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음성 큰바위 조각공원에 소서노 동상건립…인근 백제 초기 도요지도 발견돼
인천은 비류가 도읍지로 정한 근거로 ‘소서노 역사공원’ 추진중
소서노는 우리역사에서 나라를 두 번이나 세운 인물이다. 최근 문화방송의 드라마 주몽을 통해 잊혀졌던 소서노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대사속 여성사는 장막에 가려져 있다. 단지 소서노, 유화부인, 주통천녀등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차배 회장은 “지난해 충북도 관계자와 도지사, 군 관계자를 만나 조각 공원 진입로를 ‘소서노로’로 명명할 것과 ‘소서노-백제 초기 유적지-단재사당’을 묶어 관광투어를 만들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백제 초기 유적지면 일본 관광객들이 몰려올텐데, 지역의 문화자원을 왜 방치하는 지 모르겠어요. 음성군은 오로지 평강공주에만 매달리고 있더라고요.”
차배 회장은 “소서노의 활동범위는 고구려, 백제, 발해, 일본까지 펼쳐져 있어 동북아 고대사 연구의 키워드는 바로 소서노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소서노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여왕이며, 중국이 고대사를 자기 역사로 약탈하고 있는 이때 소서노를 지키는 것이 결국 우리의 고대사를 지키는 것입니다.”
한편 “인천은 이미 큰 아들 비류가 도읍지로 선택했다는 기록을 토대로 소서노공원을 건립중”이라고 전했다.
■ 소서노는 누구인가 고구려 백제 두나라를 창업한 여왕 졸본 토착세력의 딸로 주몽과 손잡아 2000여 년 전 만주 졸본천에 살던 소서노는 이 지역 토착세력 연타발의 딸이자 온조와 비류 두 아들을 둔 과부였다. 기원전 37년 경 스물 아홉의 이 과부 소서노와 부여에 임신한 부인 해씨를 두고 망명한 스물 한살의 주몽이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만남은 후에 고대역사의 큰 획을 긋게 된다. 소서노는 졸본의 미래를 위해 뜨내기였던 주몽과 손을 잡고, 주몽은 그녀의 자본과 토착세력을 바탕으로 고구려를 건국하기에 이른다. ‘삼국사기’ 백제건국기사에는 “주몽이 나라의 기초를 개척하며 왕업을 창시함에 있어서 소서노의 내조가 매우 많았으므로 주몽이 소서노를 특별한 사랑으로 후대(厚待)했고 비류 등을 자기 소생처럼 여겼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고구려를 창업한 공이 주몽의 아들인 유리왕에게 돌아가고, 소서노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토착세력을 바탕으로 유리왕 축출에 나설수도 있지만, 그녀는 두아들을 데리고 남하해 백제를 창업한다. 만주를 떠나 한반도로 남하한 소서노는 한강유역에 하남 위례성을 쌓았다. 이처럼 소서노와 차남 온조는 한남에 도읍지를 정했지만, 장남 비류는 미추홀(인천근처)을 선택한다. 후에 비류는 미추홀은 물이 짜서 백성이 편하게 살 수 없다고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구려를 세운 공은 주몽에게, 백제를 세운 공은 아들 온조에게 돌아가 그동안 소서노는 역사속에서 잊혀진 인물이었다. |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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