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네티즌이 언론권력 ‘조중동’ 이겼다

2002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언론권력이 교체됐다.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 길게는 80여년간 누려왔던 언론권력이 드디어 교체된 것이다. 언론권력은 종이신문 직업기자의 손에서 네티즌, 인터넷 시민기자에게 이양됐다.
네티즌은 본성적으로 인터넷 시민기자들이다. <오마이뉴스>의 모토처럼 ‘새 소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남에게 전파하는 모든 시민, 네티즌은 기자다’. 이번 대선은 네티즌, 인터넷 시민기자가 이뤄낸 혁명이다.
권력은 표준에서 나온다. 권력은 스스로 표준을 만들어내고 그 표준을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그동안 언론계의 표준을 만들어내고, 그 표준을 다른 언론들에게 강제해온 것은 보수적 종이신문 조중동이었다. 그러나 네티즌은 그들의 표준을 거부해왔다. 취재의 공식, 기사작성의 공식, 기사평가의 공식을 파괴했다. 아니 그 이전에 기자가 누구이고 기사는 무엇인가에 대한 공식부터 파괴했다. 그들은 독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뉴스 생산자가 되었다. 그들은 조중동이 만들어 보여주는 거울을 깨뜨리고 스스로의 거울을 만들어냈다. 이번 대선은 그 언론권력 교체과정의 하이라이트였다.

‘정몽준 폭탄’ 터지자
더 위력 발휘한 네티즌들

선거 하루전날 모든 여론조사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조중동이 노무현 후보를 비토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 만큼, 그것은 곧 기존언론권력 조중동에 대한 네티즌의 승리를 예상한 것이기도 했다.
12월18일 오후 공식선거운동기간 마감을 10여 시간 앞두고 언론비평주간지 <미디어오늘>의 한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찾아왔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인터넷언론’의 영향력에 대한 분석기사를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물었다. “여전히 부동층이 많은데… 내일의 결과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답했다.
“네티즌혁명은 이미 일어났다. 단지 아직 날이 밝지 않아 확인되지 않을 뿐이다. 만약 날이 밝았는데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직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신(神)이 훔쳐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지 7시간 여만에, 네티즌혁명의 날이 밝기도 전에 ‘정몽준 폭탄’이 터졌다. 정몽준의 배신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내기 힘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폭탄이었다. 그렇다면 신이 그런 배신을 배후 조종한 것일까? 결국 신은 이미 이뤄진 네티즌혁명을 강탈해간 것일까?
정몽준폭탄이 터진 날, 때마침 나는 임시 ‘야간당직데스크’였다. 개표의 날에 온힘을 쏟아야할 편집국데스크들을 대신해 그 전날 야간당직데스크를 자처하고 있었다. YTN에 밤 10시30분경 ‘정몽준 폭탄이 터졌다’는 1보가 나가기 전, “정몽준이 중대발표를 한단다”는 <오마이뉴스> 정치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직감했다. 나는 그 문제의 종로유세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대발표가 ‘지지철회’라는 걸 확인한 후에도 나는 <오마이뉴스>에 그 ‘시간 차 특종’을 싣지 못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행 대변인이 뭔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지철회’라는 폭탄기사를 내보냈다가 그것이 오보라도 된다면?
그러나 YTN을 시작으로 각 방송에 자막으로 긴급뉴스가 나가기 시작하면서 <오마이뉴스> 편집국 전화통에 불이 났다. 전국 각지의 뉴스게릴라(기자회원)들이 “사실이냐”고 물어왔다. 그런 후에야 그 터져버린 폭탄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1면 머릿기사로 배치했다.
밤새 ‘정몽준 폭탄 그후’를 취재하는 현장중계팀의 전화를 받아 기사를 정리하면서 독자의견에 흥건하게 고인 네티즌들의 눈물을 보았다. 분노를 보았다. 편집국에 걸려오는, 울분을 참지 못하는 네티즌들의 전화를 받느라 기사정리 작업은 수 차례 중단됐다.
그들은 대부분 울먹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새벽 4시경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더니 아무말도 없고 훌쩍훌쩍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동안 울먹이기만 했던 여성은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였다. 그는 ‘아, 정몽준, 내가 범한 3가지 잘못’이라는 제목의 글을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리고 유권자들에게 ‘긴급호소‘를 하던 참이었다.

기존 언론권력 조선일보의
‘최후의 사설’

그 사이 조중동 등 기존 언론권력들은 이미 써놓은 사설도 바꿔가면서 쾌재를 불렀다. <조선>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은 <정몽준 “盧지지 철회” - 어젯밤 전격선언…”국민의 현명한 판단 바란다”>였다. 새로 쓴 사설 제목은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였다. ‘기쁨에 넘친’ 이 사설은 유권자에게 이렇게 권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급격한 상황변화 앞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까지의 판단기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는 것이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20일동안 모든 유세와 TV토론, 숱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졸인 판세 및 지지도 변화 등 모든 상황은 노-정 후보단일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이 같은 기본구도는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설은 더 노골적으로 이어진다.
“오늘 하루 전국의 유권자들은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며 투표소로 향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러나 정몽준이 버린 노무현을 네티즌들은 살려냈다.
‘행동하는 네티즌’의 힘은 정몽준 폭탄이 터진 이후 더 빛을 발했다. 그들은 <오마이뉴스>의 독자의견란에서, 노하우 게시판에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긴급행동강령’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실천했다. 그 결과, 초박빙의 싸움 끝에 ‘배신자 정몽준’에게 철퇴를 가했다. 조갑제의 애절한 훈수와 조선일보 사설의 선동으로 대변되는 기존 언론권력을 물리쳤다.
조중동은 공식선거기간 초반전부터 위세를 잃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도청의혹’을 수면에 걸쳐 대서특필했지만 국민의 냉담한 반응을 받은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은 네티즌 참모 수 천명과 함께 하고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 그들은 실핏줄처럼 자기의 위치에서 각종 정보를 올리고 기발한 제안을 했다. ‘나이스’로 알려진 네티즌이 그 한 예이다. 여론조사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는 네티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노하우 게시판에 글을 남기면 평균 3천명 이상이 클릭을 했다. 12월15일 올린 <여론조사, 추이 및 전망>은 무려 1만5천492명이 읽었다. 그는 기존 언론권력 조중동의 ‘한나라, 역전 시작’이라는 기사제목에 동요하는 네티즌들에게 “흔들리지 말라”면서 ‘여론조사의 진실’을 분석해냈다. 그리고 행동강령을 제시했다.

‘올해의 정치인’은 12월19일
새벽의 네티즌들

이번 대선은 우리사회의 주류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줬다.
최근 발행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687호)은 ‘올해의 인물’에 ‘행동하는 네티즌’을 선정했다. 그것은 미래 우리사회의 ‘새로운 주류’에 대한 예리한 조명이었다. 이 주간지의 관련기사 제목은 <인터넷, “조중동 덤벼”>였다.
그러나 대선결과를 보지 않고 발행된 <시사저널>은 하나의 실수를 했다. 올해의 정치인에 정몽준을 선정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최악의 정치인에 이인제를 선정한 것도 실수였다. 올해 최악의 정치인은 이인제가 아니라 정몽준이다.
그리고 올해의 정치인은 정몽준이 아닌 ‘행동하는 네티즌’이며, 범위를 좁혀보면 ‘정몽준 폭탄맞은 노무현 일병을 구한 12월 19일 새벽의 네티즌들’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이 해가 가기 전에 올해의 정치인과 올해의 최악의 정치인을 다시 선정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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