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싱크탱크는 ‘노무현 정부의 지도 제작자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임채정 위원장)가 노무현 정부의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여기에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과 지방분권화, 국가시스템 혁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재벌개혁 등 공정 경쟁질서 확립, 특권과 차별 시정을 통한 삶의 질 향상, 빈부 격차 해소 및 정보기술(IT)과 문화 대국 수립, 특권을 배제한 국민통합 등의 노무현 당선자가 후보 때부터 강조한 핵심 공약들이 녹아들어 있다.
이중 노무현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국정비전은 ‘동북아 중심국가’와 ‘지방분권화’로 요약된다. 노 당선자가 핵심공약으로 꼽고 있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동북아 중심국 프로젝트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장단기 추진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지방분권화 역사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5년간 노무현호(號)의 순탄한 항해를 인도할 일종의 로드 맵이다. 이 로드 맵은 인수위 주도 아래 앞으로 토론과 청문회 등을 거쳐 구체화된다.
지난 12월 30일 노무현 당선자는 인수위원들과의 첫 상견례에서 이들에게 ‘노무현 정부의 지도제작자’라고 불렀다. 나아가 ‘시스템 인사’ 방안도 부탁했다.
“겸손하고자 해서 인수위를 실무형이라 불렀지만 인수위원 여러분은 결코 실무형의 분들이 아니다. 여러분은 노무현 정부의 지도제작자들이다. 국정을 이끌어간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 달라. 나는 인사도 시스템으로 하고자 한다. 여러분이 인사자료도 축적해 달라. 인사에 관한 정보의 흐름은 열되 인사청탁은 차단할 좋은 방안을 마련해 달라.”
임채정 인수위원장은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선정한 만큼 책임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강조했다.
“인수위원은 누가 봐도 정예 인물로 구성됐다고 자부한다.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선정했다. 책임도 그만큼 크다. 16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정부, 역사 창출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자.”

40∼50대 개혁성향 교수 전성시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선정한 대통령직인수위 인선 내용을 보면 40∼50대 개혁성향 학자들의 진출이 두드러진다. 국민참여본부와 행정실장을 제외한 인수위원 25명 가운데 50대와 40대가 각각 12명, 11명으로 주축을 이루고 있고 60대와 30대는 임채정 위원장(61)과 박범계 정무분과위원(39) 각 1명씩뿐이다. 차기 대통령이 70대에서 50대로 젊어지면서 참모진도 젊어진 것이다.
정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는 40∼50대 개혁성향 교수들의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수위에도 대부분 노 당선자 정책자문그룹으로 활동한 개혁성향 교수들이 발탁됐다.
인수위원 25명 가운데 임채정 위원장, 김진표 부위원장(국무조정실장), 이병완 기획조정간사(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박범계 정무분과위원(변호사), 김영대(개혁당 사무총장)·정영애(충북도 여성정책관) 사회문화여성 분과위원, 정순균 대변인(노무현 후보 언론특보) 등 7명을 제외한 18명이 현직 교수나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이다. 탈(脫) 정치형 인수위를 구성한다는 노 당선자의 의중이 그대로 반영됐다.
우선 기획조정 분과의 성경륭 한림대 교수와 정무분과의 윤성식 고려대 교수는 노 당선자의 정책자문그룹의 일원이었다. 성 교수는 권력분산 및 지방분권분야의 자문팀장을 맡아 행정수도 이전 공약 개발에 참여했고, 윤 교수는 인사 행정 분야의 전문가로 정부조직개편 문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교통일안보 분과에는 북한 핵문제 태스크포스팀이 그대로 옮겨온 것이 눈에 띈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론적으로 지원, 뒷받침했던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노 당선자의 통일 외교분야 자문팀장을 맡았고,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수행팀에 참여하는 등 현 정부의 대북정책 집행과정에 깊이 관여한 대표적인 ‘햇볕정책’ 이론가이다.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교적 온건한 군축 및 북한지도자 전문가이다.

