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음성 큰바위 조각공원에 소서노 동상건립…인근 백제 초기 도요지도 발견돼

차배옥덕 소서노기념사업회장, 충북도에 ‘소서노-단재’잇는 테마관광코스 제안
인천은 비류가 도읍지로 정한 근거로 ‘소서노 역사공원’ 추진중

소서노는 우리역사에서 나라를 두 번이나 세운 인물이다. 최근 문화방송의 드라마 주몽을 통해 잊혀졌던 소서노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대사속 여성사는 장막에 가려져 있다. 단지 소서노, 유화부인, 주통천녀등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 차배옥덕 소서노 기념사업회장 차배옥덕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장(55)이자 여성학자인 그는 이른바 ‘소서노 학자’다. 그가 운영하는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의 사이트의 도메인 이름도 ‘소서노(soseono)’이고, 아이디 역시 ‘soseono’다. 5년전부터는 소서노 기념사업회를 꾸리고 소서노 재조명사업에 학자의 열정을 쏟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시나리오의 기초를 썼고, 소서노의 영화화 작업도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귀띔했다. 또 지난 세계 여성학대회에서 차배 회장은 충북 음성 생극면 관성리 현대정신병원의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을 찾았다. 이곳에 다름아닌 소서노 동상이 있기 때문이다. 차배 회장은 “세계 여성학 대회를 통해 소서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곳에서 행사를 열었죠”라고 설명했다. 음성큰바위얼굴 조각공원은 현대정신병원 정근희 이사장이 세웠는데, ‘세계사를 한 눈에 보자’는 테마로 10년이 넘게 준비했고, 이곳에는 역대 대통령부터 역사, 문화적인 인물들을 조각해 놓아 지역의 명소가 되고 있다. 소서노의 얼굴은 ‘계란형’? 차배 회장은 “흔히 역사적으로 유명한 한국여성들을 손꼽으라고 하면 신사임당, 명성황후, 유관순 등을 말하죠. 한마디로 일본의 식민지사관교육 때문에 고대 여성사는 더욱 절단돼 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 소서노 동상
“소서노는 얼굴이 계란형이라 전해지죠. 또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창업에 관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만 남성중심 사관으로 기록돼있기 때문에 편린만 남아있는 셈이죠.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소서노를 ‘조선 역사상 유일한 창업 여대왕’이며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운 이’로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 이 음성과 진천 지역 사이에는 백제 초기의 ‘도요지(도자기를 굽는 터)’가 발견된 기록도 있고요.”

차배 회장은 “지난해 충북도 관계자와 도지사, 군 관계자를 만나 조각 공원 진입로를 ‘소서노로’로 명명할 것과 ‘소서노-백제 초기 유적지-단재사당’을 묶어 관광투어를 만들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백제 초기 유적지면 일본 관광객들이 몰려올텐데, 지역의 문화자원을 왜 방치하는 지 모르겠어요. 음성군은 오로지 평강공주에만 매달리고 있더라고요.”

차배 회장은 “소서노의 활동범위는 고구려, 백제, 발해, 일본까지 펼쳐져 있어 동북아 고대사 연구의 키워드는 바로 소서노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소서노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여왕이며, 중국이 고대사를 자기 역사로 약탈하고 있는 이때 소서노를 지키는 것이 결국 우리의 고대사를 지키는 것입니다.”

한편 “인천은 이미 큰 아들 비류가 도읍지로 선택했다는 기록을 토대로 소서노공원을 건립중”이라고 전했다.

■ 소서노는 누구인가
고구려 백제 두나라를 창업한 여왕
졸본 토착세력의 딸로 주몽과 손잡아


2000여 년 전 만주 졸본천에 살던 소서노는 이 지역 토착세력 연타발의 딸이자 온조와 비류 두 아들을 둔 과부였다. 기원전 37년 경 스물 아홉의 이 과부 소서노와 부여에 임신한 부인 해씨를 두고 망명한 스물 한살의 주몽이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만남은 후에 고대역사의 큰 획을 긋게 된다. 소서노는 졸본의 미래를 위해 뜨내기였던 주몽과 손을 잡고, 주몽은 그녀의 자본과 토착세력을 바탕으로 고구려를 건국하기에 이른다.

‘삼국사기’ 백제건국기사에는 “주몽이 나라의 기초를 개척하며 왕업을 창시함에 있어서 소서노의 내조가 매우 많았으므로 주몽이 소서노를 특별한 사랑으로 후대(厚待)했고 비류 등을 자기 소생처럼 여겼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고구려를 창업한 공이 주몽의 아들인 유리왕에게 돌아가고, 소서노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토착세력을 바탕으로 유리왕 축출에 나설수도 있지만, 그녀는 두아들을 데리고 남하해 백제를 창업한다.

만주를 떠나 한반도로 남하한 소서노는 한강유역에 하남 위례성을 쌓았다. 이처럼 소서노와 차남 온조는 한남에 도읍지를 정했지만, 장남 비류는 미추홀(인천근처)을 선택한다. 후에 비류는 미추홀은 물이 짜서 백성이 편하게 살 수 없다고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구려를 세운 공은 주몽에게, 백제를 세운 공은 아들 온조에게 돌아가 그동안 소서노는 역사속에서 잊혀진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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