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 재신임 명분, 차점자에게 넘겨줘야

지난 11일 재선출된 임광수 충북협회장에 대한 지역 여론이 심상찮다. 충북협회는 이날 서울 세종호텔에서 대의원총회를 열고 임광수회장을 차기회장으로 재선출했다. 이날 36명의 대의원 중 33명이 참가, 투표했는데 결과는 임광수회장 18표, 정종택충청대학장 10표, 이필우영동군민회장 5표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그동안 용퇴의사를 밝혀 온 임회장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되자 협회 내부는 물론 지역사회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5년 7월 전임 윤욱현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3년 임기의 7대 충북협회장에 오른 임광수회장은 이로써 일곱번 연임을 거쳐 무려 24년 장기집권(?)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기게 됐다.

임회장 연임을 반대해 온 회원들은 대의원 회의 결과 불인정, 오는 28일 예정된 총회 인준 보이콧, 제 2의 출향단체 구성 등을 주장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임회장은 최근 충북협회의 사조직화와 역할미흡, 본인의 나이 등이 이유가 돼 회원들로부터 끊임없이 퇴진 요구를 받아 왔다. 임회장은 올해 80세로 충북을 대표하는 공조직을 맡기엔 너무 연로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특히 임회장 체제 이후 충북협회가 6, 70대 위주로 운영되면서 사회적으로 한창 활동하는 4, 50대들은 아예 발길을 끊는 바람에 협회 자체의 정체성에도 상당한 논란을 빚었다. 심한 경우 경로당이라는 비판까지 받은 것이다.

임회장 연임을 반대해 온 회원들은 당장 11일의 대의원총회가 적법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협회 일각에선 “처음부터 사기극”이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숨기지 않는다. 충북협회 대의원은 각 시·군민회에서 3명씩 추천하는 회원들로 구성되는데 협회측은 일부 회원들의 강력한 요구를 받고서도 투표날까지 대의원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11일 투표는 임시의장을 맡은 서상열부회장(전 단양군민회장)의 발언으로 후보를 특정하지 않는 교황선출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대해 비판론자들은 협회측 스스로 교황선출방식을 언급했기 때문에 이번 대의원 총회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한다. 가톨릭에서 적용하는 교황선출방식은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투표를 진행한다. 이러한 관례에 비춰볼 때 18표를 얻은 임광수씨 재선출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충북협회 정관은 이 부분에 있어 관련 규정이 너무 모호해 절차나 법적인 하자로 몰고 가기는 버거울 것으로 보인다. 충북협회 정관 제 11조는 회장을 비롯한 임원은 대의원회의에서 선출한다고 해 놓고 대의원 회의 의결 정족수를 재적대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대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규정하고 있어 11일 임회장의 선출과정은 정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교황선출방식이 문제가 되는데 이것도 사회자가 후보 특정이 안 된 상황에서 편의적으로 인용했을 뿐이라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또한 반대파들은 28일 총회 인준을 거부하자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간단치가 않다. 정관에 적시된 충북협회 총회의 처리사항엔 회장 인준 자체가 없다. 총회의 인준없이도 이미 임광수씨는 차기 회장으로 자격을 갖는 셈이다.

결국 최악의 경우 임광수씨 장기집권을 비판해 온 회원들이 제 3의 출향 단체를 새로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갖은 추문이 불가피해 지역에 상당한 누를 끼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지역의 뜻있은 인사들은 임광수회장의 명예로운 퇴로를 열어 줘야 한다면서 지금이 최적기라고 주장한다.

한 관계자는 “사실 임회장은 충북협회 문제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에서 심정적으로 많이 꼬여 있을 것이다. 지난해 충청일보 사태가 오랫동안 진행될 때도 임회장은 이미지상에 많은 실추를 당했다. 어쨌든 이번 대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임회장으로선 명예를 다시 회복한 셈이다. 이런 마당에 더 이상 회장 자리에 집착하지 말고 차점자인 정종택학장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물려주면 모든 일은 일거에 해결된다. 총회가 있기 전에 지역의 책임자들이 이런 쪽으로 분위기를 적극 만들어야 할 것이다. 충북의 대외 이미지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정우택 도지사도 나서야 한다, 의심만 하지 말고 우선은 임회장이 서운한 감정없이 자리를 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만약 임회장이 연임을 고집한다면 더 이상 명분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임광수회장은 지난 연초 신년교례회 때 “적당한 후임자가 있으면 언제든지 물러나겠다”는 취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이는 이원종 전 지사와도 사전에 조율된 것으로, 당시 이 전지사는 악화된 지역 여론을 전달키 위해 행사 전에 임회장을 따로 만나 이같은 다짐을 받은 것이다.

임회장의 연임은 도민들을 상대로 한 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향후 자신에 대한 비판에 더 이상 명분을 댈 수가 없다. 특히 후임회장을 맡겠다는 인사가 나타난 이상 임회장이 그동안 연임의 이유로 내세웠던 ‘적당한 후임자가 없음’은 더 이상 설 땅을 잃게 됐다. 정종택 학장은 충북협회가 파행으로 흐르면서 지난 7일 7개 시·군민회장단의 거국적 추대로 어렵게 총대를 맸다가 이번에 험한 꼴을 당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지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임광수회장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하지 말라는 주문이 많아졌다. 내가 생각해도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임회장이 명예롭게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계속 그 자리를 욕심낸다면 본인이 한말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지역 여론에 떠밀려 차기 회장을 맡겠다고 나선 인사도 나타난 이상 이젠 임회장이 아무 조건없이 물러나야 한다. 일단 임회장의 최종 입장을 들어 본 후 여의치 않으면 지역의 각계와 연계해 강력한 활동을 펴겠다. 여론이 어떠한지는 이미 드러나지 않았는가. 사실 지금까지는 충북협회 문제가 신년교례회나 정기총회 때 잠깐 반짝하다가 슬그머니 유야무야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르다. 후임자가 나타난 이상 파문은 클 수 밖에 없다.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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