지방대 교수 출신 싱크탱크 뜬다

또 노무현 당선자가 직접 선정한 인수위 명단은 앞으로 정권 주류층의 ‘인맥지도’가 크게 뒤바뀔 조짐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지방대 교수들이 많이 발탁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인수위원 25명 가운데 교수는 모두 13명인데, 이중 8명이 지방대 교수다. 전체 인수위원 중의 40%, 교수 가운데 약 62%가 지방대 교수다. 세칭 명문대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소속 교수는 윤영관 외교통일분과위 간사(서울대)와 윤성식 정무분과위원(고려대)뿐이다.
8명의 지방대 교수들은 지역적으로 고루 안배돼 있다. ▲대구경북은 이정우 경제1분과위 간사(경북대), 이종오 국민참여센터본부장(계명대), 권기홍 사회문화여성분과 간사(영남대) ▲부산경남은 허성관 경제1분과위원(동아대) ▲전남은 박기영 경제2분과위원(순천대) ▲경기는 김대환 경제2분과위 간사(인하대) ▲강원은 성경륭 기획조정분과위원(한림대), 서동만 외교통일분과위원(상지대) 등이다. 1월 5일 확정된 인수위 전문위원단에도 김용일(한국해양대) 이성호(부경대) 등 2명의 지방대 교수가 포함됐다.
노 당선자가 이렇게 지방대 교수 또는 지방 출신을 중용한 데는 인재 풀의 한계라는 배경도 있지만 그보다는 것은 다분히 의식적으로 중용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 당선자의 한 참모는 “민주당 후보 경선을 앞두고 정책자문그룹을 구성하기 위해 학자들을 접촉했는데 세칭 명문대 교수들은 대부분 거절했다”면서 “그 때문에 지방대 교수 중심으로 짜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그보다는 당선자가 지방분권화에 대한 자신의 강한 의지를 내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일찌감치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해온 지방분권주의자답게 노 당선자는 지방발전의 핵심전략으로 지방대를 지역의 ‘기획본부’로 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중앙 정부 인재 풀에서 소수파 또는 소외돼온 지방대 교수들이 새 정부에서는 싱크 탱크로 떠오를 전망이다.

또 다른 인재 풀 시민단체 참여학자들

이번 인수위 명단을 통해 앞으로 새롭게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또 다른 인재 풀은 시민단체 출신이다.
우선 노 당선자 정책자문단의 좌장 격인 김병준 정무분과 간사(국민대 행정대학원장)는 95년부터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을 맡아왔다. 이은영 정무분과 위원(외국어대 법대학장)은 참여연대 맑은 사회 만들기 본부장을 맡아왔다.
이밖에 재벌개혁을 주창하는 김대환 경제2분과 간사(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94년부터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한국노총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경제분과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장하성 교수(고려대 경영학)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으로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을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밖에 정태인 경제1분과 위원(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정책전문가연대회의 회원으로, 허성관 경제1분과 위원(동아대 교수)은 부산 경실련 납세자운동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문화여성분과에도 양대 노총 출신들이 포진해 있어 노 당선자의 ‘친근로자 정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김영대 위원은 청계피복 노조에서 활동하다 98년부터 민노총 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직전 유시민씨가 이끄는 개혁국민정당 사무총장을 맡았었다.
이처럼 경제·사회분과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른바 ‘변형윤 스쿨’의 제자들로서 김대중 정부에 참여했던 ‘중경회’ 멤버들보다 더 강한 재벌 개혁론자들이다. 최근 인수위의 재벌 금융개혁 방안에 대해 재계와 금융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재벌개혁·대북정책 공세 주목 대상

