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허파탈로치.’ 속리산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작은 산골학교 수정초등학교 조철호(56) 교장의 별명이다. 허파에 바람 든 페스탈로치. 교육에 대한 열정이 페스탈로치 못지않고, 학교 현장을 더 낫게 바꾸기 위해 끝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추진한다고 다른 교사들이 붙여줬다. 2003년 3월1일 초임 교장으로 이 학교에 오면서 그는 농촌학교의 모범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뤄보기로 결심했다. 수정초교는 그로 인해 기분 좋은 변화의 몸살을 앓았다.

그는 부임 뒤 속리산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였다. 학교와 지역 사회는 공생 관계라고 믿기 때문이다. 속리산 황톳길 오리숲 걷기, 속리산 사랑 가족 등반대회 등 이 학교의 많은 행사는 속리산에서 펼쳐진다. 운동회도 속리산 숲속에서 열린다. 학급 이름도 수정봉(1학년), 토끼봉(2학년), 비로봉(3학년), 관음봉(4학년), 문장대(5학년), 천황봉(6학년) 등으로 바꿨고, 교사들 사물함에도 이름 대신 정이품송, 원통보전, 쌍사자석등 등을 붙여 놓았다. 속리산 자랑대회도 열고, 속리산 관광 그림엽서를 띄우는 행사도 벌인다.

방과후 학교도 짱짱하다.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교실, 일본어·중국어 강좌, 한자, 주산·암산, 독서, 영화·음악 감상, 서예 등 여느 도시 학교 못지않은 좋은 프로그램이 많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부분 도서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학교 도서관은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도시 학교 부럽잖은 시설도 갖췄다. 최신 치과 진료시설을 갖추고 비만 관리 프로그램인 ‘날씬이 교실’도 운영하는 양호실, 에어커튼까지 설치된 급식실, 창고를 개조해 만든 서예실 등. 6학년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학습이 가능하도록 대형 액정화면을 갖춘 텔레비전을 들여놨고, 교사와 학생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교탁 대신 이동식 칠판을 마련했다. 또 운동장 한쪽에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정자형 야외 도서관을 꾸몄고, 교사 뒤편 테니스장 옆 공터에는 지역주민들이 운동과 행사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다목적 공간을 짓고 있다. 가게나 파출소에 열쇠를 맡겨 주민들이 편하게 쓰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집보다 좋은 학교, 아이들이 오고 싶어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퇴임 때 내 안의 모든 에너지가 다 소멸했다는 느낌이 들도록 남은 기간 동안 무한 교육 봉사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밤에도 열린 학교’ 책과 소곤소곤
수정초등학교 특별한 도서관 /

4일 저녁, 충북 보은군 속리산 수정초등학교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방학인데도 학교 건물 2층 오른쪽 교실에는 불빛이 환하다. 도서관이다. 2004년 11월부터 시작된 ‘밤에도 열리는 학교’ 프로그램에 따라 이 학교 도서관은 밤10시까지 문을 연다. 도서관 안에는 에어컨이 있어 책읽는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피서지다.

‘밤에도 열린 학교’는 “농촌학교의 모범을 만들고자” 애쓰는 이 학교 조철호 교장의 열정이 이뤄낸 기적이다. 2003년 초임 교장으로 온 그의 눈에 맨 먼저 들어온 것은 수정초 아이들이었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수정초교는 학부모 대부분이 식당, 숙박 시설, 기념품 가게 등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밤늦게까지 가게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부모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가까운 곳에 학원도 없어 아이들은 책이나 공부는 고사하고 놀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는 학교가 아이들의 방과후까지 책임져야한다고 여겼다.

밤 10시까지 개방 방과후 둥지로, 1년에 두차례 전교생 ‘서점 여행’
엄마 아빠와 함께 독서캠프도, 오후엔 영어 중국어 일어 배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고민 끝에 도서관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 도서관을 늦게까지 열면 아이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면서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학교 행정을 아는 사람은 방과후에 학교 문을 여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지 안다.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학교가 져야 하는 게 현실. 학교 문보다 마음을 열기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조 교장은 “사고를 겁내면 교단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제대로 된 도서관 공간이 없었고, 낡고 오래된 책들은 창고와 신발장에 쌓여 있었다. 때마침 정부에서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 교장과 교직원들이 노력한 끝에 2004년 8월 교육부로부터 35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도시의 어떤 학교는 1억원 가까운 돈으로 도서관을 새로 단장하는 데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었지만 조 교장은 제주도에서 열린 도서관 대회와 충북 지역 20여개 학교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벤치마킹’을 하고 시공업자를 만났다.

“나중에 욕을 많이 먹었어요. 일을 맡기지도 않을 거면서 여러 차례 견적서를 내도록 했다고 불평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도서관을 제대로 꾸미려면 어쩔 수가 없었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수정초등학교 도서관은 여느 도시 학교의, 1억원 가까이 들인 도서관 못지않은 시설을 갖췄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서가를 꾸미고 도서관 한쪽에는 영상물을 볼 수 있는 빔프로젝터 시설도 갖췄다.

