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싫은 여름은 무더위로 앙탈을 부리는데 이른 새벽 단 잠을 깨우는 소슬바람에는 유적한 한기가 담겨있다. 어느새 계절은 가을 문턱에 이르렀나보다. 기다리지 않아도 제 스스로 오는 계절이지만 시나브로 흐르는 세월이 얄궂다.

자주빛 쑥부쟁이 무리가 앞 다퉈 꽃 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늦여름과 초가을 산과 들녘을 함초롬이 수놓는 들꽃,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는 자태는 그리움 가득 안은 여인네 춤사위마냥 곱고 애절하다. 인디언의 체로키 족은 가을을 산책하기 알맞은 달이라고하며, 아라파오 족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고 한다. 아마도 가을은 고요한 시간으로 돌아가 희생과 성숙을 가르치려는 삶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듯하다.

가을의 생각 속에는 언제나 모든것에 가을이 들어있듯이 누구나 가슴속에 비밀스런 길을 하나쯤 담아두고 있을 것이다. 내게도 다른 사람과 향유하고 싶지 않은 숲으로 향한 비밀스런 오솔길이 있다. 부모산 정상을 향하는 여러 산길 중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똑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한결같은 행보에만 얽매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 할때,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찾아와 혼란에 빠질 때 내 마음을 풀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길은 사색에 깊이 빠지게 하며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추게 하고 발을 옮기지 않으면 내 위치는 한 치도 변하지 않는다며 묵언의 교훈을 주기도 한다.

해질무렵 가을바람을 느끼며 숲 속의 한적한 오솔길을 홀로 걷노라면 때로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온 전신에 스며들기도 한다. 지난과거의 회상, 불투명한 미래. 자신의 인생을 음미하다보면 세상의 복잡한 인연 속에서도 결코 혼자인 것을 깨닫는다. 그 순간 밀려오는 고독감은 무어라 형용할 수 조차 없다.

허둥지둥 지나온 인생의 길목에서 놓쳐버린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 미처 가꾸지 못하고 놓처버린 인연들이 추억 속의 그리움으로 가슴을 시리게도 하며, 내 삶은 어느 정점을 향해 왔던가 하고 허무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가슴앓이는 가을 길을 걸으며 얻는 덤이다.

오랜 세월 길은 삶의 은유였다. 길은 삶의 시작과 끝이기도 하며, 걷는다는 것은 마음을 돌이키고 또 돌이키는 수행이다. 좌절의 순간에도 희망을 만나고, 분노의 한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화를 만난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산마루에 몸을 누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어느새 내안의 문제들이 별게 아닌 문제가 되고 마침내 나는 노을에 물드는 한그루의 나무가 되고 들풀이 되기도 한다.

숲 길을 걸으며 만나는 가을은 찐득한 땀 속에서도 일종의 비애를 느끼게도 하지만 말없이 서있는 나무들은 계절의 순환에 따라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머지않아 전체를 가리던 무성한 잎을 떨구고 고스란히 가지를 드러내어 진정한 자신을 내어 보이며, 존재하는 동안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 시키고 자신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주며 마무리 한다.

그들은 저렇듯 무심하게 '살아간다는 것'의 참 의미를 실천하고 있는데 어느덧 인생의 가을 문턱을 들어서는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얼하는지, 어떤 열매를 기원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일까.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어 나뭇가지처럼 모두 드러냈을 때, 그 때가 되어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을 수 있을까. 가을은 한번쯤 더 생각하고 뒤 돌아 보게 하며 마음을 깊고 고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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