 회사명을 (주)지엔텍으로 바꾸고 코스닥에 상장시켜 ‘알토란’같은 환경기업을 반석위에 올렸다. 기술특허 10여건을 보유한 정 회장은 기업인으로는 드물게 지난 96년 환경기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또한 안정된 노사관계로 2년연속 신노사문화 우수기업(노동부)에 선정됐고 작년도엔 국세청으로부터 ‘모범납세자’ 표창을 받기도 했다. 서울·포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정 회장이 모교인 대성고(전 청주상고)에 본격적인 관심을 쏟게된 계기는 인문계 고교 전환 때문이었다. “2002년에 전통의 명문상고 교명을 내리고 대성고라는 인문계고로 바뀌니까, 출향 동문들의 불안감, 허탈감이 컸다. 하지만 학교가 그 자리에 있고 졸업기수도 그대로 이어받아 배출되기 때문에 모교전통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올해 서울대와 명문대 합격생이 60여명에 달해 모교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에 불을 당기게 됐다. 인문계 전환이후 박원규 동문(27회) 교장과 함께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온 모교 선생님들의 노고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이 분들에게 힘이 되고 후배들에게 더 큰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 장학재단 설립이라고 판단해 30억원을 기탁하기로 결심했다” ‘후배사랑 이어가기’ 50억원 목표 ▲ 2002년 청주상고가 인문계 대성고로 교명을 바꾸자 원로선배인 한운사옹(84·3회·극작가)이 직접 자작시를 지어보냈다. 한옹은 모교 후배들에게 ‘언제 어디서 만나도, 따스함을 주고 싶은 형제, 따스함을 받고 싶은 형제’라며 동문사랑을 노래했다. / 사진=육성준기자
도내 최고의 기록을 갈아친 개인 기부액 30억원, 과연 그 액수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인터뷰 자리에 합석한 총동문회 김현배 수석부회장이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당초에 정 회장은 30억원 규모의 장학재단을 염두에 두고 20억원을 자신이 기탁하겠다고 얘기했다. 다른 동문들이 10억원 정도 참여하자는 취지였는데, 누군가 재학재단 기금목표를 50억원으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그러니까, 정 회장께서 선뜻 ‘추가 30억원 모금은 어려울 수 있으니 내가 10억원을 더 내겠다’고 해서 개인 30억원 기부액이 정해진 셈이다. 다른 참여 동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또 한번의 배려를 하신 것이다”

정 회장의 통 큰(?) 기부는 지난 2일 총동문회장 취임식에서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날 25회 김용환씨(61·증평군) 오용식씨(61)와 27회 김세영씨(59)가 각각 1억원씩 총 3억원의 기금을 출연했다.

정 회장이 불지핀 ‘후배사랑 이어가기’ 장학금 모금운동은 전통 명문 ‘청주상고’의 혼을 되살려 ‘대성고’라는 새로운 명문신화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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