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사회당의 대선출마 의미

올 대선의 특징중에서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으로 대표되는 소위 진보, 혁신계의 두각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을 제치고 제 3의 정당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이 이번 대선에 임하는 자세는 남다르다. 민노당의 위상 변화는 권영길후보가 보수 정당의 후보들과 나란히 앉아 TV토론을 벌이는 모습에서 당장 확인된다.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는 민노당의 비약은 사실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긋고 있다. 사회 각계의 노동운동 역량이 커지면서 노동자 계급은 지난 97년 15대 대선 때도 국민승리21이라는 당을 만들어 역시 권영길을 대권 후보로 내세웠다. 당시 득표율은 1.2%로 현실 정치의 한계를 넘지 못했지만 5년만에 제 3의 정당으로 부상했고, 지금은 명실상부한 이념 정당의 전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민노당은 비록 충북에서 당선자를 못냈지만 선전함으로써 지방정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민노당의 충북득표율은 7.3%로 전국 득표율 8. 1%에 비해 다소 뒤졌으나 보수적 정치성향의 충북에서 이 정도의 득표율은 사실 예상외로 받아 들여졌다. 지역 노동운동이 그만큼 커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민노총이 주축이 된 이번 대선에서도 민노당의 움직임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지방선거까지도 당 활동의 범주는 노동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는데 지금은 사회계층을 통할하는 세력화의 기미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동안 총파업 등 노동운동의 대중화 노력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방선거 때보다 선전할 자신”

당원이 아니면서 공개적으로 민노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쉽게 눈에 띈다. 자신을 소시민으로 소개한 한 자영업자는 “지금으로선 민노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 같은 서민의 입장에선 가장 현실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부유세 신설은 사회적 갈등 요인인 부의 세습화를 억제한다는 점에서 피부에 와 닿는다. 솔직히 말해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데 다른 당보다는 더 신경 쓸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이번 대선을 통해 민노당이 확실히 정치세력화할 것을 주문했다.
민노당 충북지역공동선거대책위 김남균대변인은 “민노당에 대한 일반 유권자의 시각이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만큼 기성 정치에 대해 유권자들이 식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이번 대선의 득표율은 지방선거 때의 수치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야만 17대 총선에서 원내진출의 소망을 이뤄낼 것이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선 선거전이 이회창 노무현의 2강구도로 굳혀지면서 민노당같은 군소정당의 득표율은 오히려 떨어질 것으로 분석한다.

사회당 김영규후보의 대선출마는 더 극적이다. 사회주의 노선을 천명하는 후보가 우리나라 대권에 도전한다는 것자체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감히 상상도 못할 상황인 것이다. 사회당은 일반 유권자들의 오해를 우려, 반자본주의와 함께 반조선노동당을 정책 이념으로 분명히 했다. 기타 사회당의 대표적 이념은 소유통제, 반전반핵 평화, 사회적 약자연대, 적극적 복지실현 등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0억 이상의 부를 상속 또는 증여할 수 없도록 한 소유통제다. 이에 대해 사회당 충북도위원회 송상호위원장은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바로 상속제도가 원흉이다. 지금처럼 무한정한 상속을 허용하는 제도는 현대판 신분제를 고착화 해 결국 빈곤의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재산의 상속 규모를 제한하는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승만의 탄압으로 혁신정당 좌절

사회당은 선거용 책자와 슬로건에 ‘50년의 기다림, 10년의 약속’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 사회당같은 혁신계통이 이번 처럼 두각을 나타내기는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다. 해석상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혁신 정당의 가장 가시적 기점은 1958년 조봉암(曺奉岩)의 진보당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1956년 제 3대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이승만을 위협한 조봉암은 곧 진보당을 창당, 본격 세력화에 나섰으나 이승만에게 철저하게 탄압당한 후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진보당과 조봉암이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남북한 총선거를 통한 평화통일방안을 주창했다는 혐의를 씌워 조작 수사를 감행했다. 실은 2년전 선거에서 216만표를 얻음으로써 위협적 존재로 부상한 정적을 제거하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 이승만은 504만표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당은 92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백기완을 정점으로 한다. 비록 득표율이 1%에 불과했지만 백기완의 대선 출마는 혁신 정당의 부활을 가장 확실하게 예고했던 것이다. 사회당이 내 건 10년의 약속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당시 서울 동숭동의 대학로 등에서 외쳐졌던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나라로!”는 그 때까지의 고정된 정치패러다임을 깨기에 충분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사회당은 충북에서 2.9%의 지지를 얻었다. 전국 지지율 1.6%보다도 오히려 높았다. 음성 지역에선 무려(?) 6%대의 지지율을 기록해 당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사회당도 민주노동당과 같이 궁극적 목표는 17대 총선에서의 원내 진출이다.

인터뷰/ 송상호 사회당 충북도위원장
전국당원 6천명,
“궁극적 목표는 평등한 세상”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군소정당은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사회당의 대권도전은 아직도 냉전의식과 레드컴플렉스가 잔존하는 많은 유권자에게 생경할 수 밖에 없다.

-정당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가.
“그렇다. 98년 청년 진보당으로 창당한 후 지난해 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전국의 당원은 6000명이고, 충북에선 100여명이 활동하는데 현재 청주 흥덕지구당이 창당됐고 청주 상당과 청원 제천이 준비중이다. 선관위에 정식 등록한 전국 지구당은 30개 정도다. 11월 27일 전국 시.도지부 위원장과 선거대책위원들이 사회주의자 선언을 했다.”

-정당의 이념과 정책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대표적으로 재인재산의 소유통제, 반전 평화, 사회적 약자연대 등을 들 수 있다. 이념의 근간은 반자본주의 반조선노동당이다.”

-그동안 각종 선거에서 후보를 낸 적이 있나
“그렇다. 16대 총선 때 서울지역의 전 선거구에 자체 후보를 냈으며 6월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장에 출마한 원용수후보등 여럿이 사회당 간판으로 나섰다. 지난해엔 서울 동대문과 금천구 등 각종 보궐선거에도 후보를 내세웠다. 선거 대마다 평균 득표율은 3% 내외였다.

-활동하는데 제약은 없는가.
“아직도 수구냉전논리가 사회의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우리는 창당 때부터 줄곧 위험에 노출됐다. 정치사찰과 감시, 전화도청은 물론 일부는 실체가 불분명한 사람들로부터 감금까지 당했다. 지금은 비공식적인 위험에 더 신경쓰인다. 이번 대선 출마를 계기로 당국과 일반인의 시각에 많은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
송상호씨는 충북대를 나와 97년 국민승리21 충북지역 교육부장과 99년 청년진보당 흥덕지구당 위원장을 지냈고, 16대 총선 땐 서울 강서구에서 출마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