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돌발 변수 ‘반미’…미국과 친한 후보는 표 떨어진다!

대선 막바지에 후보들간에 바야흐로 반미경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반미경쟁이라니. 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1948년 정부수립이래 역대 선거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야당 후보는 미국의 유력자하고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온갖 수모를 견디며 미국에 구애했다. 또 집권당 후보는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미국고위층을 만나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정통성이 부족한 군사정권이 미국으로부터 공인 받는 것을 정통성 확립의 계기로 삼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민주화 투사였던 YS와 DJ도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노무현-권영길 유리, 이회창 불리

그러나 이제 ‘미국에 NO라고 말하는 한국’시대가 열리고 있다. 더 이상 미국은 한국에 구원자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친구사이로 가고 있다. 친구가 잘못할 때 우리는 친구의 잘못을 지적한다. 그리고 때로는 따끔한 질책도 하고 충고도 하게 된다. 두 여중생 사건에 대한 끊이지 않는 국민들의 분노는 그런 변화된 인식이 부른 것이다.
이에 대선후보들도 앞다투어 소파개정과 부시대통령의 직접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한미군사동맹을 강조하고 부시대통령의 대북강경책을 절대적으로 옹호해온 한나라당이 최근의 반미시위에 적극 동조하는 태도변화를 보이는 것은 큰 변화다.
그럼 미국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전반적으로 보아 친미보수정당이라는 평판을 받아온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판단이다.
사실 이번 대선이 국제관측통에게 갖는 의미는 20년만에 보수3각동맹이 재현될 것인지 하는 점이었다. 80년대초 미국의 레이건, 일본의 나카소네, 한국의 전두환은 보수우익의 3각동맹시대를 열어 동아시아를 신보수주의의 우산 속에 담았었다. 만약 이번에도 미국의 부시, 일본의 고이즈미, 한국의 이회창으로 이루어진 보수 3각동맹이 등장한다면, 김대중시대와는 전혀 다른 동아시아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그러나 그런 3각동맹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이 한달전 까지만 해도 우세했지만 지금은 그 정반대다. 여중생사건으로 이회창 후보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자신이 다가가려는 층의 사람들에게는 거부를 당하고, 한편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의 울분에서 보듯 극우세력의 반발 또한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보수세력을 설득하면서, 새로운 진보 내지 중도적 지지기반을 확충하고 싶다는 것이 이 후보의 속내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나타나는 것은 보수세력의 분열과 지지기반의 축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것 같다.
노 후보에게는 다소 유리한 점이 있다.
만약 여중생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쯤 대북문제, 한미관계를 둘러싸고 주요 후보들 간에 치열한 논쟁이 일어날 때다. 그런데 돌연한 반미돌풍으로 이 이슈들은 사라지고 대신 반미경쟁이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후보에게 매우 유리한 정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노 후보는 자신의 취약분야로 지적되는 외교분야를 커버하기 위해 꽤 수고를 했어야 했을 것이다.

색깔론이 설 자리가 없다

노무현 후보에게도 딜레마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대등한 한미관계를 주장하면서 상대적으로 강성으로 비쳐진 노 후보로서는 기존의 지지층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도 안정감도 주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요구에 직면해 있다. 바로 이 점이 보수적인 이 후보보다도 더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는 나쁘지 않는 이슈다. 레드컴플렉스라는 복병을 건너뛰고 자신의 진보성을 거부감없이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슈를 만났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움직일 수 있는 표는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계량하기는 어렵지만, 국민의 80% 이상이 소파는 개정되어야 한다는 어느 조사결과를 보면 선거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냉전시대의 색깔론, 매카시즘이 활개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대선은 큰 진보를 한 셈이다. 적어도 이번 대선에 한해서 미국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역변수’다. 미국이 호감을 보이는 후보가 예전에는 표를 더 많이 받았지만, 이번에는 감표요인이 된 것이니까. ◑

노무현 후보 “내가 광화문 촛불시위에 불참한 이유”
“대통령 후보의 말과 행동은 책임 따른다”

서울 광화문에 촛불시위 준비자들이 몰려들던 12월7일 오후 4시40분. 노 후보는 대구 대신동 서문시장에 도착했다. 그는 비가 간간이 흩뿌리는 가운데 1000여 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유세를 시작했다. 노 후보는 “오늘 저녁에 열리는 (광화문) 촛불시위에는 참가하지 않으려 한다”며 “자칫 선거용으로 비쳐질 수도 있고, 대통령 후보로서의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늘 저녁 전국의 많은 시민들이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시위를 한다고 한다. 나도 이 시위에 참여하거나 적어도 격려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을 많이 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치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억울한 일이 없었을 텐데, 전 국민이 이렇게 억울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말을 참아왔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너무 나서면 두 어린 여중생의 죽음을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고 할까 봐 그랬고, 또 아무 말도 안하려 하니 미국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의 표를 의식해서 그런다고 그럴까 봐 (마음이) 편치 못하다. 나로서는 그동안 침묵했던 것이 참으로 죄송하고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께 사과한다.
오늘 저녁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오늘 (촛불시위) 참여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아니면 선거용 참여로 비쳐질 것인가 때문에 망설여진다. 또 한 가지는 단순히 시민단체 간부이거나 하다 못해 정당의 대표만 되더라도 당당하게 참여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으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책임이 따른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것이 바로 외교적 발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보의 말과 행동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침묵했던 것에 대해 거듭 죄송하다고 말씀드린다.”
노 후보는 이어 “대통령이 된다면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 소파(SOFA) 개정과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과 관련해) 부시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병한 기자 han@ohmynews.com

광화문 촛불시위 첫 제안 네티즌 ‘앙마’가 이회창 후보에게 보낸 글
“나는 당신을 촛불시위에 초청하지 않았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처음 제안한 네티즌 ‘앙마’는 12월 6일 밤 ‘여중생사건 사이버 범대위’ 홈페이지(www.bioviz.net)에 올린 글을 통해 “나는 당신을 위해 촛불 추모제를 제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애초에 7일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여하려 했던 이회창 후보는 결국 안팎의 부정적 여론 등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다음은 ‘앙마’의 글 전문.

나는 당신을 위해 촛불추모제를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선거유세를 위해 자발적으로 광화문에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미선이 효순이를 죽였습니까? 단지 미군의 장갑차입니까? 아닙니다. 50년 동안 우리 사회를 폭압적으로 지배해온 폭력의 시스템이 결국 미선이 효순이를 죽였습니다.
그 폭력의 시스템에서 가장 호의호식한 대통령후보가 누구입니까? 그 시스템을 평생동안 완성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물어보겠습니다.
미군이 노근리에서 대한민국인을 학살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친일파가 미국과 결탁하여 친미파로 거듭날 때 당신은 어디 있었습니까?
민족일보가 자주적 신문이었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요?
80년대 청년들이 피눈물로 미군을 고발할 때 당신은 누구 편에 서있었습니까?
야당총재로서 가장 먼저 미국에 달려가서 주인나라의 윤허를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F-15기가 강매될 때 그것을 추인한 국회 제1당의 총재는 누구입니까?
국회과반수를 차지하고도 소파를 개정하지 않는 국회 제1당의 총재는 누구입니까?
당신의 그 잘난 홍보용 신문이 미선이, 효순이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호도했는지 아십니까? 우리 미선이 효순이를 두 번 죽이고도 모자라서 세 번 죽이시겠다구요?
경고합니다. 우리 모두는 6월보다 더 큰 감정으로 분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만 추모제가 비폭력과 평화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걸 참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당신의 선거운동원으로 삼겠다면, 당신은 우리의 분노가 부시에게 향하기 전에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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