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때리기는 이제 한계 봉착
노 검증+포지티브전략 병행 필요”

8일 국회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이 후보가 발표한 정치개혁 8대 약속에 대한 실천 결의로 회의를 마쳤지만, 회의장을 떠나는 의원들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이날 긴급의총은 종반으로 치닫는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승부수’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한나라당이 선명한 개혁정당, 개혁후보 부각의 실패로 20, 30대 젊은층과 개혁성향 유권자들의 이탈이 심화돼 대선판도가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갑작스런 ‘정치개혁 결의’가 노-정 단일화 이후 열세로 돌아선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것을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초선 K의원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 후보가 의총에서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 여러분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달라. 막연한 대세론에 방심하지 말고 열심히 뛰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있던 의원이 혼잣말로 ‘그 대세론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영남지역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이 후보의 우세를 낙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K의원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어제(7일) 한 조간신문 1면에 실린 ‘盧,李에 근소한 差 앞서’라는 제목의 기사에 ‘지역별로는 노 후보가 부산·대구·경북·경남 등 영남권에서 이 후보에 뒤져 있으나 수도권과 대전·충청·호남 지역에서는 이 후보를 리드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제목은 근사하게 뽑아줬지만, 내용을 뒤집어 보면 영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노 후보가 이 후보를 누르고 있다는 뜻이었다”고 전했다.
총회장에서 이 후보는 인사말을 마치고 곧바로 자리를 떴고, 서청원 대표가 인사말을 통해 지도부의 안이한 선거전략에 대해 해명했다. 서 대표는 “선거 전략과 관련, 잘못된 부분을 귀 따갑게 들었다. 좋은 것은 이어가되, 그 동안의 문제점은 찾아내 전략을 수정하겠다”고 선거전략의 재검토를 시사했다.
서 대표는 이미 지난 6일 선거전략회의에서 박원홍 홍보위원장에게 ‘홍보전략의 수정’을 요구했지만, 이튿날 박창달 의원의 보좌관을 TV 연설원으로 내세우는 악수를 피할 수 없었다. 무리하게 민주당의 ‘부산아지매’ 연설 포맷을 쫓아갔고, 주공략 대상을 노 후보가 아닌 이해찬 기획위원장(교육부 장관 역임)으로 삼아 노무현과 이회창 사이에 고민하는 부동층 공략에 별 효과를 못 봤다는 분석이다.
K의원은 “박 의원 보좌관이 TV 연설에서 이해찬을 비판하는 동안 말귀가 어두운, 친이회창 성향의 노인들이 ‘이해찬’을 ‘이회창’으로 잘못 알아듣고 ‘왜 저 여자는 이회창을 욕하느냐’고 역정을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노무현을 직접 공략하지 않고 ‘DJ를 때리면 표가 나온다’는 구태의연한 전술이 유권자들에게 먹혀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네거티브 전략은 확실한 내용과 근거 없이는 앞으로 하지 않겠다. 후보의 안정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권심판론’이라는 슬로건을 유지하되 무원칙한 네거티브 전략이 득표에 도리어 마이너스가 됐다는 분석이다.
김영춘 의원은 “그렇다고 노 후보의 검증이 중지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노 후보를 검증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후보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이는 정책을 내놓는 전략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이날 내놓은 정치개혁을 위한 8대 약속은 한나라당 포지티브 전략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집권 후 자신과 가족이 권력형비리에 연루되면 즉시 대통령직을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행정부에 입각할 경우 ‘배지를 떼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김대중 정부를 맹공하는 처지이지만, ‘능력과 자질만 있다면’ DJ 정부 참여인사도 과감하게 중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일찍부터 정치개혁을 준비해왔다”는 당의 공식적인 설명과 달리 정치현안에 대한 여론이 가장 빠르게 표출되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후보 기자회견에 대한 반응이 썩 좋지 않다.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코앞에 두고서야 ‘긴급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순수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가장 논란이 된 공약은 ‘재산 헌납’. 당선을 전제로 한 것을 들어 일부 네티즌들은 “대통령 자리 주면 나도 재산 헌납하겠다”고 비아냥거렸다. ‘재산 헌납에 앞서 아들과 아내의 재산 공개는 왜 회피하는가’라는 물음도 많았다. 또한 이 후보의 ‘반미 행보’에 연이은 ‘좌충우돌 정치쇼’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각계 전문가와 양심세력으로 구성되는 정치개혁국민위원회’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난달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내 유사한 성격의 위원회들은 종합적으로 점검해서 정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 후보가 자신의 약속에 반하는 모순된 결론을 내렸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민주당에서도 “정치개혁 공약이 급조됐고, 일부는 우리 것을 커닝했다”고 평가절하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은 “지금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보다는 세밀하게 접근할 때라고 본다. 한나라당의 대응은 너무 늦었다”고 논평했다.
민주당과의 ‘정책공조 초읽기’에 들어간 국민통합21도 한나라당 안에 대해 “원내 정당과 권력분산형 개헌 등은 우리당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한나라당은 철새들만 모인 줄 알았는데 앵무새도 있더라”고 비꼬았다.
이 같은 부정적인 여론을 뒤로 하고 한나라당은 이번 주 분위기의 반전을 위한 특단의 카드를 낼 채비다. 선대위가 부산의 노풍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 주중 부산에서 87년 대선때와 같은 대규모 군중집회를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아직 검토단계이지만, 87년 10월17일 100만 인파를 불러모은 YS의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집회와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는 계획이다. ◑

이회창의 8대 정치개혁안 골자

▶ 당선시 전재산 국민에 헌납
▶ 새 정부 참여인사의 의원직 사퇴
▶ 권력형비리에 대한 특검제 도입
▶ 한나라당의 ‘원내중심 정당’화
▶ 임기 중에 개헌 논의 마무리
▶ 정치개혁 국민위원회 구성
▶ 일체의 정치보복 금지
▶ 백지신탁제도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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