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는 깨진 바가지, 이인제는 퇴조 “누구 찍을 건지는 알아서 뭣혀?”

충청권 유권자들에게 이번 대선은 특별하다. 충청권 표심에 쏠린 이목 때문만은 아니다.
JP, 이인제 등 그동안 선거때 마다 지역 유권자의 표심을 흔들었던 지역 출신 정치인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와졌기 때문이다. 실제 JP와 이인제 의원이 충청 표심을 움직일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지는 해’ JP의 여백, 누가 채우나?

지난 12일 충남 공주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이모(54·공주시 신관동)씨는 “선거에 출마하지도 않은 JP하고 이인제 얘기는 왜 하느냐”고 되물었다. 자신의 표심과 무관하다는 얘기다.
성모(48·공주시 우성면)씨는 “원래 JP는 바가지(그릇)는 큰데 오래 쓰다보니 깨져서 물이 줄줄 샌다”며 “쓸만큼 썼고 (정치적) 수명도 다 됐다”고 말했다.
논산에 사는 윤모(45·논산시 논산읍)씨는 “이인제 의원에 기대를 거는 지역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일축 했다.
그렇다면 JP와 이인제 의원의 영향력 퇴조로 생긴 여백은 누가 채워가고 있는 것일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유권자들은 JP와 이인제의 바턴을 이회창 후보에게 넘겨주는 듯 보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게 보내준 파격적인 표심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닌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었다. 노-정 단일화 이전 정몽준 의원에게 보내준 높은 관심은 이를 잘 말해 준다.
노-정 단일화 이후 충청권 표심이 또 한차례 요동쳤다. 노-정 단일화 이전에는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치열한 각축 속에 이 후보의 우세를 점치는 분위기가 짙었다. 하지만 노-정 단일화 이후 노무현 후보가 이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겨루고 있다.

대전 노 후보, 충남 이 후보 우세 경향

대전의 경우 노 후보가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카이스트(KAIST) 근처에서 식당업을 하는 김금옥(55·여)씨는 “얘기 안해도 알쟎아? 노무현이 인기 좋쟎아” 한다. 김씨는 “처음엔 가진 것 많아 없는 사람 등쳐 먹을 것 같지 않은 정몽준 찍을 려고 했지만 단일화되면서 노무현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을 하는 김모(4·중구 문화동)씨는 “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노무현 (찍겠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대전역앞에서 노점을 하는 이경복(68)씨는 “부패로 나라 말아 먹은 김대중 이랑 노무현 이랑 하나 다를 게 없다”며 “대쪽같고 경험 많은 정치인이 나서야 한다”고 이 후보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번 대선 과정 내내 대전 지역 여론 변화를 조사해온 모 정당 지구당 관계자는 “세대간 지지층이 확연하게 갈리고 있다”며 “20-30대 층에서 노 후보를, 60대 이상 층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고 40-50대 주부층이 두터운 부동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은 대전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이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이 후보의 ‘충남고향론’이 일정하게 받아 들여 지고 있는 예산을 비롯 인접 시.군에서 이 후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충남고향론이 고향 발전론과 등치돼 이 후보가 일정한 비교우위에 서 있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대세 가를 막판 부동층 향방은?

천안.아산 지역의 민심을 줄곧 취재해온 천안의 한 지역신문 기자는 “아직까지 이 후보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노 후보 또한 선전하고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산에서 만난 분식업을 하고 있는 강모씨는 “이 후보를 고향사람이라도 생각한 적은 없다”면서도 “이 후보가 당선되면 충남도청도 예산으로 이전하고 아무래도 지역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청양에서 만난 신 모씨는 “대통령씩이나 출마했으니 다 똑똑한 사람들 아니겠냐”며 “그래도 고생을 많이 해본 사람이 필요하다”며 노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공주 터미널에서 만난 강모(54·공주시 의당면)씨는 “아직 누구 찍을지 맘을 정하지 못했다”며 “노무현을 찍자니 안보가 걱정이고 이회창을 찍자니 경제가 걱정”이라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어느 쪽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심은 당연 막판 부동층의 향배에 쏠려 있다.
이와 관련 JP와 이인제 대 정몽준의 효과는 당연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대체적으로 정몽준 효과가 이인제 효과보다 클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우선 정몽준 의원을 지지했다가 단일화 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인제 의원의 경선불복 행보에 대한 반감도 정몽준 효과의 우세를 점치게 하고 있다.
박선우(35, 중구 태평동)씨는 “누구 찍어야할지 고민하다 공동 유세하는 모습을 보고 노무현 찍기로 했다” 고 말했다. “노무현이 돼야 평소 참신하게 생각 해 온 정몽준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박씨가 마음을 정한 이유다.
대전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인제 대행의 경우 공동유세가 아닌 지역 순회 간담회 수준이어서 지역여론을 얼마만큼 움직일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정몽준 효과, 이인제 효과 ‘압도’
vs 행정수도 이전 효과 ‘차단’

대신 대전충남 한나라당측은 ‘행정수도 이전 공방’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민주당의 행정수도이전론은 충청권의 관심을 노 후보에게 집중시키는 효과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측의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는 논리와 노 후보의 인천발언 쟁점화 시도이후 수도이전론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민주당대전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도 “한나라당측이 노 후보의 인천발언을 연일 침소봉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면서도 이같은 공방이 “부동층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막판 표심의 흐름또한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측은 “노 후보가 이 후보를 큰 차로 앞서고 있어 막판 굳히기에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측은 “박빙의 승부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각 당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권자도 없다.
“누구 찍을 거냐고? 그건 알아 뭣혀. 내 맘속에 간직하고 있다 찍어야지 다 알려 줄거면 투표를 왜 해!”
금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심재구(68)씨는 끝내 속내를 말하지 않았다. 삼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일. 잔잔하고 고요한 대전충남 지역 분위기는 섣부른 예측을 거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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