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청주박물관, ‘무심천 사람들’ 특별전 시대별 유물공개 및 무심천 지명 밝힌 호서전도 공개
이어 통일신라시대에는 청주는 작은 서울로서 자리매김한다. ‘서원경’이라는 당시 지명은 지방행정중심도시로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 운천동 사적비와 탁본, 동종등이 대표적이다.
고려시대에는 무심천에 불교문화가 꽃을 피웠다. 청주 사뇌사지, 흥덕사지, 운천동 사지 출토 유물 등에서 고려금속공예의 진수를 볼 수 있고, 또 당시 무덤 출토자료를 통해 고려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청주가 삼남제일의 항교가 있는 곳으로 기록돼, 교육의 도시였고, 유교문화가 융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번전시에서는 도지정 문화재 4점도 공개된다. 바로 영조대왕태실가봉의 궤와 을축갑회도와 문서, 눌재 강수의 유고판목등이 그것. 이러한 유물전시외에도 청주를 기록한 역사지리서, 사진등도 함께 선보인다. 또 생태연구소 터에서는 일일 생태체험활동도 벌일 예정이다. (문의 255-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