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노천 겨울추위가 매섭다한들
주한미군에 당한 수난 · 치욕만 하랴

지난 9일 아침 서울지역은 기온이 뚝 떨어져 영하 8도를 기록했습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추위를 바람막이 하나 없이 온몸으로 겪으며 노천에서 밤을 지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2일부터 광화문 ‘열린시민광장’에서 단식기도를 하고 있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님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전국 각 성당에서 참여한 23명의 신부님들은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을 막아내지 못한데 대해 속죄하는 심정으로 8일째 단식기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편집자가 지난 6일밤 현장을 방문, 일행 가운데 한 분인 신성국 신부(청주교구 안중근학교 교장)를 만나 대화 끝에 청탁을 해서 받은 글입니다. <편집자>

효순아! 미선아! 광화문에서 한반도에서 너희를 목청껏 외쳐본다.
“효순이를 살려내라! 미선이를 살려내라!”
“조지 부시 사과하라! 소파협정 개정하라!”
매일 밤마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함성이 땅과 하늘에 메아리친다.
대한민국 국민의 울분에 찬 신음소리가 하늘까지 가 닿는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무참히 짓밟고도 죄의식 하나 느끼지 않는 주한미군의 마비된 양심을 확인하며 대한민국은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온국민이 연일 분노로, 저항으로 반미 투쟁의 길에 나서고 있다.
천주교 사제들은 12월 2일부터 9일까지 광화문 차디찬 바닥에서 식음을 전폐하면서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내지 못한 속죄의 심정으로 단식기도회를 전개하였다.
한겨울 엄습해오는 추위를 길바닥에서 몸으로 느끼며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지만, 우리 민족이 지난 58년간 주한미군으로부터 당한 수난과 치욕의 역사를 생각하면 광화문 겨울추위도 능히 이겨낼 수 있었다.
단식이라는 굶주림이 극단적인 고난이지만,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과 국민들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굶주림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미미한 저항의 몸짓임을 깨달으며 우리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살려내라.”
지난 6월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의 ‘오 필승 코리아’ 구호가 지금은 축구의 응원을 넘어서서 민족 자주권과 해방을 염원하는 진정한 필승 코리아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월드컵의 한복판에서 온 국민과 함께 붉은 옷을 입고 거리응원을 즐겨야 했던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검붉은 피를 흘리며 죽고 말았다.
너희의 피가 온 국민의 옷을 피로 물들였는가? 너희의 피가 온 국민을 광화문으로 모이게 했는가? 너희의 피가 미국의 오만함을 고발했는가? 너희의 피가 58년간 우방이라는 양의 탈 쓴 주한미군이라는 늑대를 알아보게 했는가?
월드컵의 붉은 옷들이 이제 너희가 뿌린 붉은 피로써 우리 온 국민의 가슴을 붉게 물들였다. 붉은 옷, 붉은 피의 대한민국이 이제 두 주먹 불끈 쥐고 주한미군 몰아내자고 외치며 모여든 작은 촛불이 저 태양이 될 때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고 있다.
미국의 지배와 억압, 착취에 순응하고, 노예처럼 지내온 지난날의 민족 운명을 자각하며, 평등과 자주, 자유와 해방의 민족주권을 찾고자 대한민국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
“효순이, 미선이를 살려내라.”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 손녀의 죽음처럼 가슴아파하고 이 땅의 부모들은 내 자식의 억울한 죽음처럼 분노하며 젊은이들은 내 동생, 내 친구의 죽음처럼 가슴치며 통곡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