이처럼 노무현 정권의 핵심 정책을 주도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는 시민단체 출신의 개혁·진보성향 학자들이 대거 포진해 이른바 ‘노무현 개혁 프로그램’ 입안 과정에서 비정부기구(NGO)의 입김이 거세질 전망이다. 또 분과위원들도 그동안 학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많은 데다 분배를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칫 균형감을 상실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새 정부의 재벌 개혁정책이 강성 기조를 띨 것으로 전망되어 재계가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재계 고위 관계자로는 처음으로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이 재벌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서 향후 재계의 대응도 주목된다. <중앙일보>는 1월5일자에서 손 부회장이 대기업과 재벌의 분리, 편법적 상속 반대.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해체 검토 발언 등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주요 재벌정책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손 부회장은 특히 노 당선자의 대기업과 재벌의 분리방침에 대해 “대기업과 재벌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대기업과 재벌 분리정책은 비현실적”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재계가 긴장하고 있는 구조본부 해체 검토설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민간기업의 내부조직에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면서 현재 유형벌 포괄주의인 상속세와 증여세를 완전 포괄주의로 바꾸자는 노 당선자의 공약에 대해서도 “무엇보다 과세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하는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부에서는 ‘7% 경제성장론’까지 시비를 걸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정책 가운데 상당수는 당 외부에서 다듬어졌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과세’나 ‘임기중 연 7% 성장’처럼 노 후보가 텔레비전 합동토론회에서도 여러 번 밝힌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약의 아이디어는 대체로 자문교수단에서 나왔다. 정책자문단에는 유종일 KDI 국제대학원 교수와 윤원배 숙명여대 교수, 김대환 인하 대 교수, 이정우 경북대 교수, 경제평론가 정태인씨 등이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장하원 KDI 교수와 윤영민 한양대 교수,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 등도 정책입안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이며 유종근 전 전북지사의 동생인 유종일 교수는 별도의 팀을 이끌며 기업 금융 조세정책의 기본틀을 짰다. 앞서의 상속·증여세에 대한 완전포괄주의 과세, 금융계열사 계열분리청구제도, 7% 성장론 등은 ‘유종일팀’에서 나온 성과다. 유종일 교수는 정책참모일 뿐만 아니라 광주경선 때에 대중 앞에 나타나 “형님(유종근 전북지사)이 경선에 나왔지만 노무현 후보를 돕고 있다”고 말해 설득력을 갖고 노 후보에 대한 ‘음모론’을 일축했다.
재벌개혁뿐만 아니라 북한핵 등 남북관계에 대한 접근방식도 보수층의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인수위 외교통일안보 분과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론적으로 지원, 뒷받침했던 북한 핵문제 태스크포스팀이 그대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자칫하면 균형감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부처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선자의 한 측근 인사는 “당선자가 중도적인 윤영관 교수를 외교통일안보 분과 간사로 앉힌 것을 보라”면서 노 당선자가 ‘간단한 사람’이 아님을 암시했다.
윤영관 교수는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교수, 세계은행 컨설턴트, 존스홉킨스대 객원교수 등을 역임한 국제정치경제 전문가로 4명의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 중 유일하게 미국에서 수학한 ‘미국통’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따라서 노무현 새 정부의 대미정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밖에 자문위원단의 문정인 교수(연세대 국제정치)도 대미정책 및 국정원 개혁 자문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 발탁인사 성패가
노무현 5년 성패 좌우

흥미로운 사실은 ‘지식인 70인의 그랜드디자인’이라는 부제를 붙인 <신동아> 지령 500호 기념 특별부록 <21세기 한국 대개조론>에 참여한 지식인 필진들의 상당수가 인수위와 당선자 비서실에 발탁된 점이다. 필진으로 참여한 김병준 교수, 서주석 연구위원, 유종일·윤영관·장하성·최장집 교수 등은 노무현 후보 정책자문단 참여인사들이다. 또 공무원 조직의 다면평가제 도입 같은 정책제안도 이 ‘21세기 한국 대개조론’에 포함돼 있다.
이를테면 윤영관 교수는 ‘시스템 개혁론’에서 “한국 사회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한때 성공적으로 작동했다고 믿었던 정치경제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위기”라고 진단한다. 윤 교수는 또 우리가 경험한 IMF 위기가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권력의 집중구조로 인한 정치경제 구조의 위기라는 점에 합의가 이뤄져 그것을 개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과 정치개혁은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데도 그 시작의 작업이 맨 나중으로 미뤄지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위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혁의 핵심과제는 경제권력, 정치권력, 사회권력(언론)의 집중구조를 분산시키고 이들 권력간의 유착관계를 차단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수위의 초기 활동에서 드러난 여러 특징들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앞으로 국정운영을 하는 데에도 실질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 활동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관행에서 탈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개혁성·실험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 또 인사 문제 등에서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하고 인터넷 활용을 중시하는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인수위는 이미 출범 초기에 인수위 역할을 “정책수립에서 시행과정까지 ‘정·관·학·민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하는 새로운 국정운영 모델을 제시하고, 국정참여센타를 설치, 인터넷 등을 통해 국민과 공무원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접수하고 정책과 비전 수립에 반영할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의 새로운 ‘개혁 실험’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일단 인수위 발탁인사의 ‘개혁 실험’ 성공 여부를 보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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