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표’가 낡은 세대를 물리쳤다… 한국사회 젊은층 ‘개혁 낙관주의’ 확산 큰 가치

결국 ‘젊은 표’가 노무현을 구했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사실상의 러닝메이트였던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공식선거 종료 1시간 30분 전에 ‘지지 철회’를 선언한 전대미문의 ‘비상식적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은 듯이 보였다. 지역구도를 깨뜨리려는 원칙을 고수한 덕분에 최초의 ‘국민경선 후보’에 오른 그였지만, 그 국민경선 원칙 때문에 그는 게임종료의 공이 울리기 직전에 러닝메이트로부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위기에 처한 ‘국민경선 후보’ 노무현을 나락에서 구한 것은 ‘젊은 표’였다. D-1일까지 민주당내 선거전략통인 이해찬·임채정 의원의 예상 평균치는 50~100만표 차이 승리였다. 그러나 ‘지지철회’ 선언을 고비로 투표 당일 민주당내 평균 예상치는 5만~10만표 차이로 무려 그 격차가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누구도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어쩌면 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오전 동안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대세였다. 오전 텔레비전 방송3사의 출구조사결과는 1~2% 포인트 차이로 2(MBC-KRC, sbs-TNS) 대 1(KBS-MRC)로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근소하게 이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후 들어 출구조사 결과는 그야 말로 박빙을 유지한 가운데 중요한 변화를 보였다. 출구조사결과의 판세는 여전히 2 대 1이었지만 MBC-KRC 등의 격차가 2% 포인트 대에서 1% 포인트대로 줄어들더니 마침내 3사 조사결과가 1~2%대 격차로 역전되었다.

‘젊은 사고’를 가진 유권자의 승리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후 2시쯤에 “오전에는 중장년층이 투표소를 많이 찾은 반면에 오후 들어서는 투표소를 찾는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격차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추세대로라면 출구조사 판세의 역전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젊은표’의 노무현 지지가 오전에 열세였던 노무현 후보를 위기에서 구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나이가 젊은 세대의 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노무현의 승리는 ‘젊은 사고’를 가진 유권자의 승리였다.
대통령선거일을 1~2일 앞둔 상황에서 방송3사 뉴스 앵커의 ‘오프닝멘트’는 하나같이 이렇게 시작했다. ‘21세기 첫 국가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1세기 첫 국가 지도자를 뽑는 제16대 대통령선거가 9시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등이었다. 그 멘트는 지지철회의 충격을 상쇄하는 메시지로 읽혀졌다.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낡은 것’과의 결별을 요청하는 신호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선거운동 처음부터 끝까지 낡은 것을 버리지 못했으며 한때 낡은 것을 버려 신선한 충격을 준 정몽준 대표는 선거 막판에 결국 버린 것을 다시 움켜쥐며 20세기로 회귀했다.

낡은 것과의 결별을 요구한 국민적 열망

국민경선 후보 노무현의 1차적 승인은 바로 그 낡은 것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바람이었다. ‘이번 선거의 승리자는 국민’이라는 찬사는 늘 당선자들이 해온 말이지만 이번만은 그런 의례적인 빈말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 것도 낡은 것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국민의 변화의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미 여러 번 그런 조짐을 예고했다. 지난 봄부터 겨울까지 한반도를 휩쓴 이른바 ‘노풍’과 ‘정풍’, 월드컵 열기와 광화문 촛불시위의 추모열기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자 그 브랜드 가치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경고하는 ‘노란 딱지’를 의미했다.
그것은 노무현이나 정몽준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다. 그 바람들과 열기는 변화를 누가 대신 해줄 것인지를 찾는 것이었다. 대중은 그것을 노무현에게서 발견했다가 실망했고, 다시 정몽준에게서 발견했다가 다시 실망했고, 마침내 두 사람이 합침으로써 국민이 변화의 가능성에 다시 기대를 거는 그런 흐름이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의 1차적 승인은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바람이었던 것이다.

