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 정계개편 목표‘줄타기’묘기 부리나?

“노병은 죽지 않는다” JP 자신감에
“이젠 산소호흡기 떼낼 때” 상반된 의견

대선이 끝나자마자 정치권의 관심은 당장 정계개편에 쏠렸다. 그 중에서도 자민련의 운신은 단연 충청권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민주당과의 공동정부가 깨진 후 생존을 위한 갈지자 행보를 계속해 온 자민련은 이젠 정말 선택을 위한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대선을 불과 3~4일 앞둔 시점에서 “누구도 돕지 않겠다”며 단호하게(?) 중립을 선언한 JP의 의중이 조만간 그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대선 목전에서 내 보인 JP의 ‘정치 9단술’에 대해 아직까지는 ‘노옹(老翁)의 마지막 총기(聰氣)’ ‘꼼수 정치의 극치’라는 평가가 교차한다. 이회창 노무현의 양강구도에서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히려 JP에겐 속편한 기다림의 시간을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은 그런 한가로움을 즐길 여유가 없다. 그동안 자민련의 공언대로 다시 조직을 추스려 부활을 구가하려면 조만간 다가 올 정계개편에 대비, 일단 키(key)를 쥐기 위한 액션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어느 것도 여의치가 않다.

한번 보수는 영원한 보수

현재 국회의원 12명을 보유한 자민련은 현실적으로 독자 생존이 어렵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확인됐듯이 의원중 다수가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데다 지금으로선 이들을 하나로 묶을 확실한 동기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충북의 현역의원 역시 서로 관점이 달라 정우택의원(괴산 진천 음성)은 선거중립을 표방한 반면 송광호의원(제천 단양)은 한나라당 지지를 밝혔었다. 원외인 청주 상당의 김춘식의원은 지난 17일 노무현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등 개인별로 견해를 달리했다. 결국 조직의 수장인 JP는 물론이고 그 구성원까지 향후 짝짓기를 위한 나름대로 포석을 깔아 놓은 것이다. 이 때문에 JP의 입장에선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대나 공조를 모색하며 일단 당의 분위기를 조율할 공산이 크다.
그 첫 번째 볼모가 정계개편 움직임이다. 정계개편은 대선 전에 이미 예고됐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모두 정권획득에 실패할 경우 필히 동요가 따를 수 밖에 없었고 그 파장은 곧바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지금으로선 정치 패잔병들이 기댈만한 가장 마땅한 환경인 셈이다. 이에 대한 자민련의 기대심리를 중앙당의 한 당직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차피 신당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민련이 설 것이다. 잔치가 끝나면 들뜬 분위기도 가라앉는다. 차분한 마음으로 바라 보면 생각도 달라진다. 혼탁한 대선 정국의 소용돌이에서 자민련이 제 목소리를 못 낸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누가 뭐래도 자민련은 보수의 원조다. 보수를 중심으로 한 정치집단의 결집은 차기 정권을 견제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다. 이젠 확실한 명분도 생겼다. 얼마전 무산됐던 다자간 연대 내지 신당 출범이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고 그 핵심을 자민련이 맡을 것이다. 중부권 신당이면 더욱 좋겠다.”

“17대 총선결과로 말하겠다”

자민련 충북도지부의 견해는 더욱 현실적이다. 유철웅사무처장은 정치의 가변성을 거론하며 자민련의 부활을 확신했다. 그는 자민련이 대선에서 중립을 지킨 것은 자체 후보를 못냈기 때문이고 향후 집권당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보수’를 정체성으로 하는 자민련의 위상을 높일 것이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자민련의 위기론이 제기됐지만 한번 제대로 짚어 보면 절대 안 그렇다. 충북같은 경우 국회의원 두명과 자치단체장 세명(오효진청원군수, 김경회진천군수, 김문배괴산군수), 그리고 도의원 3명이 그대로 우리 당에 남아 있다. 정세의 변화를 꼭 자민련에 불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게 문제다. 한동안 자민련이 주춤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런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보는 건 오산이다. 정치는 항상 변한다. 당장 내일도 점칠 수 없는게 정치다. 자민련은 더 이상 추락할 것도 없다. 정계가 개편되고 신당이 만들어진다면 결국은 자민련이 우선 주목될 수 밖에 없다. 사실이 그렇지 않으냐. 어쨌든 자민련은 조직을 유지해 왔고 또 군소정당들 중에선 가장 많은 의석을 갖고 있다. 지난 대선은 자민련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2004년 17대 총선이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다”

