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2 특집> 내가 본 대통령 후보-노무현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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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 특집> 내가 본 대통령 후보-노무현 후보
  • 충청리뷰
  • 승인 2002.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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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하기 보다는 용기 타고난 ‘촌놈’
사법고시 책 사기 위해 공사판에 몸 담기도
부림사건 변론 이후 “나의 편한 인생은 끝났다”

TV등 언론에 나타나는 대통령후보는 사실 잘 포장된 상품이다. 본인은 물론 무수한 사람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반출용(?)인 것이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그 포장을 걷어 낸 실체를 알고 싶어 한다. 제 아무리 논리와 정책제시가 뛰어나더라도 후보자 내면의 인간성만큼 더 각별함을 주는 것은 없다.
청주엔 노무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있다. 골프공을 전문 생산하는 서울낫소 청주공장 정화삼 전무이사다. 올해로 청주생활 11년째인 그는 노무현과 부산상고 동기동창이자 40년 지기다. 요즘 정화삼씨는 친구 얘기가 나오면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대통령후보로 훌쩍 커버린 친구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주변의 이목이 더 신경쓰이는 것이다. 그래도 단둘이 만나 얘기하길 좋아하는 노무현이 청주에 올 때마다 꼭 찾는 사람이 바로 정화삼씨다. 어렵게 만난 그가 노무현에 대해 처음 내뱉은 말은 “그놈아는 천생 촌놈이다”다.
노무현의 지지도가 가장 밑바닥을 헤매던 지난 10월 말께 둘은 허름한 소주집에서 마주했다. 청주방송 토론회 출연차 내려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노무현이 그에게 담배를 요구했다. 두 사람은 모두 담배를 끊은지 오래다. 목에 안 좋다며 극구 말렸으나 노무현은 비서관을 시켜 담배를 입에 물더니 고민을 털어 놨다. “나는 소신껏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는지 모르겠다. 너무 힘들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화삼씨는 사실 당혹스러웠다. 40년을 알고 지냈지만 노무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거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노무현은 원칙에 철저하고 거짓말을 안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정화삼씨는 노무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그 친구는 자신이 옳다하면 행동으로 옮긴다. 앞뒤를 재며 기회를 엿보는 식의 자기 합리화를 아주 싫어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일단 고(go)하는 행동파이다보니 정계 입문후 많은 돌출행동을 보였다. 이 때문에 과격하다는 음해를 종종 받지만 사실 그를 만나 10분만 얘기하면 이것이 얼마나 큰 편견인가를 알 수 있다. 불의와 무원칙에 항의하는 모습들이 대부분 와전된 것이다. 나는 그가 과격하다기 보다는 겁이 없는 촌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 그의 ‘욱’하는 기질이 오늘의 노무현을 키웠다.” 노무현은 한때 사법고시용 책을 사기 위해 막노동판에 몸담기도 했다.
노무현을 스타로 만든 5공 청문회 때 벌어진 일이다. 89년 12월 31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자기의 일방적 연설을 계속하자 노무현은 갑자기 일어나 청문회장에 명패를 내팽개쳤다. 전두환이 “광주학살은 군(軍)의 자위권발동”이라고 강변하는 순간이었다. 노무현은 후에 “연설 내용도 울화가 치밀었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라는 당 수뇌부에 더 환멸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1966년 부산상고를 마치고 고시공부를 시작할 무렵, 휴가를 나온 해군 병사가 “촌놈들 떠들지 말라”고 무시하자 노무현이 “자꾸 촌놈 촌놈 하지 마소”라고 일갈하며 받아쳤다. 결국 한판 싸움으로 번졌지만 상대는 태권도 유단자였고 노무현은 일방적으로 터졌다. 늘씬 얻어 맞아 힘이 빠진 노무현이 벌떡 일어나며 “니 잘한다. 내가 졌다”고 소리치자 싸움은 그것으로 끝났다. 이에 대해 정화삼씨는 “그런 행동이 친구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사례로 페어플레이를 중시하는 승부사적 기질”이라고 평가했다. 정화삼씨는 이런 면을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인데도 단일화 원칙에 합의, 결국 심야 역전극을 이끌어 낸 것은 노무현이기에 가능했다고 추켜세운다. 이와 관련해선 정화삼씨는 또 한가지 잊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00년 16대 총선 때다. 노무현은 지역감정의 벽을 스스로 깨겠다며 안방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출마를 감행했으나 한나라당 바람에 꺾이고 만다. 선거에 임박해 정화삼씨가 지인들의 모임에 참석, 노무현지지를 간청했으나 돌아 온 반응은 “민주당 그 자슥 들어오지도 마라!”였다. 당시 부산에선 민주당의 ‘민’자도 꺼내지 못할 분위기였다. 머쓱해진 정씨가 주춤하자 밖에 있던 노무현이 다짜고짜 방으로 들어 왔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좌석은 서로 덕담 나누기에 바빴고 참석자 대부분이 노무현 열성 지지자로 돌아 선 것이다. 정화삼씨는 “노무현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절대적으로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 소신을 실천했다. 당시 얼마나 힘들었던지 선거가 끝난 후 이사가자는 농담까지 나눴다”고 회고했다. 노무현이 정치, 사회문제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부산 부림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부림사건은 5공 군사정권이 집권 초기 통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대적 탄압을 가하며 만들어 낸 용공 조작사건이다. 대학생 및 지역 활동가 22명이 연루된 이 사건의 변론을 맡은 노무현은 교도소에서 한 학생을 만나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무려 57일간 구금돼 구타와 고문을 받아 겁에 질린 학생의 초점없는 눈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 온 노무현은 부인 권양숙씨에게 외쳤다. “우리 아들도 머잖아 대학가는데 이런 사회는 절대 안 된다!!” 후에 노무현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멀쩡한 학생들을 고문해 공포에 질린 눈빛, 섬뜩하게 느껴져 마주쳐다 보기가 싫은 눈빛을 만들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잘 나가던 내 변호사 시절은 끝났다.”
이 일이 있기전까지 노무현은 조세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간혹 부산 앞바다에서 요트를 즐기는 근심없는 사람이었다.

노무현 후보를 말한다
“평소의 신념 끝까지 유지하길”
정화삼시 모친은 노무현 캠프에서 아직도 인기 ‘짱’

친구가 못나도 걱정이지만 너무 잘나도 근심이다. 정화삼씨의 지금 심정이 이렇다. 그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도 걱정이라고 한다. 단둘이 만나 소주잔을 기울일 기회가 원천봉쇄될(?) 것을 우려한다. 이런 고민은 사실 자신보다는 모친이 더하다. 정화삼씨의 모친(76)은 노무현의 가장 극성 팬이다. 선거 때마다 열일을 제쳐놓고 거리를 누비는 바람에 지금도 노무현 캠프에서 단연 인기 ‘짱’이다. 노무현은 그 고마움을 부산 행사 때마다 초청해 극진히 대접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 노모가 2000년엔 TV의 스타가 될 뻔했다.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이 절대 불리한 상황에서도 당선권에 진입하자 캠프의 추천으로 모 방송국이 하루종일 노모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떨어지는 바람에 문제의 테이프는 지금까지 창고에서 자고 있다. 비록 친구가 실패하더라도 평소의 신념을 끝까지 유지할 것을 바라는 정화삼씨는 모친 생전에 그 이프가 빛을 볼 날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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