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우물터를 두고 촌락이 형성되던 시절
지하수 펌프가 개발되면서 우물물은 허드렛물로 전락
진달래 꽃 피고 지는 산골 마을의 앳된 소녀가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양철 물통 두 개에 물을 가득 담아서 찰랑찰랑 물이 넘칠 것 같은 아슬함속에서도 물지개만 흔들리고 물은 전혀 넘치지 않는 소녀의 걸음새가 참 신기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밥 짓는 것이 늦었는지 카메라 앞이 수줍어 고개를 떨구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녀의 표정은 옹달샘처럼 맑고 고왔다.
젊은 새댁이나 다 큰 처녀들은 물긷는 길에 아는 남정네와 마주쳐도 눈을 내려 뜨고 조심조심 발걸음만 재촉했다. 우리나라 여인들의 정숙함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샘터는 부지런한 아낙들의 물긷는 소리와 함께 아침이 찾아 왔다.
“빨간 태양을 가슴에 안고 / 사나이들의 잠이 길어진 아침에 / 샘터로 나오는 여인네들은 젖이 불었다 / 새파란 해협이 항시 귀에 젖는데 / 마을 여인네들은 물이 그리워 / 이른 아침이 되면 / 밤새 불은 유방에 빨간 태양을 안고 / 잎새들이 목욕한 물터로 나온다 / 샘은 사랑하던 시절의 어머니의 고향 / 일그러진 항아리를 들고 / 여인들은 샘터로 나온다 “
시인 조병화님의 샘터에 대한 글이다. 물은 모든 생명체의 원천이고 그 중 샘터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우리의 소중한 물이 담긴 소중하고 중요한 곳이다. 샘은 땅에서 물이 솟는 자리로 새암, 옹달샘 또는 시암터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인류는 선사시대 이전부터 샘물을 중히 여겨 신성시했고 청결하게 가꾸어왔다. 양지 바른 산 밑에 좋은 샘물이 솟아 오르는 곳에 한집 두집 마을 이루어면서 촌락이 형성됐고 샘물은 공동 우물터가 됐다. 공동 우물터는 아낙들이 물동이나 자배기들을 가지고 와서 물을 길어 가기도 하고 채소를 씻거나 더러 빨래를 하기도 했다.
손으로 땅속의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는 작두샘 펌프가 개발되면서 집집마다 쇠파이프를 땅속에 박아 물을 퍼 올려 사용해 공동 샘터는 허드렛물로 빨래하는 빨래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이 흔해지니까 물의 소중함을 잊고 마구잡이로 공동 샘터는 훼손됐고 오염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물 오염은 아마 여기가 시발점 일 것이다. 그리고 수도가 보급되고 각종 용수의 사용으로 물의 오염은 심각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우리 조상들이 중요시하고 신성시한 샘터의 기억처럼 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생명의 원천인 물은 우리를 결국은 외면하고 말 것이다.
/ 前 언론인·프리랜서 사진작가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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