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한미공조’만을 되풀이하는 앵무새들

국민들은 무조건 반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국민들은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게 해 달라는 아주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아메리카합중국(이하 USA) 장갑차에 의해 처참한 죽임을 당한 우리 두 여중생에 대한 재판을 둘러싼 내용을 보도한 문화방송을 보고, 새삼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USA 군대에 의한 일방적 재판과 잇따른 무죄판결, 그리고 사건 핵심관련자들의 출국, USA 군대 측의 죄의식 없는 뻔뻔스러움에 기가 질린 것이 어디 나 뿐이었을까.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나의 분노는 USA 군대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뒤집어 생각해보면, 해외에 파병된 우리의 군대가 과실로 현지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더라도, 우리는 망자의 아픔에는 공감하면서도 우리 병사가 아무런 법적 처벌도 받지 않고 무사히 귀국하길 바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작 우리를 열 받고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와 경찰, 언론들이 보여주는 한심하고 정신 나간 행태 때문이다.
정부는 무기력한 대응의 원인을 오로지 SOFA 탓으로만 돌리며, USA 군대의 대변인 노릇을 하기에 바쁘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당사자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종미(從 美)언론’들의 행태다. 입만 열면 앵무새처럼 ‘한미공조’를 외치는 그들은 이미 ‘친USA’를 너머 ‘종USA’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니 그들 눈에는 “USA에게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너무도 당연한 주장에 대해서도 “대선후보의 반미가 우려된다”는 식으로 보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從USA 사대주의’는 해도 너무한다. 조선일보 박두식 논설위원은 11월 27일자 ‘부시의 관심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부시 다루기’도 실패 사례다. (...중략...)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잘 아는 김 대통령이 왜 그랬을까. 그 답은 김 대통령 주변 인사들 머릿속에 가득한 ‘부시와 공화당=대북 강경파’라는 도식(stereotype)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정형화된 사고(思考)로 보면 부시는 처음부터 ‘불편한 존재’일 뿐, 함께 일할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 이를 더욱 부채질한 것이 국내의 ‘반(反)부시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위기의 원인을 부시와 공화당 강경파로 돌렸고 부시,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을 ‘악(惡)’으로 간주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이 펴는 ‘파월 국무장관 동정론’도 같은 뿌리다. (...중략...) 이제 한 달쯤 뒤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는 ‘부시 다루기’라는 세계적 고민에 동참하게 된다. 그가 부시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진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 내부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미국관(觀)부터 털어내는 게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말한다.
‘부시에게 잘 보여야 한반도 진로가 보장되니, 아전인수식 미국관부터 털어내야 한다’는 소린데, 부시의 공화당이 대북강경파 라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그것이 아전인수식 미국관이라는 주장을 보면, 기가 막혀 육두문자가 다 나올 지경이다.
동아일보도 역시 한패거리임을 상기시켜주길 마다 않는다. 같은 날 동아일보에서 소설가 복거일은 ‘시민-미군 맞설 때 정부는?’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미군부대에 화염병들이 투척되는 상황인데도 정부당국이 침묵하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리 시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는 한편 미군 병사들의 불안감도 가라앉혀야 한다. 반미 감정이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미군 당국을 다독거리는 조치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외국 병사들과 자국 시민들이 부닥쳤을 때 정부가 설자리는 바로 그 둘 사이”라고 친절하게 충고(?)하고 있다.
아니, 복거일은 자신의 자녀가 USA 군대의 장갑차에 의해 처참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했어도 “미군병사들의 불안감을 가라 앉혀야 한다”거나, “반미감정에 불만을 표시하는 미군당국을 다독거리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주종관계라 할지라도 주인에 의해 종이 다치면 가만히 있지 않거늘, 아무런 잘못없이 죽임을 당한 자국민의 시신을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어찌 이런 정신 나간 소리나 한가롭게 떠들 수 있겠는지 답답하다. 제정신 박힌 국민이라면 정부에 대해 ‘불평등한 행정협정을 개정하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USA군대의 불안감과 불만을 다독거리지 않는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 동안 주둔군의 숱한 횡포와, 거기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대해 분노한 국민들은 스스로는 제국주의의 노예라고 여길 정도가 되었다. 오죽하면 “주권을 상실한 국가이니 앞으로는 대통령 선거라 하지 말고 ‘식민지 총독’을 뽑는, 그것도 제국주의의 입맛에 가장 잘 맞고 굴종을 잘하는 총독을 뽑는 선거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겠는가.
조·중·동은 무조건 “반미는 위험하다, 튼튼한 한미공조가 중요하다”고 앵무새처럼 떠든다. 그러나 국민들은 무조건 반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그렇게 한심한 수준으로 본다면야 할 수 없지만, 국민들은 주권국가로서의 정당한 권리,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게 해 달라는 아주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와 경찰, 일부언론은 스스로 대한민국이 주권국가인지, 그리고 그들 스스로 대한민국의 기관인지를 분명하게 밝힐 때가 되었다.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청한다면 영원히 노예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말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진리다.
권태윤 기자는 두 아이의 아빠다. 언론사 기자와 국회의원 입법공보비서관을 거쳐 지금은 자유로운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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