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출신 취업 '개발업체'로 집중돼

전문성 강화보다는 로비스트 전락 우려
몇 년전 사무관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A씨는 매일 산에 오르는 일이 일과가 돼버렸다. 일주일에 두 번 봉사단체에 나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 평소 좋아하던 여행도 자주 다니며 비교적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30년 이상 공직생활을 접은 퇴직공무원들은 어떻게 지낼까? 대부분 연금에 의존해 취미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거나 일부 개인사업을 하기도 한다. 또한 봉사단체 등 사회활동을 하며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재취업을 통해 노익장을 과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기업의 임원이나 전문분야에 진출해 공직생활 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마음껏 발휘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취업의 상당수가 개인의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웃’되기 보다 퇴직전 맡았던 업무나 직급으로 인해 영입하는 경우여서 후배 공직자들은 물론 지역으로부터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일이 적지않다.
특히 시행사 등 개발업체나 대관(對官)업무가 많은 기업에 영입되는 경우 대부분 대외적인 상징이나 각종 인허가 업무의 로비창구 역할을 하기도 해 적절치 못한 처신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기도 한다.

인허가, 고위직 공무원 출신이 최고?
공무원 출신이라고 모두 기업의 영입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특정 직업출신을 영입하는 경우는 그들의 경험과 업무를 통해 쌓아온 노하우를 사업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며 특히 직급이 높은 인사를 활용해 사업에 적잖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퇴직공무원 또한 기업이 필요로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인허가나 대외관계 창구 등 제한적인 필요로 인해 영입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퇴직공무원을 임원이나 고문 등의 이름으로 채용한 기업의 대부분이 인허가가 절실한 경우여서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아파트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한 업체는 충북도 부이사관(3급) 출신 인사를 고문으로 영입했으며 또다른 시행사도 청원군 서기관 출신 인사를 이사로 영입했다.
충북도 출신 인사는 건설교통국장을 지냈고 현재는 도 출연 기관의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청원군 출신 인사도 기획실장을 지내는 등 관련 부서와 요직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도내에서 임대아파트 사업을 활발히 펼친 한 건설사도 2001년 청주시 서기관 출신 인사를 1년여 동안 충청지역 본부장으로 영입, 이 인사는 이후 정당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화상경마장을 추진하다 무산된 한 업체는 지방의회 의장 출신 인사를 고문으로 위촉하기도 했으며 2001년 청주지역 중견 건설업체 두 곳이 오창산단 폐기물매립장 용지 5만6000평을 매입한 뒤 청주시 부시장 출신 인사를 대표이사로 영입해 법인을 설립,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퇴직공무원이 필요한 기업은 당사자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출신 부서나 직급 등 공직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영입 기준의 최우선 잣대가 되는 것이다.
퇴직공무원 영입은 인허가라는 대관업무 외에도 외지 업체가 도내에 진출할 경우에 두드러진다. 생소한 지역에서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거나 불이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퇴직공무원을 영입함으로서 외지 업체라는 이미지를 상당부분 해소한 것으로 판단한다. 마케팅을 위해 지역 인사들을 접촉할 경우에도 거부감을 크게 줄일수도 있고 수월히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했다. 특별한 업무를 담당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가 주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공무원 효과는 ‘글쎄요’
이들에 대한 해당 기업들의 평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거두는 경우와 관에 대한 영향력 행사 등 크게 두 가지다. 전자는 소위 기업의 ‘얼굴마담’역할을 하는 것으로 거의 외지 업체가 대부분이며 후자는 각종 인허가의 편의를 위해 영입하는 경우다.

기업이나 본인 스스로 부인하지만 인허가 절차를 앞두고 영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실무 보다는 막후 접촉 역할을 담당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이들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신통치 않은 수준이라는 게 업체들의 반응이다.

외지 출신의 한 업체 관계자는 “지역색에 따른 불이익을 줄이자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업자체만을 놓고 보면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다. 인허가 대관업무 실무에 약해 오히려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고 고위 공직자 출신이다 보니 공무원들을 여전히 부하직원 다루듯이 하는 통에 수습하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고 전했다.

실제 퇴직공무원을 임원으로 영입, 아파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 업체는 2년여 만에 사업승인을 얻었고 또다른 업체도 순탄치 않은 인허가 절차를 거쳤다.결국 이들이 인허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다른 개발업체 관계자는 “대관업무는 철저히 실무적인 것이다. 공무원 출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말 한마디 잘해주는 것 외에는 없다. 이들에게 실무적인 영향력을 기대하는 것은 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사업의 조언자나 외지업체라는 이유로 소외된다거나 하는 예상되는 불이익을 막는 좌장격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부하직원인 줄 아나봐요”
공직사회 퇴직공직자 재취업에 ‘곱지않은’ 시각


“슬그머니 사무실에 들러 어깨를 툭 치고 갑니다. 그런 다음 상사와 앉아 인허가 문제를 한참 얘기하다 돌아가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결재 받으러 들어가면 갖가지 토를 달며 미루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져서 나타나는 거예요” 고위 공직자들이 퇴직 후 개발업체 특히 시행사 등에 취업하는 것에 대해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인허가 부서의 결재권자 또는 고위직 공무원 출신 인사들이 자신이 맡았던 자리나 직급을 이용해 후배공무원들에게 적잖은 부담을 안겨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은 “퇴직 후에 다른 일을 찾아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이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로비용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본인도 떳떳하지 못할 뿐 더러 후배 공무원들의 사기도 떨어뜨리게 된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기업에 영입되면서 인허가 등과 관련해 압력을 행사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것이다.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른바 전관예우가 적용된다면 봐주기식 행정행태가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고위공직자의 경우 퇴직후 일정기간 관련 업체나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 마련도 검토할 문제”라고 말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최근에도 부이사관 출신 인사의 모 업체 영입설이 나도는 등 퇴직공무원 영입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관업무의 편의를 확보하자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고위 공무원 출신들이 이런 민간 기업의 이해에 맞춰 로비스트나 얼굴마담으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