PMI선거와 돈 안쓰는 국민참여 선거운동

두 번째 승인은 민주당의 선거전략이 이런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바람에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임하면서 이른바 PMI 즉 정책선거(P), 미디어선거(M), 그리고 인터넷선거(I)와 함께 돈 안쓰는 선거, 국민참여 선거라는 5가지 선거운동방식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정했다.
민주당의 이런 선거운동방식 자체가 하나의 선거혁명이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역사적으로 그런 선거는 처음이었다. 서울 여의도와 보라매공원 그리고 부산 수영만에 100만명을 끌어 모아 돈을 뿌리는 익숙하지만 낡은 선거방식 대신에 유권자를 찾아가 오히려 그 유권자들로부터 64억원이나 되는 희망돼지 저금통을 거둔 이런 선거는 처음이었다. 정두환 민주당 기획본부 기획협력실장은 희망돼지 저금통을 민주당의 선거전략이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성과 창의성과 결합된 모범 사례로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들 잘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수훈감을 꼽으라면, 인터넷본부와 국민참여운동본부를 먼저 꼽을 수 있다. ‘국참’이 제일 처음에 선대위가 뜨고 나서 각 조직이 막 세팅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희망돼지 저금통 얘기가 나와 돼지저금통 모금사업을 시작했다. 이 아이디어가 다 우리 내부 사람들과 우리들과 리얼타임으로 호흡해온 인터넷상의 우리 지지자들이 낸 것인데 그 아이디어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로 이거다’ 해서 채택되어 즉각 시행되었다. 눈에 보이는 사업, 이것이 바로 국민 참여고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의 새로운 모델이었다. 이렇게 해서 국참이 먼저 돼지저금통, 희망티켓사업 일을 시작한 것이다.”

민주당의 자원봉사와 인터넷의 접목

세 번째 승인은 지난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궐선거에서 무참히 패배한 이후 민주당 내부에 생긴 변화의 흐름이었다. 그것은 조직과 선거·정치문화에 자원봉사자가 대거 수혈되고 인터넷이 접목된 것으로 상징된다.
우선 발런티어들은 소액의 활동비만으로 엄청난 자발성과 창의력을 갖고 신나고 즐겁게 선거운동을 했다. 이런 자발성과 창의력은 기존 당료 조직에 침투해 들어가 조직문화를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생산성과 효율성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들은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전파하는 인터넷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했다.
민주당 인터넷본부(허운나 본부장)는 하루 한번씩 밤늦게 네티즌들이 올려준 의견 가운데 좋은 의견을 묶어서 ‘네티즌파워’라고 하는 인터넷상의 보고서를 만들어 내부 구성원들에게 보냈다. 이를테면 광고의 경우 광고업계 종사자들이 선거광고 컨셉을 이렇게 잡아라, 캐치프레이즈는 이게 좋겠다, 우리가 내보낸 광고에 대한 반응이 이러니 비주얼과 표현을 이렇게 접근하면 더 좋겠다 이런 식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인터넷본부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인터넷에 올리는 수백 가지 의견 중에서 수십 가지를 추려 매일 보고서를 돌린 것이다.
그 덕분에 민주당의 각 선대본부에서는 “이제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아이디어는 지천에 널려 있으므로 그 아이디어를 누가 일관되게 조합해서 선택하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 같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그래서 텔레비전광고의 경우 광고 컨셉에 대한 최초 아이디어에서부터 광고 방영 이후 반응과 평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을 통한 상호커뮤니케이션, 즉 인터랙티브 커뮤니케이션이 완벽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인터넷을 120% 활용했다. 10월 중순 아직도 당내 갈등이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대위 본부장들이 노트북 회의를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을 때 출입기자들마저 처음에는 이것을 ‘텔레비전 그림을 위한 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트북 회의를 한 뒤로 실무자들은 조직문화가 위에서 아래까지 서서히 문화적으로 변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의 위아래 의사소통은 거의 리얼타임이었다. 하루 온종일 보고서를 들고 윗사람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클릭과 전화로 보고와 지시가 가능했다. 그래서 선대위의 위아래,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리얼타임으로 진행되었다. 정두환 기획협력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은 어떤 아이디어를 채택하려면 위에 올라가는데 하루, 밑으로 내려오는데 하루 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퇴색되거나 죽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거의 한두 시간 내에 정확히 위에까지 보고가 올라가고 지시가 밑에까지 반영되어 내려오는 식으로 의사소통이 거의 리얼타임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인터넷을 통해서 무수히 올라왔고 그런 아이디어를 발견해서 위로 올릴 때 이런 것들이 선거운동 하나하나에 그때그때 적용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한나라당이 ‘스피드 싸움’에서 우리한테 진 것이다.”

