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수상 트뤼도(1919∼2000)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트뤼도 수상의 아내는 유명한 록그룹 롤링 스톤스와 염문을 뿌렸다. 절대권력에 치를 떨던 시절, 캐나다의 수상이 마누라와 정부(情夫)조차 어떻게 하지 못한다더라는 해외토픽은 우리들에게 기이하게 비쳐질 정도였다. 그러나 트뤼도는 ‘세계시민’의 이념을 실천하던 위대한 정치가였다. 그는 냉전시대에 쿠바를 방문했고, 퀘벡 출신이면서도 퀘벡의 독립주의자들과 맞섰던 인물이다.
트뤼도 수상의 장례식에서 그의 아들 저스틴은 조사(弔辭)에서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국회식당에서 만난 아버지의 정적(政敵)을 향해 정치가의 아들답게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요량으로 장난기가 발동해서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을 때, 아버지는 엄하고 단호하게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저스틴, 결코 인격에 대하여 공격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한 다음 아버지는 나를 어린 딸과 식사를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데리고 가 소개시켰습니다. 그 때 그분은 나에게 상당히 우호적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존중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저스틴은 회고했다. ‘이 단순한 관용, 그리고 신앙과 출신과 가치와 무관하게 각각의 인간에 대한 실제적이고 깊은 차원으로서의 인정’, 이것이 바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기대했던 것이고 또 우리 조국에 대해서 기대했던 것이라고. 아버지 트뤼도는 자식과 조국에 대한 사랑 위에서 바로 ‘이것’을 요구했고, 이 근본적인 신념은 교과서가 아닌 모든 캐나다인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부터 왔다고.
나는 우리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 다름이 곧 상대방 인격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아무리 우리의 현수준이 견해가 아니라 인신을 논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단계에 머물러있다 손치더라도, 적어도 나의 인격을 고상하게 만들고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의견의 차이가 인격의 폄하로 이어져서는 안됨을 강력히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누가 되든, 이것만 우리가 지켜낸다면,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을 가질수 있게될 것이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과연 내가 상대방과 의견이 다르면서도 그의 인격을 존중할 수 있는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견의 차이를 너무도 쉽사리 인격의 문제로 몰고 나간다.
‘그 사람 그렇게 생각하면 돼?’라고 하고는 곧이어 바로, ‘그 사람 못쓰겠어’ 또는 ‘그 사람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 사람 그렇게 생각하면 돼?’라고 말한 다음, ‘나와는 생각이 다르지만, 그럴 수 있어’라든가 ‘그 생각이 내가 보기에는 틀렸지만, 나쁘지 않아’로 이어질 수는 없을까?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우리는 ‘진리’(眞理)에서 ‘일리’(一理)로 나가야 한다고. 일리가 아닌 진리를 내세우는 것은 ‘무리’(無理)라고.
후보들은 제 각각의 생각이 있다. 우리의 선택은 그 ‘생각’을 선택하면 된다. 그들의 생각이 형편없는 것이지, 그 ‘사람’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A를 찍고, 그가 B를 찍는다해서, A와 B의 인격 사이에 메울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그의 인격이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엄정한 당위와도 통한다.
존경의 정치, 우리에게는 너무도 꿈만 같지만, 그래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상대방의 인격을 깊이 존경하면서도 그와 의견이 다를 수 있는가?’를 자꾸 묻게 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