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충북·제주 문화예술교류 활발한 토론·공연 행사
여기는 제주도 함덕리. 함덕리는 함덕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때 농수산물 창고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금은 이 마을 문화사랑방과도 같은 한모살 문화학교에서는 지난 17일과 18일 특별한 무대가 마련됐다. 2006 충북 제주 문화예술교류행사가 열린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먼저 신명나는 가락으로 충북의 예술가들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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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제주 청주 문화예술교류는 올해 8회째를 맞았다. 그동안은 ‘제주’,‘청주’라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교류가 펼쳐졌다면 올해는 좀 다르다. 단체중심의 교류에서 마을 주민들과의 친화적인 교류에 중심을 뒀다. 이철수 충북민예총 지회장은 “대중과의 접점을 찾고자 한 실험적인 교류였다. 교류를 통해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고, 그 지역의 문화를 풍요롭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수확이다. 8회를 맞는 만큼 변화를 모색중이고, 올해의 실험을 토대로 다양한 교류형식과 내용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에서는 46명이, 제주는 20~30명 내외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강영기씨는 “도종환의 시쓰기 방향은 역사를 통한 민족의 아픔쓰기, 절망 속에서 사랑쓰기, 삶을 통한 자아성찰쓰기로 진화했다”고 평했고, 정민씨는 “김광렬의 시를 흐느낌, 선비정신, 식물적 상상력, 관조와 설명”이라는 텍스트로 요약했다. 김현돈 교수는 “임은수의 작품은 여성성의 친숙한 아이콘 비단천, 색실, 스티치 등을 차용해 해체와 전복을 꾀하며, 적극적인 자아 탐구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김기현씨의 평론은 제주바람의 서정성을 부각시켰다.
“충북사람 공연 참 잘한다”
이외에 문학파트는 충북·제주작가회의 공동작품집 ‘새가 살던 집은 낡아도 새집이다’를 냈고, 미술파트는 한모살 문화학교에서 ‘한모살에 부는 솔바람’전을 열었다. 충북작가 26점, 제주작가 15점이 전시됐다.
이번 교류를 총 지휘한 충북민예총 예술사업 위원장 조동언씨는 “이번 교류가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짓는 모델이 됐다. 모든 문화행사는 대중과, 좋은 프로그램이 함께 준비돼 있어야 한다. 행사를 기획하면서 함덕 주민들이 어떤 공연프로그램을 좋아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단체간의 교류가 아닌 주민들간의 교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예상대로 함덕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연내내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함덕리 이장 고두철씨는 “행사가 이렇게 좋을줄 알았으면 더 많이 광고할 것 그랬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마을 주민 이은용(59)씨는 “충북사람들이 공연 참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주와 청주의 문화짝짓기는 ‘거품’을 뺀 작은 단위 교류였기에 ‘알찬 성공’을 거둔셈이다.
이지회장은 “함덕은 농경노동문화가 발달된 지역이라 공동체의 신명을 품고 있다. 노동과 예술이 분리되기전 대중과 예술은 가까워졌지만 오늘날은 서로 멀어져 그 간격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철수 지회장은 이날 함덕리 주민들에게 전시했던 판화 한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제주도 4.3사건은 미군정에 의한 대량 민간학살이라는 어두운 역사적 진실을 갖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된 것은 10년전쯤이다. 그동안 이곳 주민들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연좌제에 묶여 힘든 나날을 보냈다.
제주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제주 4.3사건을 재조명하고, 또한 국비 993억원을 들여 12만평 부지에 4.3평화재단을 수립중이다. 단계별로 공사가 진행중인데 현재 위령제단, 위렵탑등이 조성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곳은 해발 430m이고, 또한 동부산업도로에서 이곳까지 거리도 4.3km라고 한다. 제주민예총은 94년부터 매년 이곳에서 ‘제주 4.3예술제’를 개최하며 예술로 그들의 혼을 달래고 있다.
또한 국무총리 산하 4.3 사건 진상규명 명예회복위원회와 도 실무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강덕환 제주작가회의 회원이자 제주도 의회 4.3피해상담실의 유일한 계약직 공무원이라는 그는 교류의 마지막날 역사기행 해설을 맡았다. 그는 “처음에는 이 넓은 땅에 위폐보관소가 겨우 10평 규모였다. 시민단체들의 항의로 지금은 100평규모로 마을이름과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하지만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아 빈칸으로 남겨져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또 가나다순으로 표기돼 있어, 부부의 경우 이름이 떨어져 있다고.
▲ 4.3평화공원 100여평공간에 희생자들의 위패들이 마을별로 모셔져있다. | ||
4.3사건은 1947년부터 54년 9월 21일까지 일어난 미군정에 의한 ‘빨치산 타도’라는 미명아래 펼쳐진 대량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미군정-이승만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한 제주도민을 대량학살로 몰아간 것이다.
강씨는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지리적 독립성과 수탈로 인한 저항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빨치산들은 300~400명 정도가 있었다”라고 부연설명했다. 4.3사건은 영동 노근리의 학살, 보도연맹사건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지역 출신 작가들이 아픈 역사를 떠안고 살며 평생 이를 알리고자 한 것은 하나의 숙명이었다. 강씨는 “소설가 현기영씨의 고향이 이곳 노형리었다”며 그가 처음 1978년 제주도 4·3사건을 작품화한 중편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또한 “4.3특별법 개정안은 지금 국회에서 잠들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