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부각, 차기 대권 꿈꾼다

지난 12월 1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대표의 ‘2차회동’. 이날 회동에서 두 사람은 공동유세뿐만 아니라 ‘5년간 국정공동책임론’에 합의했다. 5개항 합의문의 핵심은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대표는) 국정운영 전반을 논의하기 위해 정례 대화를 통해 긴밀히 대화하고 정책공조를 효율화하기 위해 양당과 정부가 함께 하는 정례 당정협의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뜻밖의 합의사항과
정몽준 ‘몽니’의 진짜 이유

그런데 두 사람이 회동한 직후 양당 대변인의 입을 통해 눈길을 끄는 합의내용이 공개됐다. 이날 노 후보가 50분간의 단독회담에서 “내가 당선될 경우 정 대표가 당선자 특사 자격으로 미국·중국·북한 등을 방문해 핵문제 등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제안했고 정 대표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 정 대표를 당선자 특사로 내정한 것은 애초 5개항 합의문에 들어 있지 않던 별도의 합의사항으로 향후 정 대표의 정치행보와 관련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몽준 대표는 지난 11월 25일 단일후보 확정 이후 ‘낙마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자신이 단일후보로 확정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심지어 당내에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실사위원회’를 구성해 협상단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대상으로 진술서를 쓰도록 한 것도 낙마 후유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정 대표가 노무현-정몽준 공조체제의 본격 가동을 미뤄온 것은 ‘낙마 충격’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 대표가 단일후보 확정 이후 오랫동안 ‘몽니’를 부린 데는 ‘불철저한’ 후보단일화 협상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후보단일화 협상단에 참여했던 국민통합21측 한 인사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가 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를 원하고 있다”며 “정 대표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인사의 발언내용에서 유추해보면 노 후보와 정 대표는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공동정부 운영과 관련한 대략적인 ‘플랜’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13일 2차회동시 합의한 5개항의 핵심내용은 이미 후보단일화 협상과정에서 합의한 내용의 일부분일 수 있다. 특히 별도의 합의사항으로 공개된 ‘정몽준 특사 내정’은 정 대표가 얻어낸 성과물이자 공동정부 운영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노 후보와 정 대표는 2차회동 직후 “자리를 나누고 밀약하는 것은 옛날식 낡은 정치지만 우리는 이해관계나 거래없이 국민을 위해 새로운 정치를 실천하기로 합의했다”며 “우리 합의를 ‘뉴딜’로 명명하겠다”고 선언했다. 97년 대선 직전 이루어진 DJP연합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이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측의 관계자들도 “두 사람 간에 내각 지분이나 자리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조율이 이루어진 분야의 각료임명에는 정 대표가 사실상의 지분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리더론’ 확산의 노림수

그런 측면에서 노 후보가 당선된다면 특히 차기정부의 통일·외교·안보분야에 대한 정 대표의 ‘입김’은 매우 세질 전망이다. 설사 정 대표가 차기정부의 집권초기 국무총리를 맡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사실상의 2인자’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원내 의석이 한 석뿐인 군소정당의 대표이기 때문에 DJP연합에 합의했던 JP에 비해 지분싸움에서 불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DJP연합은 권력배분을 매개로 이미 정해진 단일후보에 손을 들어주기 위한 연대였던 데 비해,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는 20%대의 비슷한 지지율을 가진 경쟁적인 두 후보가 단일후보를 놓고 접전을 벌이다 서로 합의한 게임규칙(여론조사)에 의해 한쪽이 대선출마를 접은 경우다. 그런 점에서 노 후보가 승리한다면 정 대표는 DJP연합의 JP보다 ‘당선 기여도’가 더 높고, 이에 따라 당연히 차기정부에서 그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정 대표는 특히 당선자 특사 자격으로 미국·중국·북한을 방문하면서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로서의 면모를 국내외에 과시할 계획이다. 이미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권을 따내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는 데다가 차기 정부 출범 전 ‘특사활동’은 정 대표를 국제정치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시키는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정 대표는 이렇게 ‘글로벌 리더론’을 확산시키면서 차기 대권을 향한 행보를 조심스럽게 내딛을 생각이다. 정 대표가 단일후보 확정 이후 낙마충격에도 불구하고 미국문제와 북한 핵문제 등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2월 4일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 아쉽다’는 논평을 통해 ‘외교력 배양’을 강조했고, 12월 13일 ‘북한 핵시설 재가동’에 대한 논평을 통해 정치권의 초당적 대처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정 대표가 공동유세를 하기 전까지 미국 고위관리들을 집중적으로 접촉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만약 노 후보가 당선된다면 후보단일화의 승자는 노 후보와 정 대표 두 사람이 될 것이다. 특히 정 대표는 공동정부 운영에 참여해 국정경험을 쌓고, 통일·외교분야를 지휘하며 대외적으로 글로벌 리더임을 각인시켜 나갈 가능성이 높다. 51년생인 정 대표의 꿈은 여전히 ‘50대 글로벌 대통령’(Young Global Leader)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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