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주공 1단지, 장애·비장애인 우리는 하나
현실 무시한 경사로, 화장실 등 앞장서 개선
특이한 점이 있다면 교자상이 아니라 키 높은 테이블이 잔칫상으로 사용됐는데, 이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로 식사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이날 행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용암동 만들기 모임’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진 단체가 주최한 장애인 한마당이었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 개설된 이들의 카페는 ‘장&비 공동체’다.
장&비 공동체가 구성된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주시 금천동에 있는 혜원학교(장애인 특수학교) 초등부에 다니던 이은희(가명·지체1급) 학생이 용암주공 1단지로 이사를 오면서 아파트 앞 용암초등학교로 전학을 시도했는데, 학교 측이 장애인 시설 미비 등을 이유로 전학을 거부하면서 공동 대응하기 위한 모임을 가졌는데, 이 모임이 장&비 공동체의 모태가 됐다.
장&비 공동체의 활약으로 은희의 전학은 곧바로 성사됐고, 비슷한 시기에 민주노동당이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게 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현재 장&비 공동체(회장 민영의)의 회원은 약 20여명. 용암주공 1단지에 사는 장애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윤성희 민주노동당 전 상당지구당위원장, 박옥주 전교조충북지부 부지부장 등이 비장애인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용암주공 1단지의 경우 약 2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장애인은 약 500명 정도로 무려 25%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994년 아파트 건립 당시 이같은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 입주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비의 활약은 여기에서 빛을 발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앉은 키를 고려하지 않은 엘리베이터 스위치의 높이를 낮추고, 휠체어가 돌아나가기에 비좁은 경사로의 회전부를 개선했다.
실내에 있는 욕실을 개조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문틀을 넓히고 출입문의 턱을 없애야 했는데, 아파트 측에서 입주자가 바뀔 경우 새로운 입주자가 이를 원치 않을 수도 있어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논리로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 성기용씨 집의 욕실을 개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입주 장애인의 조건에 맞게 개조가 이뤄지고 있다.
음성이 고향인 김씨는 척추측만증에 다리가 발육되지 않는 중증장애를 앓고 있지만 “젊었을 때 목발을 짚고 회사도 다녔다”고 말할 정도로 밝은 성격의 소유자다. 사고 때문에 건강이 악화돼 일손을 놓았지만 자택에서 하는 옷수선으로 생계유지에 한 몫을 했을 정도로 손재주도 탁월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 바느질을 배웠다기 보다는 기성복을 입을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일부러 옷수선을 하게 됐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슬하에 1남1녀를 뒀는데 은희는 지체장애, 남동생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다.
김씨는 “2년 동안은 몸이 아파 아무 것도 못했는데 이제는 다시 옷수선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3년 산남주공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온 김씨는 “이웃들도 친절하고 시내에 나가기도 편리해 생활이 만족스럽다”며 “장&비 공동체가 생기면서 서로서로 의지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재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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