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는 오만한 미국에 대한 분노”

“그 노래를 만든 건 분노….”아직도 바람이 매섭던 2002년 초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자행된(?) 안톤 오노의 ‘스포츠 테러’를
‘퍼킹 유.에스.에이(Fucking U.S.A.)’라는 노래로 통렬하게 질타한 작곡가 윤민석(38)씨.
“이래도 미국이 위대한 정의의 나라인가”라고 묻는 그 노래는 경쾌한 리듬과 직설적인 가사의 통쾌함으로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졌고,
이후 몇 달간 미국의 오만과 자국이기주의를 야유하는 주제가처럼 한국에서 불려졌다. 그리고, 2002년 11월 23일.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이 전국민의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서 윤민석씨가 ‘퍼킹 유.에스.에이(Fucking U.S.A.)’의 후속편이라 할
‘퍼킹 유.에스.에이 2(Fucking U.S.A. 2·이하 퍼킹 2)’를 그가 운영하는 민중가요사이트 송앤라이프닷컴(www.songnlife.com)에 올렸다.

‘오만한 미국놈의 전쟁협박 공갈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효순이 미선이를 탱크로 죽이고 통일의 길목마다 훼방을 놓는 우리 민족의 적 양키들아 이제는 나가라’는 노랫말을 담은 ‘퍼킹 2’는 토요일마다 켜지는 광화문 수만의 촛불과 함께 반미의 목소리가 드높아진 2002년 한국의 겨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윤민석씨는 잘라 말한다.
80년대부터 ‘자주권 확보로서의 반미운동’을 꾸준하게 전개해온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세대 노래운동가 윤민석씨를 12월 9일 방배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여중생의 죽음이 고양이의 죽음인가?”

- 최근엔 ‘퍼킹 2’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고 미군에 대한 무죄평결과 대미 굴욕외교도 한국민으로서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더 화가 났던 건 여중생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폭행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며 웃고있는 미군의 모습이었다. TV 화면에서 그 장면을 보고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느꼈다. 그 웃음은 노예들을 조롱하는 지배자의 냉소에 다름 아니었다. 어린 학생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취재하는 기자를 폭행하고, 그러고도 자기들은 밴드 불러 춤추며 독립기념일 파티를 하고…. 여중생들의 죽음을 차에 치인 고양이 취급하는 그들의 태도는 합리적인 이성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했다.”
- 일부에서는 현재의 반미는 ‘운동’이 아닌 일종의 ‘트렌드’로 바뀌었다고도 말하는데...
“지금의 반미기류가 제대로 된 사회적 의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렵고 힘든 시기에 반미운동을 해온 단체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선결돼야 한다. 집회나 시위에 연예인이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해소를 위해 자신을 던져온 사람들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상황은 그들의 피땀이 만든 것이 아닌가.”
- 소파(한미주둔군지위협정)개정 또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그걸 뭐 하러 논의하나? 주한미군이 우리 땅에서 나가면 원천적으로 개정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게 소파다. 이참에 운동의 방향을 소파개정이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로 잡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는 우리 민족끼리 논의하고 협의해서 통일의 길로 가면 될 것이고.”
억울한 죽음이 이용되는 건 경계해야

-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진전될 것이라 전망하는지.
“87년 이한열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의 죽음은 우리 국민에게 ‘6·29 선언’이라는 아프고도 감격스런 선물을 안겨줬다. 이번 두 여중생의 죽음도 한국민들에게 자주권 확립과 통일의 필요성을 다시 깨닫게 해줬다고 믿는다. 관련단체는 주권국으로서의 한국을 만들기 위한 돌파구를 고민하고, 국민들은 이에 동조해줬으면 한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죽음이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것은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지난 12월 5일엔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라는 노래가 이회창 후보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심경은?
“한국에서 표현과 사상의 자유란 아직도 요원한 문제라는 걸 처참한 심경으로 깨달았다. 선거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도 알게됐다. 현행 선거법대로라면 누구도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서글픈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윤민석 힘 내’라는 쪽지와 함께 구명광고를 내는데 보태라며 30만원을 보내준 고마운 사람도 있었고, 인터넷을 통한 격려가 줄을 이어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는 기자의 손에 윤민석씨가 ‘행복해지고 싶어’의 악보를 쥐어준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펼쳐보니 이런 노랫말이 적혀있다.
‘행복해지고 싶어/단 한 번만이라도/매향리 바닷가로 소풍가고 싶어/폭격소리 화약냄새 사라진 그곳에서/바지락도 캐고 꽃게도 잡고싶어/…노래하고 싶어 통일된 내 나라를/아름다운 꿈 이루어낸 우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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