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충북을 보수라 말하지 마라”
노무현 절반이상 득표… 민주노동당도 눈부신 선전

이회창 42.89%, 노무현 50.42%로 나타난 지난 대선의 충북 개표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론 예상을 깼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상’이란 논리.과학적이기 보다는 보편적 정서에 기초하는 것이다. 충북의 정치성향을 말할 때 통상적으로 따라 다니는 관용어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보수적’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개념상의 정확한 해석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체제 순응적이고 안정 희구의 성향을 포괄적으로 이렇게 표현하는 측면이 크다. 때문에 당연히 충북에선 선거 막판까지도 이회창 대세론이 꺾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몽준의 후보 단일화 이후 충청권의 민심에 심각한 동요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충북에서조차 엎어지리라고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충북은 지난 97년 대선에서도 김대중후보에게 다수표를 던짐으로써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결과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지만 역시 충북에서도 20. 30대를 주축으로 한 젊은층과 노후보 자체의 경쟁력이 결정적 변수가 됐다. 젊은 세대의 활동은 노무현후보 지지를 천명한 개혁적 국민정당과 노사모가 이끌었다. 충북 노사모 회장 이용규씨는 후보 단일화 이전 주변에 이런 말을 남겼었다. 이 때는 노무현후보가 이회창에 한참 뒤질 시기다. “아직 뭐라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지금 수면하에선 뭔가 이루어지고 있다. 굳이 표현한다면 조용한 반란이다. 지난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드러났지만 개미군단의 잠재력이 충북에서도 반드시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예단은 맞았다.

민주당은 노후보에게 식물조직

엄밀히 말해 민주당 공조직은 노무현후보 당선에 할 말이 없다. 특히 도내 공조직의 책임자들은 대선 후보 경선 때 거의 100%가 이인제 쪽에 줄을 섰고 끝난 후에도 노영민위원장(청주 흥덕)을 제외하곤 대부분 양다리 걸치기로 일관했다. 선거 한달전까지 선대본부장을 선임하지 못할 정도로 민주당은 노후보에게 식물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인정하는 사항이다. 한 민주당원의 말은 아주 신랄했다. “만약 후보 단일화가 안 됐으면 도내에서도 민주당을 떠나는 핵심 인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정치적 소신은 오로지 개인의 안위 내지 실익뿐이었다. 아주 냉정하게 말한다면 민주당은 노후보 당선을 위해 한 일이 없다. 굳이 일등 공신을 논할 경우 그 자리는 민주당보다는 정몽준이 차지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후보 단일화와 정몽준의 결별, 그리고 네티즌들의 반발심리가 노후보 당선의 가장 결정적 분수령이 됐다. 더 중요했던 것은 노무현후보 자신의 상품성이다. 일부에선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득표의 큰 요인이었다고 여기지만 나는 그렇게 안 본다. 관건은 유권자에 대한 노후보의 어필이었다. 서민의 자식, 지역 타파를 위한 원칙정치, 자수성가, 낡은 정치청산을 외쳐 온 전략이 유권자에게 먹힌 것이다. 농촌지역에서도 노후보의 지지가 높게 나타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당 대 당 싸움이 아니라 이회창과 노무현의 인물 대결이었다. 이러한 결과가 충북으로부터 ‘보수’라는 꼬리표를 떼어 냈다”고 그는 진단했다.

민노당 선전은 대중사업의 성과

진보정당을 대표했던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의 선전도 충북 정치성향의 변화를 알리는 확실한 지표가 됐다. 전국적으로 3.90%의 득표를 기록한 민노당 권영길후보는 충북에선 5.75%나 얻었다. 노동자 표가 많은 울산의 11.41%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민노당은 지난 6월 지방선거 때도 충북에서 7.3%의 득표율로 전국 평균 8.1%에 근접해 주목을 받았다. 역시 지역의 보수적 정치성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결과다. 민노당 충북선대위 대변인으로 활동한 김남균씨는 “투표 몇시간을 앞두고 정몽준이 노무현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바람에 오히려 민노당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진보 개혁성향 유권자들의 사표방지 심리를 촉발시켜 우리당의 2~3% 정도가 노후보 쪽으로 갔다. 당초 목표치에는 미달했지만 이념정당을 표방한 민노당이 이번 대선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민노당은 선거가 끝난 후 자체 평가를 통해 몇가지 의미를 강조했다. 그 중의 하나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과거 과격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진보정당의 이미지를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판단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 대선의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바로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포괄적 지지였다. 그 나물에 그 밥인 보수정당의 정치구조에서 정쟁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분명한 계급, 계층과 이념을 표방하는 민노당에 색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민노당의 부유세 신설 등 정책제시는 과거 냉전논리가 판치는 정치판에서 진보당에 대해 일반인들이 뿌리깊게 인식하고 있던 과격, 선동의 이미지를 일거에 털어내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반미운동이 진보정당 대한 관심 촉발

일반 대중들이 민노당의 정책이나 공약에 대해 이번 처럼 호응을 나타내기는 처음이다. 물론 권영길후보의 TV토론이 진보정당 부상의 궁극적 단초가 됐다. 민노당 스스로는 이런 결과에 대해 그동안 꾸준하게 벌여 온 대중사업의 효과라고 진단한다. 그 중에서도 SOFA개정 운동은 민노당과 민노총의 운신을 넓히는데 가장 효자 노릇을 했다. 충북 민노총의 한 관계자는 “사실 소파 개정을 위한 시민운동은 우리가 주도한 것인데 그 약발이 노무현후보에게 더 먹히는 바람에 아쉬움이 많다. 어쨌든 국민적인 반미운동이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사회당의 충북 득표가 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사회당 김영규후보의 충북 득표율은 0. 13%로, 역시 대전(0. 14%)에 이어 인천 강원등과 함께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사회당의 충북 책임자를 맡았던 송상호씨는 지난 선거전에서 “그동안 수구냉전논리가 사회의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당에 대한 시각은 아직도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지난 16대 총선 때 수도권 전지역구에 후보를 낸데 이어 이번엔 대통령후보까지 국민 앞에 내 세움으로써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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