JP의 의술, 이젠 시대에 뒤떨어져

그러나 자민련에 대한 비관론 역시 점차 농도를 더해 가는 분위기다. 이런 패배의식은 당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일부에선 이미 “자민련은 해체되고 있다”고까지 단정한다. 비관론의 핵심은 인물과 조직의 두 갈래 한계로 집약된다. 우선 3김정치의 한축인 JP의 생명력은 이미 끝났다는게 주류를 이룬다. JP가 이인제를 영입, 소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JP의 정치력은 어쩔 수 없이 태생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이에 대한 답변을 JP의 최근 운신에서 찾았다. 그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JP의 추파를 안 받은 정치인이 있는가. 그 때마다 모두에게 문전박대를 받았다. 말이야 무슨 정계개편이니 신당이니 모두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JP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대선을 앞두고 한표가 아쉬운 상황에서도 대선후보들이 JP를 외면한 것은 뭘 의미하겠는가. 작위적인 정치술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 앞으로 JP가 중심이 되고 싶다는 정계개편도 그렇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미 어루어졌어야 한다. 그동안 얼마나 공을 들였느냐”고 반문했다.
어쨌든 자민련 소속 의원들은 곧바로 현실을 직시할 수 밖에 없다. 불과 1년여 앞으로 다가 온 17대 총선을 의식하는 그들로선 지금의 자민련 분위기가 걱정되는 것이다. 적어도 충북에서만큼은 자민련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국회의원 2명과 자치단체장 3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의 당선은 당의 배경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막상 그동안 탈당설에 휘말렸던 국회의원들이 가장 염려한 것은 자민련으로부터 제기될 배은망덕이 아니라 선거구 유권자들의 손가락질이었다. 당의 울타리는 그만큼 신뢰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분만 갖춰진다면 이들의 탈당은 시간 문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자민련 분위기를 한 마디로 ‘치료시기를 놓친 중증의 환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면 안된다고 다들 느껴 왔지만 계속 핵심을 방치해 왔다. 큰 기대를 안 하면서도 JP의 소생술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JP의 의술은 시대에 뒤떨어졌고, 결국 왔다갔다 하다가 당의 정체성만을 잃게 됐다. 자칫 잘못하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며 문을 박차고 나올 상황이 벌어질 판이다. 특단의 계기가 없는 한 당은 쪼개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JP와 IJ는
서로 다른 체질?
자민련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

자민련에 대해 부정적인 인사중엔 총재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인제변수를 주목하기도 해 눈길을 끈다. 지금으로선 자민련을 살릴 포스토 JP로 이인제가 꼽히지만 이런 전후관계를 오히려 역기능적 요소로 치부하는 시각도 많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몽리와 변신을 통해 줄곧 정치적 기사회생을 꾀해온 JP와, 잘 나가다가도 불리하다 싶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는 행태를 보인 IJ(이인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지금의 JP-IJ 동거는 어느 한 순간에 깨질 수 있고, 이럴 경우 자민련의 부활은 오히려 더 어려워 진다는 판단이다. 자민련 관계자는 “만약 당이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한다면 이인제 수혈의 효과보다는 차라리 묵은 솔(JP)의 역할에 더 기대심리가 클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이럴 경우 JP와 IJ의 속내는 서로 상반될 수 있다. JP는 자신의 기력회복(?)을 위해 IJ를 적당히 활용하다 버리면 그만이고 민주당으로부터 정치적 ‘미아’라고 비판받는 IJ는 향후 정계개편의 소용돌이를 자민련과 JP에 의존해 헤쳐나가다가 역시 적당한 시기에 결별하면 그만이다. 이런 분석은 두 사람이 지난 대선에서 ‘중립’과 ‘이회창지지’라는 대치된 입장을 보임으로써 더욱 불거지고 있다. 1인자를 향해 영원한 2인자로 달려 온 JP와, 영원한 1인자를 위해 굳이 2인자가 되기를 거부해 온 IJ가 과연 자민련의 부활에 한목소리를 낼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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