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당 개혁 중간성적표
정당개혁을 둘러싼 민주당과 한나라당내의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두 당의 소장개혁파들은 지도부의 사퇴 등 인적 청산까지 요구하고 나선 반면, 각 당의 구주류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두 당의 개혁방향은 어떻게 가닥이 잡히고 있는 것인가. 민주-한나라당의 개혁논의 상황을 점검해 본다.

지난 27일의 민주당 의원총회장. “그동안 애타게 당을 지켜온 한 대표에게 물러나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심재권 의원의 발언을 듣던 한화갑 대표의 눈에 마침내 눈물이 흘렀다. 노(盧)의 눈물, 창(昌)의 눈물에 이은 ‘갑(甲)의 눈물’이었다.

민주당, ‘소수파’라는
쇄신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나

바로 그 다음날 아침 필자는 라디오방송을 통해 한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지도부 퇴진 요구가 온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퇴진을 요구하는 사람들보다 나도 더 개혁적인 정치를 해왔다. 그런 나를 개혁을 위해 퇴진하라는 것은 명분에 맞지 않는다”.
그의 가슴에는 전날의 눈물이 풀어주지 못한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당의 성격이 좌우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되었으니 민주당은 실질적으로 노무현 당이다.”
한 대표의 결론이었다. 그는 정치현실에 따른 순리가 무엇임을 알고 있었다.
한 대표의 이같은 순리론에 따라 민주당의 개혁추진은 일단 가닥이 잡히는 모습이다. 한 대표는 이미 조기전당대회에서의 당권 불출마선언을 하였다. 이는 차기 당권이 노 당선자측의 신주류세력에게 넘어옴을 의미한다. 또한 당쇄신방안을 마련할 개혁특위 구성에도 노무현 당선자측의 의중이 크게 반영되고 있다. 앞으로의 당쇄신, 그리고 차기 지도부 선출은 일단 노 당선자측이 주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발전적 해체론을 제기했던 민주당내 쇄신파도 일단 한 대표의 명예퇴진을 수용하는 분위기이다. 선대위 세력 내부에서도 23인의 회견내용이 너무 앞서나감으로써 불필요한 반발을 표면화시켰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김원기 고문이나 정대철 고문같은 중진급 인사들은 쇄신파 내부의 강경일변도 대처가 노무현 당선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음을 지적하며 강경기류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개혁을 하되, 정상적 논의와 절차를 거쳐서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내 세력관계의 현실을 돌아볼 때 이같은 기조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시대의 개막과 상관없이 민주당에서 쇄신파는 숫적으로 여전히 소수파이다. 전체 소속의원 가운데 대략 3분의 1정도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아무리 환경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이 숫자를 가지고 밀어붙이기식 당개혁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여소야대의 상황 아래에서 그렇지 않아도 의석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반대자를 필요 이상으로 늘릴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포용정책을 통해 우군의 수를 늘려나갈 현실적 필요도 존재한다.
따라서 앞으로 민주당의 쇄신작업은 노 당선자측이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개혁특위를 통해 그 방안을 마련하고, 조기 전당대회에서 지도부 교체를 이룬 뒤, 17대 총선 이전까지 시간을 갖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혁명 전야 같은 식으로 당을 몰고가선 안된다.” (이방호 의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대표) 안한다. 뒤통수 치면 안한다.” (서청원 대표)
“미래연대의 충정어린 호소가 연찬회 후반부의 권위주의적인 토론 분위기 속에서 기존의 권위에 의해 무시, 왜곡됐다.“ (원희룡 의원)
한나라당이 지난 26일 개최한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는 이렇게 주류측과 소장파 사이의 평행선만 확인한 채 끝났다. 이날 연찬회에서는 비상기구를 구성하되 새 지도부 선출 때까지 최고위원회의도 존속하는 이원체제로 당을 운영키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으로 한나라당의 ‘환골탈태’가 가능할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한나라당, 주류세력의 완강한 저항

이날 연찬회에서 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사퇴표명을 번복시킨 것은 영남권 의원들이었다. 백승홍, 안택수, 이방호, 김기춘 의원 등은 “최고위원이 사퇴할 경우 지도부 공백으로 당이 쪼개진다”며 사퇴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고, 이 요구는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서 대표는 기립박수 속에서 그러니까 ‘만장일치’ 속에서 사퇴의사를 번복할 수 있었다.
세 가지의 현실이 확인된 셈이다. 한나라당은 보수성향의 영남권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정당이라는 점, 소장개혁파는 당내에서 소수라는 점, 그리고 이들간의 근본적인 인식차이는 좁혀지기 어렵다는 점이 그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영남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나라당 주류세력이 소장개혁파의 쇄신요구를 의미있는 수준에서 수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몇가지의 제도개선방안은 모색될 수 있겠지만, 세력교체 요구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을 것이다. 당장 구성된 `당과 정치개혁을 위한 특위’를 통해서도 그같은 흐름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현경대?홍사덕 공동위원장 체제가 의미하는 바는, ‘쇄신’보다는 ‘수습’에 무게를 두는 모습으로 읽혀진다. 앞으로 개혁특위는 최고위원제 폐지여부 등 당 지도체제 문제, 차기 전당대회 개최 시기, 당의 정체성과 이념정립 문제, 원내정당화 여부 등 당쇄신방안을 집중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특위의 활동이 과연 한나라당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비관적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법은 몇가지 제도개혁방안에 달려있기 보다는 당을 주도하는 ‘사람과 세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선 패배 이후 소장파들이 표출하고 있는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의 사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들은 전자개표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당선무효소송을 냈고, 노무현 당선자에게 반미운동과 미군철수문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였다. 말로만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지, 다시 태어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구시대적인 낡은 네거티브전략이 선거패인이었다는 수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서청원 대표를 필두로 하는 한나라당은 꿋꿋이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대선에서 승리한 쪽이 당개혁에 더 적극 나서고, 대선에서 패배한 쪽이 현상유지에 집착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나라당 소장개혁파가 예전처럼 봉합을 통한 현상유지의 길을 갈지, 아니면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벗어나 자신들대로의 길을 갈지 향후 정국의 변수가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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