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망국병인 영·호남의 지역대결을 뛰어 넘지는 못했던 듯 합니다.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의 영남권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에게 전폭적으로 표를 몰아줬고 광주 전남 전북의 호남권은 노무현 후보에게 몰 표를 줘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남한 지도를 펴놓고 색칠을 해 보면 오른 쪽은 이회창, 왼 쪽은 노무현으로 확연히 갈라져 동이(東李), 서노(西盧)현상을 나타냅니다. 한마디로 이는 지역장벽이 아직은 허물어지지 않는 고질병임을 그대로 상징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개표결과 이회창후보는 영남에서 67.9%의 지지를 얻었고 노무현후보는 호남에서 91.6%의 몰 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남의 총 유권자가 963만6278명이고 호남의 총 유권자가 391만5466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 후보가 영남에서 얻은 표가 호남에서의 노후부표에 비길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과거처럼 영남에서 ‘우리가 남이 가?’라며 영남사람을 무조건 지지하고 호남이 ‘워 메, 우리가 남 이 다요?’라며 호남사람을 지지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영남에서 충청도사람을, 호남에서 영남 사람을 지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영남 사람들이 영남사람인 노무현 후보의 읍소(泣訴)를 외면하다시피 하고 이회창후보에게 몰 표를 주고 호남에서 그 동안의 관계로 보아 라이벌이나 다름없는 영남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선거결과 영남사람들은 벌레를 씹은 기분이 틀림없는 듯 하고 호남사람들은 영남사람을 대통령에 당선시킴으로써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남은 영남사람이 대통령이 됨으로서 호남정권 5년의 공백을 딛고 정권을 다시 영남으로 가져갔으니 크게 원통할 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 충청도가 영·호남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응집력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그들은 항상 하나로 결집해 자신들의 후보를 당선시켰고 또 힘을 보여줬습니다. 박정희 때가 그랬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때가 그랬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랬습니다.
호남은 오랫동안 설음을 받았지만 똘똘 뭉쳐 DJ를 통해 피 맺힌 한을 풀었고 이번에는 자신들이 선택한 ‘경상도사나이’ 노무현을 당선시키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이번 선거는 영·호남의 ‘윈윈게임’이였다고 말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선거의 충북 전체 유권자는 1백7만9642명입니다. 전국적으로 노 후보와 이 후보의 표 차가 57만980표이니 우리 충북이 하나로 뭉치기만 하면 영남이든 호남이든 마음에 드는 인물을 당선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충북은 그런 중요한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모르고있고 안다해도 그것을 결집시킬만한 정신적 인물도, 세력도 없습니다.
물론 이 같은 생각은 수치상 그렇다는 것이고 이론상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 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상도나 전라도가 부러운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전라도 좀 보십시오. ‘전라도가 다 해 먹는다’니까, ‘무슨 소리?’, 하면서 경상도 사람을 밀어 대통령 시키지 않습니까.
듣자하니 선거막판에 대세가 노무현으로 기울자 지역의 많은 유지들이 밤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노무현이 되는 게 불안하고 이회창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번 선거에서 충북은 36만5263명이 노무현을, 31만1044명이 이회창을 찍었습니다. 노 후보와 이 후보의 표 차는 5만4219표입니다. 누가 밤잠을 설치든 말든 민심은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이제 사흘 뒤면 다사다난했던 2002년을 뒤로하고 역사의 신 새벽이 열립니다. 이 해도 온갖 시련이 국가 사회에, 그리고 조직과 개인, 개인에게 적지 않았습니다. 허나, 그러한 모든 것을 세월에 묻고 새 아침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한해동안 졸문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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