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적변경은 곧 ‘자살행위’ 의식 팽배
변화된 유권자의식… 개혁·이념정당 비약 예고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리더를 창출한 16대 대선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선거문화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놨다. 20, 30대의 부상과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21세기형 선거문화, 즉 네거티브와 색깔공세 폭로전 등을 무색케 한 유권자 의식의 변화와 선거과정의 급속한 디지털화를 경험한 정치권은 당연히 긴장할 수 밖에 없고, 실제로 향후 선거는 이런 추이의 재판(再版)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 이후 정치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물론 2004년 17대 총선이다. 불과 1년여 밖에 남지 않은 총선 때문에 지금 지방정가의 움직임도 탈계절 현상, 즉 겨울이지만 겨울을 못 느끼게 한다. 기성 정치인은 물론 정치 지망생들이 수(數 ) 계산에 분주한 것이다.
16대 대선은 충북의 지방정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졸지에 추락한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선거 과정을 통해 확실히 입지를 구축한 정치인도 있다. 때문에 이들의 활동이 앞으로 지방정가의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3, 40대 정치인들의 부각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도내 유일한 386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기대를 모은 윤경식의원(청주 상당)이 한나라당 도선대본부장을 맡아 대선 결과와는 상관없이 정치적 중량감을 높였고, 같은 선거구의 민주당 노영민 위원장 역시 원외이면서도 도선대본부장으로 역동적 활동을 보임으로써 인물 경쟁력을 확실히 인정받게 됐다. 이들은 16대에 이어 17대 총선에서도 격돌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심규철의원(보은 옥천 영동)은 소장파를 대표해 당 개혁의 핵심요원으로 발탁돼 특유의 뚝심을 발휘할 호재를 만났다. 당의 일각에선 한나라당을 대표할 충북의 차세대 주자로 지목하기도 한다.

신언관 김기영씨, 다시 정치 전면으로

한 때 정치적 공백기를 가졌던 김기영씨와 신언관씨가 다시 정치의 전면에 나선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15, 16대 총선(청원)에 연거푸 출마한 경력의 김기영씨는 민주당의 지역 선거책임자를 맡아 정치력을 인정받은 후 17대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시 노무현후보의 충북 책임자로 일한 신언관씨는 정치인으로서 갖가지 조건을 갖췄음에도 불구, 그동안 시의(時宜)를 못탔다는 주변의 아쉬움이 많은 터에 이번에 확실한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써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케이스다.
진보정당의 비약이 타 지역에 비해 두드러진 점도 향후 충북정가의 풍향을 가늠케 하는 한가지 잣대가 된다. 특히 권영길을 내세웠던 민주노동당은 충북을 전략지역으로 꼽을 정도로 세(勢 )를 형성하는데 탄력을 받았다. 지난 대선의 전국 득표율이 3.90%인 반면 충북에선 5.75%로 전국 두번째로 높았던 것에 고무된 것이다. 당장 충북 민노당은 17대 총선을 의식하고 있다. 중앙당의 목표가 원내 진출인 만큼 충북이 ‘일’을 내겠다는 작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재미나는 사실은 대선 이후 지역 정가에 ‘정당을 옮기면 무조건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인제 김민석 등 대선을 앞두고 당을 옮긴 철새들의 뒤끝이 초라했던데다 특히 한나라당으로 옮겼던 국회의원들의 선거구 대부분이 노무현 우세로 나타난 것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도내 정치인들이 정치환경의 일대 변화를 감지하면서도 예전과같은 편의적 당적 이동엔 큰 부담을 갖는다. 이에 대해 자민련의 한 관계자는 아주 재미있는 진단을 내렸다.

17대 총선은 정치철새의 심판장

“사실 지난 대선 때 자민련의 우리 만큼 고민한 사람들이 있는가. 만약 탈당이 거론되던 정우택 송광호의원 등이 실제 행동에 옮겼다면 지금 쯤 큰 곤란에 빠졌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젠 당을 이리저리 옮겨 다는 것 자체를 경멸한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 인터넷이다. 과거에는 당을 한번 옮겨도 얼마동안 욕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언론에서도 이들 정치철새들에 대한 접근이 달라졌다. 얼마전엔 아예 정치철새를 주제로 한 특집방송도 방영되더라. 양비론으로 흘리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현상이다. 물론 오마이뉴스같은 대안적 비판언론의 득세에도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유권자들의 정치냉소가 정치심판 의식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지역에선 이런 분위기가 더 하다. 선거 때마다 확연히 달라지는 민심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2000년 16대 총선 때는 각 당에 골고루 표를 주더니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에 몰표를 줬다. 이번엔 노무현의 손을 들어 준 것을 보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런 상황에서 철새굴레가 씌여진다면 이는 곧바로 사형선고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충북도 세대교체 된다”

지방정치의 변화와 개혁을 제 아무리 떠들어도 이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발굴에는 한계가 있다. 충북의 경우 지난 대선을 통해 개혁적 국민정당 등 새로운 모델의 정당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유권자들은 별로 없다.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혁당의 충북실행위원으로 활동한 이광희씨(전 KYC회장. 6.13 지방선거출마)도 이를 인정한다. “개혁적국민정당이 청주 상당과 흥덕에 지구당을 창당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창당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일반인은 물론 언론마저 잘 모른다. 지구당위원장이라고 해 봤자 평범한 시민이기 때문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 턱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정치가 인물위주였고 아직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신인들이 좀체로 유권자 앞에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중앙의 1인 보스정치나 지방의 토호정치 아래선 절대 건전한 정치인, 정치세력이 클수가 없다. 그러나 정치를 시스템으로 접근하면 이의 타개책은 아주 간단한다. 개개인의 당원이 모여 자연스럽게 대표를 옹립하고 또 이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가면 그만이다. 당비를 내는 당원이 정당의 주인이 되고 유권자가 정치의 주인이 되는 이런 정치문화가 앞으로는 뿌리를 내릴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국민들은 이를 확인했다. 노무현을 당선시킨 물밑 표의 저력은 바로 이런 시스템의 정치에서 나온 것이다.”
충북의 지방정가를 점치는 시각중에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의 하나는 세대교체다. 이는 총체적인 정치불신에다 도내 기성정치인들의 역할미흡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자기 지역구의 득표율이 상대 당보다 뒤졌던 정치인일수록 이런 부정적인 여론을 급속히 타고 있다. 이들은 한 때 노무현당선자가 내비쳤던 중대선거구가 차라리 유리할 수 있다. 지금의 소선거구제로 17대 총선이 치러지면 당연히 상황은 어려워진다. 이미 현역 의원중에 누구는 가능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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