그리고 그해 11월. 마침내 ‘밤에도 열린 학교’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밤에도 일하는 교사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조 교장 부부와 교사들이 번갈아 가며 도서관을 지켰다. 안정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조 교장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 전산담당 교사를 채용했다.

그렇게 ‘밤에도 열린 학교’는 날개를 달았다. 오후 6시면 아이들은 요일별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배운다. 영어는 원어민인 비키가, 중국어와 일본어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보은도서관에서 대출받은 디브이디(DVD)로 영화를 상영한다. 도서관이 활성화되면서 조 교장은 아이들이 책과 도서관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학교는 매년 도서관과 교실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숙식을 함께하며 책을 읽는 독서캠프를 연다. 특히 이 학교는 1년에 두 차례씩 ‘책을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이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교생이 학년별로 나눠 보은군 읍내에 있는 서점에 책을 사러 가는 행사.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책을 고르고 가져와 읽고 친구들과 돌려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과 친해진다. 3주 뒤 아이들로부터 책을 거둬 서점에 가져다주면 서점에서는 관리번호를 붙여 학교 도서관에다 납품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고르고, 도서 관리를 위한 품도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시스템도 그가 고안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서관을 들를 때마다 안타까움이 많다. 도서관 리모델링에 정부 지원예산을 쏟아 부은 결과 도서관에 좋은 책을 사다 둘 예산이 없어서다. 이를 위해 그는 오늘도 발품을 팔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까르르…중얼중얼…엄마 무릎서 독서삼매경

‘두돌 책벌레’ 최예지와 엄마 강혜진씨/

올해 25개월 된 최예지는 동네에서 ‘똑똑한 책벌레’로 통한다. 간식 먹고, 블록놀이 하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뒹굴며 보낸다. 주로 그림책들인데 보고 또 본다. 엄마가 읽어주기도 하고, 혼자서 보기도 한다.

엄마 강혜진(29)씨는 예지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막연히 아이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태교로 책을 읽어줬다. 그런데 지역 신문을 통해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알고는 아이에게 책읽어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됐다.

아이가 6개월이 됐을 때 찾아간 보건소(서울 중구)에서는 3권의 책과 북스타트 리플릿이 든 꾸러미와 근처 작은도서관 주소와 연락처를 주었다. 북스타트 자원봉사자는 “실감나고 재미있게 읽어주라”고 조언했다. 처음 몇달간은 북스타트에서 선물로 받은 책과 주위에서 물려받은 책 대여섯 권 정도만 계속 읽혔다. 서너달이 지나면서는 동네에서 가까운 어린이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기 시작했다.

예지는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겨우 몸을 가누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 돌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별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굴리거나 손가락으로 짚으며 더 읽어달라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재미있는 대목에선 까르르 웃기도 했다. “〈누가 누가 잠자나〉라는 책 맨 끝부분에 ‘우리 아기 예쁜 아기 쌔끈쌔근 잠자지’라는 표현이 나와요.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아이 볼을 쓰다듬어 줬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부분을 읽으면 내 손을 자기 볼에 가져가서 쓰다듬어 달라고 하더군요. 참 놀랐죠.”

만 두돌이 갓 지난 예지는 자주 읽는 책들은 거의 외웠다. 자주 읽어준 책은 사흘만에 내용을 거의 외워 혼자 읊는다. 책 구절을 중얼대며 잠을 청하기도 한다.

예지는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백화점에 가서는 “집에 가서 책보고 싶다”고 조르고, 외할머니 집에 며칠 머물 때면 집에 두고 온 책들을 보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기도 한다. 요즘엔 엄마 요리책, 아빠 학술서적도 읽어달라고 조르기 일쑤다.

강씨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것은 단지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거나 지식을 전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부모와 아이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점이 더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책을 읽으면 아이와 부모 모두 무한한 행복에 빠져들죠. 사랑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강씨는 또 어릴 때 책읽는 습관이 생기면 커가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내용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면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책이 미래입니다.

한겨레신문사는 시민단체인 책읽는사회, 삼성과 함께 아이들이 책과 함께 자라날 수 있도록 ‘희망의 작은도서관’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농산어촌 초등학교 도서관과 민간이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책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고, 책을 읽어주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라난 아기들은 커서도 책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기들이 책과 함께 자랄 수 있도록 생후 8개월 전후의 아기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북스타트 운동도 시작하고자 합니다.‘희망의 작은도서관’ 사업과 북스타트 운동은 매주 수요일치 27면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아기들에게 책가방을 선물해 주세요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은 아기들이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태어난 지 8개월 전후의 아기들에게 책가방을 선물하는 북스타트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책읽는사회’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을 부담하는 북스타트운동은 이 땅에 태어난 아기들을 우리 사회가 함께 돌보는 사회적 모성을 담고 있습니다. 뜻있는 기업이나 단체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북스타트 참여 및 후원 문의 (02)3675-8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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