자멸한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전략’

그것은 뒤집어 말해 한나라당의 1차적 패인은 국민의 변화의 바람과 그 바람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의사소통이 여전히 옛날식이었고 따라서 선거운동 방법도 구식이었다는 데 있다. 이제까지의 역대 선거는 조직을 동원해 돈을 살포하는 머릿수로 경쟁하는 선거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새정치 대 낡은 정치’라는 큰 구도의 컨셉으로 그 컨셉에 맞는 선거운동을 한 반면에 한나라당은 끝내 구식을 고집했다.
한나라당이 처음 내세운 ‘나라다운 나라’라는 구호는 너무 공허했고 중반부터 내세운 ‘부패정권 심판’은 너무 ‘낡은 구호’였다. 상당수의 국민은 6·13지방선거와 8·8 재보궐선거에서의 민주당 패배와 대통령의 두 아들을 감옥 보낸 것으로 심판했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은 여전히 텃밭인 영남권의 반DJ정서의 ‘약발’이 유효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밖에 한나라당이 승부수로 간주한 도청자료 폭로나 북한 선적 나포 같은 ‘미국발 북풍’과 ‘핵개발 북풍’ 같은 낡은 변수들은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거나 여중생 사망으로 인한 반미정서 속에서 상쇄되었다.
이처럼 민주당은 선거구도의 컨셉에서부터 광고전에 이르기까지 한나라당을 압도했다. 한나라당은 선거운동 방법론에서도 졌다. ‘부패정권 심판’이라는 구호에서부터 노무현이라는 불안정한 ‘난폭 운전사’가 대한민국이라는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 냈다는 식의 부정적인 광고컨셉, 그리고 공작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도청자료 폭로전술 등 선거구도와 방법론 그리고 선거전략의 핵심이 죄다 네거티브 일색이었다. 민주당도 물론 기양건설 로비자금 폭로 등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거중반에 노무현 후보가 당에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공개 금지함으로써 이른바 민주당내 ‘반창’(反昌)팀은 할 일이 없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상대의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뭔지를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승인을 하나 더 덧붙인다면, 그것은 민주당이 이긴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의 민주주의의 위력’을 인지하지 못한 한나라당이 자멸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이번 선거로 정치사에 2개의 진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최초의 국민경선 후보라는 기록과, 두 차례 국민경선에서 선택받아 대통령 후보로 뽑혔다는 기록이다. 이는 한국 선거운동사에도 한 획을 긋는 정치적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후보단일화 협상 등 정치적 고비마다 국민들의 뜻을 물었고, 국민들은 어김없이 그를 선택했다. 쿠데타 혹은 ‘체육관선거’ 혹은 여권 내 후보계승으로 이어지는 낡은 ‘대권세습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진정한 국민선택으로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것도 두 차례나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국민경선을 치른 것은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민경선은 돈과 조직과 계보가 없는 ‘3무(無) 정치인’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을 정치 소비자에서 정치 참여자로 만들었고, 철저한 후보자질 검증과 지역주의 정치 해소, 젊은 층의 정치참여와 관심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향후 선거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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